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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 - 소란한 삶에 여백을 만드는 쉼의 철학
이영길 지음 / 다산초당 / 2025년 7월
평점 :
<나는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 : 소란한 삶에 여백을 만드는 쉼의 철학
전쟁에서는 드론이 쓰이고 아마존 물류창고에서는 로봇이 일을 하여 무인으로 운영된다고 하는 요즘, 굳이 실물이 아니더라도, 힘들게 파워포인트 쓰다가 캔바나 미리캔버스를 써보면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확연히 노동시간은 줄었다. 그러나 그 시간에 나는 좀 더 효율적이고 가성비있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시간이 늘어난 것 같다. 육체적 노동시간이 줄어든 대신, 변화하는 삶에 대비하기 위한 긴장과 도태되지 않으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시간은 몇 배 늘어난 셈이다. 백세 시대를 넘어 백오십세를 바라보는 오늘날, 지금보다 더 나은 삶, 일컬어 ‘행복한 삶’을 위해 우리는 언제까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걸까? 은퇴 역시 제 2의 삶, 시작이라지만 <임계장 이야기>처럼 최저임금을 받는 3D 업종 은퇴자금으로 자영업을 시도하도록 내몰린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쉼이란, 여가란, 한국인에게 사치스러움으로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의 게으름으로 보이기도 한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쉼은 불가능한걸까?
저자의 이력이 특이하다. 여가를 가르치는 학문을 공부했다니. 이영길 저자는 1980년대에 도서관에서 ‘여가학’의 시초격인 학자의 책을 접하고 편지를 보냈다가(심지어 이때는 이메일이 아닌 진짜 편지를 보내던 시절 아닌가!) 미국에서 공부하면 도움을 주겠다는 답장을 받아 유학을 떠난다. 그렇게 40년 넘게 여가와 쉼에 대해 공부한 저자다. 여러 미국의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 <안식>이라는 교양이 인기강좌가 되면서 그 강의를 바탕으로 이렇게 책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전 스웨덴 출신의 나티코가 쓴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책을 떠올려보면 유럽에서는 사회적으로도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며 책을 펼쳐본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는 한 개인이 얻을 깨달음, 그러니까 안분지족같은 주제의 책이 아니었다는 점이 새로웠다. 한가로워 보이는 나무위로 날아가는 새가 담긴 초록초록한 표지와 ‘홀가분’한 제목에 속았다고 느끼기도 한 초반을 지나니 우리가 가야하는 사회의 모습은 이 표지가 담긴 풍경이 당연한 곳이어야 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읽어내려갔다. 이런 자연스러운 삶은 일보다 쉼을 우선시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를 깔고 만들어지기에 바쁜 삶을 당연시하는 사회 시스템에 저항해야 한다는 저자의 목소리가 반갑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쉼에 대한 기존 정의를 다 엎어버릴 수 있는 ‘호모 레지스탕스’가 되기 위한 입문 책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읽고 숙론하며 사회적 논의를 만들어나가는데 꼭 필요한 책이다.
총 8장인 이 책은 1장에서는 ‘쉼이 결핍된 삶이 보내는 신호들’, 우리가 잘 알고 주변에서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스트레스와 번아웃부터, 조금은 생소한 ‘보어아웃’, 그리고 두려움이나 외로움처럼 쉼과 연결되는 감정인지도 몰랐던 것들에 대해 설명한다. 2장은 ‘삶을 변화시키는 쉼에 대하여’ 다루는데 ‘혁신’이라는 한자어 풀이부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사회가 만들고 있는 거짓 서사인 바쁜 삶에 순응하지 말고 저항하라는 메시지가 강렬하다. 이후 3장부터 8장까지는 출판사에서 6가지 처방전이라는 수식어를 달아놓은 6가지 쉼 - ‘멈춤의 쉼’, ‘일하지 않는 쉼’, ‘욕망을 재조정하는 쉼’, ‘기쁨의 쉼’, ‘느긋한 쉼’, 그리고 ‘사랑의 쉼’을 다룬다. 이 중 좋아하는 <반지의 제왕>을 예로 들어서이기도 하고, 나 역시 그 많은 종족들 중 키는 땅딸만하지만 담뱃대와 맥주 한잔에 삶을 담은 호빗족의 삶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느껴서일까, 절제를 욕망으로 푼 5장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불안하니 더 달려야 한다고 믿는 학부모에게 추천한다. 우리는 제대로 된 여가를 몰랐던 마지막 세대이길 희망한다. 우리의 아이들은 잘 쉬고 또 잘 쉰 만큼 잘 달릴 수 있는 그런 멋진 어른들이 될 수 있기를.
#나는홀가분하게살고싶다#다산초당#이영길#휴식#자기계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