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 아홉 가지 이야기
오스카 와일드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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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작품 <행복한 왕자>도 포함된 오스카 와일드 동화집.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오스카 와일드의 삶의 자세가 동화들 전반에 느껴져 상념이 많아진다. 개중에선 <공주님의 생일>이 가장 좋았다. - ˝앞으로 나하고 놀러 오는 사람들은 심장을 못 갖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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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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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종이책으로 샀다가 중고서점에 팔았다가 이북으로 샀다가 안 읽혀서 방치했다가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드디어 완독! 근 이년 여의 밀당이었다. 초반에 잘 안 읽히고 갈수록 가슴이 벅차오른다는 평이 많던데, 난 오히려 책의 초반과 후반이 참 술술 잘 풀려있는데에 반해 중반에서 자꾸 힘을 잃는 느낌을 받았다. 뭐 결론은 '재밌었다'이지만.
 주인공 이수명이야 연약한 캐릭터구나 단박에 감을 잡았지만 류승민이라는 캐릭터는 갈수록 의외였다. 처음에 류승민에게서 받은 인상은 정신병원에 들어온 '표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류승민의 또라이 기질이 병원을 한바탕 즐겁게 뒤집어 엎겠구나 그런 내용이겠구나 그리 쉬 예측했다. 헌데 류승민은 정신병원에서 지내는 날이 점점 늘면서 독자에게 여린 구석을 자주 노출시키는 캐릭터였다. 그룹 회장의 숨겨진 아들이라는 불후한 과거사와 더불어 시력 장애와 합병증으로 딸려온 야맹증이라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결과적으로 류승민이 이수명을 구출하고 보듬는 전개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누구도 도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수명이 저보다 덩치도 크고 힘과 기도 강한 류승민을 도움으로써 자아 찾기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결말이 도출됐다.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트위스트 추는 장면은 유쾌하다 못해 유치하다. 하지만 승민이 전수한 트위스트를 추며 이제 내 인생을 상대하러 나서겠다 언덕 아래를 질주하는 수명의 모습은 대견하다. 트위스트 맘껏 추라고 등 떠밀어주고 싶을 만큼 더욱 응원해주고만 싶다. 보호사 최기훈과 공부에 매진하는 우울한 세탁부와 헬맷 쓴 만식씨 등속 입체적인 캐릭터의 병동 사람들 모두를 함께. 눈이 멀어가는 와중에도 마지막으로 별의 바다를 꿈꾸며 대담하게 비행한 승민처럼 수명도 대담해졌기를, 대담해지기를.

승민은 손을 내밀었다. 머뭇머뭇 맞잡았다. 손을 떼자 손바닥에 승민의 시계가 놓여 있었다.
"이제 빼앗기지 마."
승민의 눈이 고글 속에서 웃고 있었다.
"네 시간은 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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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층
오사 게렌발 지음, 강희진 옮김 / 우리나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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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화가 나고 너무 분통이 터진다. 오사를 무너뜨렸던 폭행과, 그녀가 스스로 버려야만 했던 정체성 재건 일화를 읽으면서 오사를 괴롭혔던 그 나쁜 놈이 집행유예에 보호관찰 처분밖에 받지 않았다는 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그녀는 일생을 뒤바꿀 정도로 큰 상처를 입었는데 그 남자는 제대로 된 처벌조차 받지 않은 셈이다!
가스라이팅이 이렇게나 무섭다. 물리적인 폭력 뿐만 아니라 가스라이팅을 담은 언어 폭력 역시 폭력이다. 가스 라이팅은 잉그리드 버그만이 출연했던 영화 <가스등>에서 유래된 말로,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에게 고의적으로 상처를 입히고 그녀를 피해망상을 가진 정신이상자로 몰고 가 그녀로 하여금 자책과 무력감에 빠지게끔 만들었다. 이 책의 저자 오사 게렌발도 영화와 마찬가지로 애인이 내뱉는 가스라이팅에 정신이 피폐해졌고, 때문에 애인에게서 폭행을 당할 때마다 자신이 잘못된 길에 빠졌고 그가 위험한 인물이란 걸 이미 깨달았으면서도 바로 그와 이별하지 못한다. 그녀는 이미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 주체성과 자신에 대한 확신 자체를 전부 잃었기 때문에.
도처에 이토록 가식적인 남자들이 널려있다는 사실과, 사랑을 기대했던 여성들이 가스라이팅을 인지 못한 채 그가 칭찬해줄거야 하는 마음으로 지금도 여전히 가슴 속 깊이 참고 있을거란 사실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지옥에서 살아남은 오사 게렌발에게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오사 게렌발과 같은 일을 당했고, 당하고 있을 여성들에게도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밖에서 우리는 완벽한 커플로 보였다. 우리는 항상 둘이 붙어다녔다. 어떻게 우리가 행복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그를 만나러 달려갔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행여 내가 다른 사람들과 말이라도 섞을까봐 불안해할 테니까. 나는 항상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대뜸 내가 다른 남자들을 쳐다본다고 생각할 테니까. 나는 항상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내가 심통이 나 있거나 뭔가 불만이 있다고 여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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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소설가의 개이고 여기까지 타이핑하는 데 세 시간 걸렸습니다
장자자.메시 지음, 허유영 옮김 / 예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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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아지의 시선으로 그려내고 말하고 쓴(?) 책이라서 읽기도 쉽고 절로 엄마웃음 짓게 되는 책이다. 골든리트리버 메시는 암컷 믹스견으로 다른 견들보다 큰 귀를 가진 글 쓰는 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메시가 동네 셰퍼드, 보더콜리, 떠돌이 개 심지어 고기완자와 이야기하는 에피소드들은 유쾌하다. 동시에 방치된 반려동물, 유기견들을 살피게 만드는 교훈적인 측면도 있다. 중국 사회의 문제들을 메시의 순진무구한 말투와 함께 짚어보면서, 유기견 문제가 심각한 한국의 현재도 되돌아보게 된다. 주인 몰래 집을 나와 혼자 죽으려던 할머니 개 '장미' 에피소드에서는 결국 눈물 한 방울 흘려버렸다. 보는 내내 우리 강아지가 떠올라 웃기도 울기도 했던 책.

내가 이렇게 열심히 글을 쓰는 건 아빠가 내게 했던 말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빠는 말했다.
"네가 열심히 글을 쓰면 사람들이 개를 친구로 생각하게 될 거야. 길에서 떠돌이 개를 보아도 메시 네가 생각나서 친구로 여기고 빵이랑 물을 주겠지. 그러면 그 개들이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나는 열심히 글을 쓰는 골든레트리버 메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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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의 특권
아멜리 노통브 지음, 허지은 옮김 / 문학세계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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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라프가 왜 갑자기 밥티스트의 집에서 죽었는지, 올라프의 직업은 뭔지, 올라프가 밥티스트에게 왜 차가 고장났다 거짓말을 했는지, 올라프가 마지막으로 전화한 조르주 세르베는 그래서 어떤 인물인지 이 모든 것을 알려줄 거라 믿고 결말까지 달려갔는데 결말 역시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밥티스트의 의심과 추정만을 남긴 채 의뭉스럽게 끝이 났다. 그 부분이 아쉽고 찝찝할 따름이지 읽는 내내 흡입력 있는 소설이었다는 점엔 이견이 없다.
 <왕자의 특권>이라는 제목은 밥티스트가 올라프의 신원을 빼앗고 스스로의 무료한 신원에서 탈출하면서 올라프의 아내 지그리드와 함께 제2의 스웨덴 인생을 시작한 것과 관련이 있다. 밥티스트는 이런 저런 미술작품들을 사들이며 올라프라는 이름으로 미술 재단을 세우게 되는데, 올라프의 그 많은 돈을 조절하며 쓰지 못 해 은행에 초기 예치금만큼의 빚을 지게 된다. 하지만 은행은 그들이 대단한 자산가라는 사실을 믿고 그들에게 면책 특권, 일종의 왕자의 특권을 주며 눈 감아준다. 그 상황이 현재진행형임을 알리며 소설은 덜컥하고 마무리 지어졌다. 하지만 왠지 모를 파멸의 기운이 느껴지는 건 단지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특히 마지막 문장에서 느꼈다. '지그리드는 백색의 풍경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게 그 백색은 내가 막 끝낸 책의 첫 페이지였다.' 이 문장은 앞서 지그리드가 북극을 탐사하러 열기구에 탄 연구원 중 한 여자가 죽기 직전까지 카메라로 영상을 담았고, 그 영상들은 마치 일부러 의도한 것처럼 보이는 백색 이미지들이었다며 말했던 미술관 관람 후기와 겹쳐 보인다. 즉, 그들이 거짓으로 쓰고 입은 올라프와 지그리드라는 신원의 죽음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이 왕자의 특권도 얼마 가지는 못 한다는 거겠지.

"그런데 하루 종일 뭘 하죠?"
"우리가 하던 일을 하면 되죠."
"우린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걸요."
"아무것도 안 하긴요. 술을 마셨잖습니까."
그녀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술잔을 채웠다.
"술을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자는 말씀이세요?"
"훌륭한 샴페인을 마시는 것. 그보다 더 좋은 직업이 어디 있겠어요?"
"몇 주나 그렇게 지낼 예정이세요?"
"영원히."
"우린 어떻게 될까요?"
"두고 보면 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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