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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 4백 년 전에 부친 편지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6년 9월
평점 :
사랑을 하면 불행이 올 거라고 했지만 남자와 여자는 운명처럼, 아니 운명에 맞서는 사랑을 시작한다. 서로의 몸짓 하나, 목소리 하나가 꿈처럼 달콤했다. 둘 만의 좁은 방에서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쁨을 맛보았다. 이를 빼면 이 세상의 모든 게 부질없고 허망해 보였다.
‘세상에 누가 우리 같겠소. 세상에 누가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겠소. 나는 우리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살다가 함께 죽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오. 세상에 누가 있어 당신만큼 아름답겠소. 내가 세상에 다시 난들 당신처럼 어여쁜 아내를 만날 수 있겠소. 나는 당신을 죽을 때까지 사랑할 것이오. 아니오. 죽어서도 나는 당신을 사랑할 것이오.’(p.104)
하지만 사랑의 운명은 피할 수 없는 이별의 운명도 가져왔다. 남자는 불행을 피하지 못하고 죽는다. 누군가는 잊히지 못할 슬픔은 없다고 했지만, 여자에게는 시간이 가도 절대 지워질 수 없는 아픔의 자국이 새겨졌다. 남자를 잃은 슬픔 속에 여자는 남자에게 간절한 사랑의 편지를 쓴다. 그리고 그 편지는 4백년이 지나서 우리 곁에 왔다. 남자와 여자가 같이 머문 시간은 얼마 안 되지만 둘의 마음속에 새겨진 사랑은 오롯이 4백년을 머물러 있었다. 그런 둘의 사랑 이야기이다.
어쩌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부한 이야기 같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야기는 사랑에 조건이 따라다니는 우리 시대의 사랑에서는 볼 수 없는 깊이와 여운이 있다. 그래서 4백년이 지난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야기는 새롭다.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너무 사랑해서 둘의 사랑이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없을 거라는 그런 확실한 사랑의 깊이가 부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