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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평점 :
황석영은 작금의 한국문학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표소설가이며 민족의 역사와 시대의 현실에 부단한 참여를 해오고 있는 지식인이기도 하다. 한국의 근현대사의 아픔과 시대의 고민을 뚝심있는 필체로 이야기해온 그가 이제 시공간적 영역을 넓혀 21세기 전세계가 당면한 문제를 탈북소녀 바리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끄집어내 보인다. 북한 청진의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시대적 상황으로 가족과 이별하고, 고향을 떠나 타국생활을 하며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며 성장하는 바리를 통해 작가는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한다. 그간 작가의 주된 주제였던 민족의 문제를 벗어나 전인류적 문제를 한반도라는 국경을 넘어 세계를 무대로 하여 보여준다.
도입부분은 순식간에 읽힌다. 주인공 소녀 '바리'의 출생, 그리고 '바리'의 가족의 소소한 이야기를 흡입력있게 그려낸다. 익숙지는 않지만 왠지 정겹게 들리는 함경도 사투리가 단란한 가족의 일상과 만나 평온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할머니, 바리와 의사소통하는 진돗개인 칠성이, 그리고 바리로 연결된 샤먼적인 에피소드는 평온한 분위기에 긴장을 주기도 한다. 다소 신비로운 '바리'라는 소녀가 적당히 시련도 겪지만 결국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성장소설이 아닐까라는 예측을 조심스레 해보게 된다.
하지만 예측은 금세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만다. 두만강 가에 떠내려 온 시체를 시작으로 시대적 상황이 바리의 가족의 일상에 서서히 침투하면서 바리가족의 평온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리고 외삼촌의 도강과 남한으로의 귀순소식으로 바리의 고난의 여정이 시작된다. 작은 소녀의 고난의 역사를 북한, 중국, 영국으로 이어지는 광대한 공간적 스케일과 개인과 민족을 뛰어넘는 인류사적 주제,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서사구조 안에서 보여준다. 대륙을 넘나드는 탈북소녀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리의 여정은 21세기의 굵직한 사건들과 함께한다. 탈북, 난민문제, 9.11테러, 아프카니스탄 전쟁, 영국지하철 테러 등 작가는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로만 느껴졌던 현대사의 비극들을 '바리'라는 어린 탈북소녀를 빌어 체험시켜 줌으로써 21세기 세계사적 문제가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문제의 해결책을 바리를 통해 우리에게 깨우쳐준다.
‘희망을 버리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지. 네가 바라는 생명수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만,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p.286)
사람들의 욕망 때문에 일어난 전쟁, 테러는 승자 없이 서로에게 상처만을 남긴다. 우리 시대의 분열과 갈등을 해결하고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길은 어떻게 보면 간단하다. 인종과 국적은 달랐지만 어린 소녀 바리를 곁에서 이해해주고 같이 눈물 흘려준 샹, 루나, 압둘 할아버지, 알리가 보여주는 인종과 국가를 넘어서는 세계시민적 동포애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모두가 똑같이 소중한 존재라는 마음을 가지는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생명수 약수를 달랬더니 그 놈에 장승이가 말허는 거라. 우리 늘 밥해 먹구 빨래허구 하던 그 물이 약수다. 기럼 공주님이 헛고생한 거라? 바리야, 기건 아니란다. 생명수를 알아보는 마음을 얻었지비.’(p.81)
또한 작가는 고통스러운 현실이지만 밥해 먹고 빨래하던 평범한 삶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지독한 절망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주어진 삶을 견뎌내었던 바리가 보여준 모습, 그 자체가 희망이며 생명수이다. 그리고 그 희망은 나와 너,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다. 작은 소녀 '바리'가 해주는 <손님>만큼이나 처절한, <심청>보다 더 광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생명수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