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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 개정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최악 - 신자유주의 시대의 인간희극

예술하는 사람에게  숨소리 들리고, 땀냄새 풀풀 맡아지는 현장을 대면하고, 취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경험은 관심이 가는 곳으로 기울기 마련이고, 예술적 코드는 편한 것을 따르기 마련이다. 혹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주저 않거나. 

오쿠다 히데오는 구성작가, 기자, 카피라이터 등을 두루 직업으로 경험한 이. 경험 뿐 아니라 가까운 거리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지켜보고 공감할 때, 그 시대의 예술이 나온다고 했던가? 

최악은 그 집약점이라 생각한다.
삶의 다양한 모습에 노크해서 집단의 에너지와 그 에너지를 이루는 인물에 대한 세세한 묘사를 해내는 오쿠다  히데오의 살아있는 인물들.  발자크의 인간희극이 산업 사회 초기의 모습을 그렸다면,  오쿠다 히데오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독특한 색채와 냄새, 떠도는 공기, 그 안에 얼크러진 사람들의 일순간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담는다. 

신자유주의 생산방식인 JIT 시스템을 그려내는 대목에서는 혀가 내둘러질 지경이다. 필요할 때는 기를 쓰고 끌어당겼다가 조금이라도 그 소용이 달라지면 내던져지는 정글의 생산방식. 그 안에서는 알량한 자존심이나, 손톱만한 존엄도 허락되지 않는다. 물론 'Just in time'이 언제인지 결정하는 이를 빼고 말이다. 

안타깝게도 JIT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상황이나 조건, 의지와 무관하게 결정된다. 수직하청의 제일 말단에 선 마찌꼬바의 사장 가와타니 역시 같은 상황이다. 기계 하나를 들이는 계획을 세운 것 하나로 JIT과 충돌을 빚기 시작한 가와타니의 인생은 좌충우돌 하며 최악으로 치닫는다. 

가와타니 신지로 처럼 별도의 계획을 세우지 않았지만 미도리 처럼 뜻하지 않는 소용돌이로 말려들어가는 '성실한 은행원'도 있다. 두려울 것 없는 20대에 접어든 노무라 가즈야는 인생 우습게 본 죄로 순간의 희열과 천길의 벼랑을 오간다.
지금 당장 골목만 나가도 금방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너무도 평범한 사람들이  한 시대를 정확히 꿰뚫어 나간다. 그들의 일상이 보여주는 세상은 끔찍함과 고통, 좌절로 버무려진 그야말로 '최악'이다.  
그럼에도 절대로 무겁거나 염세적이거나 심각하거나 눈물 바람 하나 없다. 최악의 순간을 경쾌하고 속도감 있게 그려나가는 오쿠다히데오의 솜씨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깊이와 진정과 유쾌함을 이처럼 밀도있게 융합시켜내는 작가를 만나는 것은 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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