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수학자들의 영광과 좌절
후지와라 마사히코 지음, 이면우 옮김 / 사람과책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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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인간미 넘치는 사람들이 발견한 성과를 엮어낸 것이라는 걸 알았다면, 수학이 그저 어려운 과목만은 아니었을텐데. 답을 구하는 것에 몰두하고 정답인지 오답인지에 주목하기 전에 하나 하나의 공식과 정리에 담긴 사람들의 고뇌를 읽었더라면, 그와 공감하기 위해서라도 수학에 좀 더 애정을 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무영 교수는 수학은 사람의 사고 체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며, 과학의 언어라고 이야기 한다. ’세계를 관통하는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상적인 가정에서 출발하여 독특한 시각으로 세계를 소통하는 추상의 언어를 발견하는 일. 그렇게 찾아낸 언어로 세계와 자연과 우주를 넉넉하게 포옹하는 것이 수학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정리와 증명으로 씌여지기 전에는 들인 시간과 노력과 고통이 아무리 많다해도 본인 이외에는 알 수 없는 외로운 노동을 이 책을 읽어나가며 알게 됐다.

<천재 수학자들의 영광과 좌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학>에서 만난 후지와라 마사히코라는 일본 수학자에 매료되어 읽게됐다. 책은 세계적인 천재 수학자 9명을 찾아 떠나는 여행과, 천재 수학자들의 간략한 전기를 담고 있다. 필자 자신이 수학자인 관계로, 수학자의 정신세계를 아름답게 그려내려 애쓴 흔적은 있으나 전혀 억지스럽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마치 예술가의 독창성을 진면목을 가려볼 줄 아는 예술가가 빼어난 예술작품에 보내는 찬가처럼, 수학의 아름다운 세계를 밝혀나간 수학자에게 바치는 진정어린 사랑의 헌사를 보는 듯 읽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물들이는 책이다.

350년이 지나서야 추론에서 정리로 밝혀지는 수학자들의 발견, 하나의 정리를 증명하기 위해 바치는 수학자들의 집요한 연구는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밥먹는 것을 잊을 정도로 연구에 몰두하여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수십년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 나머지 중년 이후에 가서는 정신병적인 시달림마저 겪는 그들을 곁에서 지켜봤다면, 나 역시 미치광이 정도로 취급했을 것 같다. 허나, 다함없는 그 노동이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는 것이며 진리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빚어낸 것이라 할 때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유클리드가 기하학에 관한 정리를 강의 하는 중에 한 제자가 "기하학의 정리를 이해해서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유클리드는 곁에 있던 다른 제자에게 "그에게 동전 한 닢을 주어 보내게."라고 답했단다. 대가를 바라고 연구하는 것은 수학자의 마음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순수한 마음만이 수학의 비밀을 푸는 열쇠를 갖는 비결이라 여긴 수학자의 마음. 그 마음에 천재의 뛰어남까지 더한 사람들의 세계를 엿보는 과정은 안타까움과 비탄과 감동의 연속이었다. 책 표지에 쓰인 것처럼 천재의 봉우리가 높을수록 좌절의 골짜기도 깊었던 수학자들의 면모를 되새겨 본다.

- 신의 목소리를 갈구한 아이작 뉴턴
많은 사람들을 괴롭힌 미적분법을 찾아낸 수학자이며, 자연과학자인 동시에 국회의원과 조폐국장을 지내고 기사 작위까지 받았던 천재이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어린시절을 보내고, 일생을 독신으로 보냈으며, 중년 이후에 1년 정도 정신착란 증세로 고통을 받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의 미의식은 뛰어나, 프리즘을 통한 광학연구에서 빨강에서 보라까지의 빛의 띠를 일곱가지의 빛깔로 정돈해낸다. 우주 천문학에 대한 연구와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언어로서의 수학을 담아 <프린키피아>를 펴내어 우주를 이해하는 과학의 눈을 인류에게 제공했다. 
"내 눈 앞에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리를 안고 있는 커다란 바다가 펼쳐져 있다."라며 삶을 다할 때까지 진리를 찾기 위한 고독한 싸움을 벌였던 이이다.

- 21살의 나이에 스러진 열정의 수학자 갈루아
그의 정리가 무엇인지 모른다. 허나 대수학과 기하학을 통합시키는 군이론을 발견한 수학자라니 그렇게 읽는다. 그러나 수학학회에 제출한 논문을 심사위원이 중간에 잃어버린다던가, 심사를 마치기도 전에 심사위원의 숨을 거둔다든가 하는 끝없는 불운으로 살아 있을 때는 빛을 보지 못했다는 것. 프랑스 혁명기에 공화제라는 이상을 위해 구속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신념을 위해 싸운 사람이라는 것. 종래는 그 자신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결투를 벌이다 희생되었다는 것. 그리고, 죽기까지 마음 속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갈구했던 사람이라는 것이 전부이다. 허나 몇 줄로 정리 되는 그의 짧고 강렬한 빛이 가슴을 친다.


- 아일랜드의 시인 수학자 윌리엄 해밀턴
작은아버지에게서 영재교육을 받았던 사람이다. 10개국어를 알고, 천문학과 수학에 밝았던 사람이며, ’해밀토니안’이라 불리는 광학이론을 발견한 천재라고 한다. "수학과 시는 모두 상상력으로 얻는 것이며, 수학이 목표로 하는 진리와 시가 목표로 하는 아름다움은 같은 물체의 양면"이라고 믿었던 그는 직접 시를 짓기도 하고, 잘 알려진 시인인 워즈워드와도 문학적 교분을 나누기도 했다. 한편 첫사랑의 마음을 30년이 넘도록 뜨거움 그대로 간직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빠지면 쉽게 포기하지 못했으며 그런 지구력으로 수학을 연구하여 특성함수에 대한 연구에만 10년 이상, 4원수의 연구에 20년 이상을 바쳤다. 

- 소냐 코발레프스카야
러시아 귀족의 딸로 자라나 만인의 사랑을 받았고, 세계 최초의 여성 교수가 되었으며, 문학과 음악을 사랑했던 사람이다. 한번 본 사람은 누구든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사람이었으나 "수학의 신은 우리가 지불하는 희생 이상의 보상은 해주지 않는다."라는 냉혹한 격언을 이해하고, 그를 축복하는 주위의 안락에서 벗어나 연구에 매진한 여성 수학자이다. 문학적 재능도 뛰어나 중편 소설을 발표하기도 하고 수학연구에서 오는 정신적인 피곤을 문학의 그늘에서 풀어낸(마음에 안드는) 천재였다. 영원한 진리를 갈구하는 수학과 유한한 인생을 묘사하는 문학의 두 세계를 옮겨다니는 삶을 살면서 사랑을 이유로 남자에게 안주하지 않고 늘 독립적인 소냐로 살기 위한 선택을 해온 아름다운 여성이다. 
추상의 세계에 빛나는 별인 수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수학자는 시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품었던 소냐 역시 41세의 젊은 나이로 삶을 마감한다.

- 스리니바사 라마누잔
신의 계시로 수많은 수학적 공식과 정리를 알게되었다던 인도의 수학자라고 한다. 식민지의 청년이었으나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영국의 수학자 하디에 의해 수학계에 발을 디뎠다. 허나 영국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종교적 신념에 따라 하지 않은) 이주민으로 고독한 삶을 살다가 병을 얻어 33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한다. 짧은 생애 동안 남긴 그의 낡은 수학노트는 아름다운 정리들로 가득한 채, 아직도 많은 수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 나라를 구하고도 동성애로 처벌을 받은 안타까운 사람 앨런 튜링 
세계최초의 컴퓨터 콜로서스를 개발했으며, 독일의 군사작전 암호를 해독하는 데 큰 기여를 하여, 수많은 영국민을 구한 수학자이다. 추상의 덩어리를 정교한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뛰어난 천재였으나 암호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영국과 미국의 기밀을 알게된 것으로 하여 늘 영국군 당국과 CIA 감시 속에서 생활해야 했다. 급기야 앨런 튜링이 알고 있던 기밀이 두려워 미국과 영국은 그를 동성애자라는 것을 앞세워 가둔다. 나라와 진리와 진심에 바친 그의 사랑은 냉전의 제물이 된 채 42세의 나이에 지고 만다.

- 철학에 정통하고 시와 음악을 사랑한 헤르만 바일
1948년 "수학과 자연과학의 철학"의 서문에 ’ 사실과 이미지의 연계 없이 과학의 발달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이 연계를 위해서는 반드시 언어가 필요하며 그 언어가 바로 수학이라고 믿었던 독일의 천재 수학자이다. 그런 언어이기 때문에 반드시 아름다움을 지녀야 한다고 믿었던 바일은 ’나는 언제나 참과 아름다움을 통합하려고 노력했지만,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는 대개 아름다움을 선택했다.’고 고백한다. 아름다움을 향한 사랑은 컸으나 시대의 포화를 피할 수 없었던 바일은 독일 수학을 위한 깊은 책임감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태인 아내와 가족을 위해 나치의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간다. 천재 수학자들 중에 특이하게 조화로운 삶을 살았으나 시대의 찬바람을 피할 수 없던 그의 삶이 많은 생각을 던진다.

- 350년 만에 페르마의 정리를 밝혀낸 엔드루 와일즈
선배 수학자들이 쌓은 돌다리를 하나하나 두들기고 딛어 30년간의 집요한 탐구 끝에 페르마의 정리에 다다른 현존하는 수학자. 그의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허명을 쫓는 수학자 취급을 받는 것을 경계하여, 7년간 두문불출하며 페르마의 정리에 매달리는 대목이었다. 진리를 향한 갈증으로 집요하게 연구에 매달리면서도, 수학자의 자긍과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신과의 기나긴 싸움을 마다않는 맑은 정신을 본 까닭이다.

- 세키 다카가즈
일본의 화산가로 불운을 겪었으나, 현재 일본 수학의 밑돌을 놓은 곧은 성품의 수학자이다. 중국과 백제에서 건너온 천문학, 역술을 수학과 과학적 탐구를 통해 서양을 압도하는 수학적 성과로 만들어냈다고 한다. 불운 속에서도 정진했던 그의 삶은 아름다운 것이었으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안타까운 우리의 역사를 떠올리느라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무엇이든 실용으로 연결하지 않으면 선이 아닌듯 구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사람이 발굴해낸 아름다운 정신적인 재부를 돌아보고, 그들의 마음을 만나게 해 준 <천재 수학자들의 영광과 좌절>은 오랜동안 내 마음에 남을 듯 하다. 

P.S.
책을 덮는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정진했던 그들의 수학이 많은 사람들을 우롱하는 ’파생상품의 재료’가 되어지는 현재를 보면 수학자들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할까? 하는 생각이 떠올라 마음 한 구석이 덜컹였다. 
 

by 키큰나무숲 http://blog.naver.com/winw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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