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나라
손원평 지음 / 다즐링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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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를 쓴 손원평 작가님의 쓴 <젊음의 나라>가 새로 출간되었다. 주인공은 29세 청년 유나라. 시카모어 섬 정착을 목표로 하기에 메타버스에서 종종 유료로 접속한다. 이 섬과 MOU를 체결한 유카시엘 재단은 “수십 년 전 한 호텔 체인이 노인복지를 전담하는 자회사를 설립”(p.34)하여 “최고 등급은 유닛 A부터 돈이 거의 없는 노인들이 머무는 유닛 F에 이르기까지 노인 수용시설을 세분화했다.”(p.35) 유카시엘에서 운영하는 유닛에 다양하게 근무를 한 경험이 시카모어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 유닛 A에서부터 F까지 상담사로 일하게 된다.

등급에 따른 노인수용시설을 체험하는 주인공을 따라 서사가 이동하기에 현시대의 사회적 이슈인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가 만들어낼 근미래 세계가 어떨지 독자는 <젊음의 나라>에서 간접체험하게 된다. 이 문제 외에도 다문화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노인을 혐오하는 성인으로 자라고 있음을 보여주는 엘리야, 존엄을 자본주의적 가치로 환산하여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아닌 죽음을 관장하는 의사가 된 재희같은 소설 속 인물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의 결과를 품고 태어난 캐릭터들로 보인다. 혐오가 혐오를 낳을 것이라는 점, 돈이 많아야 편하게 죽을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작가의 상상력은 읽으면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AI가 대체하는 직업이 주로 중간관리자라는 것도 그렇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아무리 인건비가 오른다고 해도 결국 세상에서 가장 싼 건 사람이야.”(pp.204-205)“

사람이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은 대부분 노인케어와 관련한 일자리들이거나 로봇이 깔끔하게 하지 못한 일들의 뒤처리 그러니까 몸을 쓰는 노동이 남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며칠전에 미셸 들라크루아 전시회를 보고 왔는데 말미에 영상에서 본 그의 소감과 완전 반대였기 때문이었을까, 유닛 C에서 거주하는 김지훈 할아버지 캐리터가 인상적이었다. 화가였던 이 할아버지는 자신의 삶에 대해

”난 단순하게 살았어요. 그림 말고 다른 가능성은 떠올려 본 적도 없었지.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내 손을 믿으며, 화폭에 완성될 작품을 머리와 가슴에 꽉 채웠지요. 하루하루 희망속에 살았고 모든 게 영원할 거라 여겼어요. 사람이 그림을 직접 그린다는 게 어떤 의미가 될지, 내가 걸어온 한 가지 길이 어떻게 끝날지에 대한 상상력은 부족했던 거예요.“(p.130)
라고 말한다. 돈이 되는 일보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한 X세대일 김지훈 할아버지의 인생 성적표는 최현우할아버지처럼 극단적 이기주의에 빠진 사람과 같은 등급이었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과정이 아닌 결과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후반부에 나라는 서른이 된다. 서른은 청춘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노인 수용시설에 들어갈 정도로 나이든 나이는 아니지만 왜 제목이 ‘젊음의 나라’일까, 궁금했다. 하지만 주인공 나라와 엄마와 이모사이의 꼬인 매듭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자주 묘사되는 닫힌 문이나 겨울과 여름이라는 상징에서 제목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꽝 닫혀버린 문이 아니라 비밀을 알고자 하는 이라면 열어제낄 수 있는 문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젊음은 사회적 기준이 정한 나이나 남의 시선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는 삶의 태도에 있다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 책의 첫문장에서 “한겨울에도 한여름처럼 지내기로 결심했다”(p.10)라고 마음먹은 나라처럼, 창문을 열자 흰 눈이 온 세상을 덮어 도화지 앞에 선 것 같은, 새해 아침의 나라처럼, 현실은 지저분하게 밟힌 회색 눈밭일지라도 내 마음만큼은 언제든 새로 시작할 수 있도록 리셋할 준비가 되어 있는 회복탄력성을 이 책을 통해 얻어간다.
p.s 엄마인 유진의 무늬는 나라였지만 이제 민아이모와 함께 그려나갈 도화지에서는 또 다른 무늬가 만들어지길 기도하는 마음에서 이 책은 시즌 2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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