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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유키 - 제1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조두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대부분의 역사소설, 특히 전쟁을 다룬 소설은 선과 악, 적과 아(我)가 확실하게 구분된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일단 역사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 안에서 선악을 구성하여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악을 구분하는 기준은 국가와 민족이 된다. 보통 선은 침략을 당하는 쪽이고, 침략하는 쪽이 악이 된다. 작가가 후기에 말한 것처럼, 우리가 배우는 역사책이 그러하듯 역사소설 대부분은 국가와 민족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유재란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희소성을 확보한다.『도모유키』는 선과 악, 적과 아(我)가 없다. 주인공 ‘도모유키’는 일본인이면서 침략자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조선여자 ‘명외’를 사랑하는 남자이며, 적(조선병)을 두려워하는 패잔병이다. 소설은 보통의 전쟁소설이 가지고 있는 선과 악이 대립하는 구도를 버린다. 전쟁으로 대립되는 인물들의 갈등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국가와 민족의 구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 보이는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아이러니하게, 국가와 민족의 구별이 무의미해져버리는 전쟁의 이면을 보여준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창해 보이는 역사보다는 그 거대한 역사 속에서 자의든 타의든 떠밀려져 갈 수 밖에 없는 개인의 소중하고 애틋한 역사를 보듬고 있다.
소설다운 소설을 읽은 느낌이다. 소설다운 소설은 어떤 소설일까? 소설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 그럼 재미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공감과 호기심이 아닐까한다. 인물의 행동과 말이 독자로 하여금 ‘그럴 수도 있겠지’라고 단순히 수긍하는 것을 넘어서 ‘맞아, 그런 거야’라고 무릎을 치게 만들어야 한다. 독자의 삶에서 그러할 만한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다음 장을 넘기기 전에 앞으로 읽게 될 장면이 뻔하게 예상되지 않아야 한다. 다음 장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항상 궁금해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
『도모유키』는 공감과 호기심이라는 재미의 요소를 모두 갖추었다. 전쟁이라는, 그것도 몇백년 전의 전쟁이라는 상황은 현재의 독자에게는 쉽게 공감이 가는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놀라우리만치 현재의 독자의 공감을 일으킬 만하다. 역사책에서 나오는 비범한 인물이 아닌 비열하면서도 순수하며, 잔인하면서도 나약한 보통의 인간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민족만을 위해 살아간 영웅이 아닌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역사가 아닌 현실로 다가온다.
일본군인 도모유키가 조선인을 배려하고 조선여자를 사랑하는 이야기는 역사책에서는 볼 수 없지만 현실에서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일로 공감이 된다. 공감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도문제나 역사문제에서는 일본을 손가락질하는 우리 국민이지만 지진과 원전사고로 어려움을 겪던 일본인과 슬픔을 같이 나누고 도움을 주는 모습 속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나 싶다. 국가나 민족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로 보면 쉽게 공감이 된다.
쉼없이 소설을 읽었다. 간결한 문장은 장면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하는 미덕을 가지게 했고, 속도감 있는 전개는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장점을 가지게 했다. 인물들 간의 갈등보다는 인간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는데 집중하여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자신의 손으로 베건 조선 복병의 손에 죽든 명외에게 아비의 죽음은 하나의 죽음이었다.’(p.26)
역사책에 적혀있는 역사에서는 절대 깨달을 수 없는 진리가 아닐까 싶다. 아군이 죽든 적군이 죽든, 결국은 인간의 죽음이다. 책을 읽고 나서 영화『태극기를 휘날리며』에서 주인공이 동생을 위해 국군이 되고 인민군도 되는 모습이 떠올랐다. 결국 전쟁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나라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나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국가와 민족의 역사보다 인간의 역사가 더 아름다운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