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탉 신드롬 - 시장사회에서 여자가 깨야 하는
유나경 지음 / 북포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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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이 책을 읽고 A4지 한장쯤 글을 썼다. 그리고 그날 오후 EBS 책읽어주는 라디오를 들었다. 안톤 체호프가 쓴 러시아 단편소설 <귀여운 여인>이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그렇다. 주인공 올렌카의 첫남편은 연극하는 사람이었다. 관객들은 수준이 낮고 자신이 수준높은 공연을 하면 관객이 없다고 줄곧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남편이 죽자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또 결혼한다. 그 남자는 목재상으로 연극을 보지 않는 이였다. 그녀는 또다시 남편의 의견을 자신의 의견인양 이야기하게 되었다.


 가장 중요하고도 불행한 것은 그녀가 어떤 종류의 의견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물들을 보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어떤 것에 대해서도 의견을 정리할 수 없고, 그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 아무런 의견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귀여운 여인> 중에서-

사실 라디오를 듣고 흠칫했다. 혹시 지금 내 모습이 아닌가?

마음이 불편해졌다. 정치, 사회, 경제이야기 세상사는 이야기는 로단테를 통해 많이 듣는다. 그래서 그의 의견이 나의 의견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항상 옳은 이야기만 한다.) 하지만 그 속에 내 의견은 없었다.


 암탉신드룸을 읽고 마음이 두번 불편해진 격이다. 일단 내가 너무 몰랐다는 사실에 불편했다. 그리고 나름 진보라 생각했는데 그 생각들이 내 의견이 아니라는 것에 불편해졌다. 지금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힘들었달까.

 책에 나오는 것처럼 내 아이가 나에게 "엄마, 민주주의가 뭐예요?"라고 물으면 난 대답할 수 있을까.



p.26

 나의 것이 아닌 주어진 생각은 결코 '신념'이나 '옳은 행동'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저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다 불나비가 되어 희생될 뿐이다.

 세상을 제대로 알려면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보면 안된다. 그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원인을 알아야 한다. 그 인과관계를 파헤치지 않고는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미쳐가고 있는지 알 수가없다.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 해결책도 보인다. 무엇이 진짜 해결책인지를 가려내는 판단력이 생긴다.


p.63

 사실 사회를 인식한다는 것은 나와 우리를 인식하는 일이다. 우리나라 여자들은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가정만을 위하는 것을 굳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 또한 이런 여자들에 대해 호의적이다.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 여자들의 모습이 진짜 이기적인 게 아닐까? 정말로 내 아이만 보호하면 그만인 걸까? .....(중략)

 여기서 또 우리는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다. 모든 것을 개인이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말도 안 되는 자신감 말이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사회 공동체가 함께해야 하는 영역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내 아이라 해서 항상 내 울타리 안에서만 있을 수는 없다.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않고서는 내 아이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우리가 모두 공동체적 운명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순간 자신이 고립되고 만다. 공동체 의식을 키워야 한다.


p.79

 진보란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변화를 말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지금과 같은 세상이 유지되길 바라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중략)

하지만 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자신을 중도라 지칭하며 사회문제에서 발을 뺀다. 그러는 이유 중 하나는 '불편한 진실'을 몰라서다. 알고 싶어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었다는 게 사실 더 무서운 일이다.


p.106

 국가는 국민에게 절대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부의 분배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삼성이 가진 자본을 일반 월급쟁이가 모으려면 몇 년을 모아야 하는지 아는가? 100년? 1,000년? 무려 50만년이다 이것은 그냥 격차가 아니라 아예 딴 세상이라고 할 정도다. 극소수에 쏠리는 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차이를 벌린다. 일반 대기업에서 사원과 사장의 임금은 적어도 10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일례로 한진중공업 경영진은 2011년 한 해에만 176억 원의 배당을 가져갔다.


p.108

 독일 출신의 여성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무지라는 것은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무지한 자는 일상 외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이 악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평범한 악을 경계하며 깨어 있는 양심을 통해 무지와 결별해야만 한다."


p.109

 무지는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악하게 만들 수도 있다. 무지 때문에 가해자가 될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당하는지도 모르고 당하고, 뺏기는지도 모르고 뺏기며 살아간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체제에 순응할수록 국가는 더 강력하게 국민 위에 군림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알야 한다.

 국가가 국민을 속일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국민이 잘 속아넘어가기 때문 아닐까?


p.150

 진정한 대의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각계각층에서 국회의원이 나와야 한다. 노동자도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고, 장사꾼도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고, 주부도 국회의원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세상에 대해 진정으로 이햐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국회의원 300명 중에 진짜 노동자 출신은 없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p.152

 경제인이 정치를 잘 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음에도 그들의 정계 진출은 갈수록 당연시되고 있다. 이는 곧 국회에서 정책을 만들 때 그 분야의 이익을 지켜줄 사람들만 많아지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진정한 대의민주주의일까? 우리는 그동안 민주주의를 단지 교과서에 기록된 하나의 단어로만 여기고 살지는 않았을까? 민주주의는 다수가 행복해야 한다.


p.172

 본래 교육은 공공성이 높으므로 공공재로 봐야 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이후, 교육을 공공재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시장에 내다놓고 경쟁을 시켰다. 그 결과 교육은 상품이 되었고 학생과 학부모는 소비자가 되었다.

 알다시피 결국 우리는 비싼 등록금을 내야하는 이른바 '고객'님이 되었고 말이다.

(중략)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는 북유럽 국가들은 교육을 상품으로 보지 않고 '공공재'로 본다. 유치원때부터 대학교는 물론 박사 과정까지 배움에 열의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교육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한다. 교육마저 돈을 지급하는 세상은 의료처럼 '생명'과 직결되지 않지만, '행복'과는 직결된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성장하고 행복의 가치를 배우기 때문이다.

 교육이 이렇게 시장 논리에 지배되면 삶의 올바른 방향을 잃게 된다. 교육은 우리 삶에 뱡향을 제시해야 한다.


p.192

 권력의 폭력성이 개인의 폭력보다 무서운 것은 그 폭력을 정당화한다는 점이다 국가가 폭력을 쉬두르는 이유 중의 하나는 기종늬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국가권력은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근본적으로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 시점의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 통치하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권력은 그 바탕에 폭력성을 띤 채 국민에게 복종으 요구한다.



<꼭 한번은 읽어야하는 책들>

지그문트 바우만 교수의 <우리는 왜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노엄 촘스키 교슈의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송경동 시인의 시집 <꿀잠>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

희망버스의 주인공 김진숙의 <소금꽃나무>

기록노동자 희정의 <노동자, 쓰러지다>

김규항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여자라면 꼭 읽어야 하는 책 헬렌 피셔의 <성의 계약>


p.213

 자기가 알고 있는 것들은 단지 지식일 뿐 진짜 내 생각이 아닐 수 있는데 말이다.


앎이란 그냥 머리로 아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앎으로 인해서 생활이 바뀌어야 진짜 아는 것이다.

<논어>에 '누군가 어제 책을 읽었는데 오늘 그 행동에 변함이 없으면 그것은 책을 읽지 않은 것과 같다'라는 내용이 있다. 진짜 안다는 것에 대한 명쾌한 해석이다.


p.219

 안타깝게도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책이나 사회 현상에 대한 시각을 가질 수 있는 책들은 대부분 어렵다. 게다가 읽고 나면 한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입안이 씁쓸하다. 갑자기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러니 잘 안 읽게 된다.

(중략)

대체로 슨맛이 나는 음식이 몸에 좋다고 하듯이 쓴 책도 삶에 더 좋다. 물론 소설도 읽어야 하고, 사랑에세이도 읽어야 한다. 하지만 균형이 필요하다. 사랑 에세이를 읽었다면 사랑의 실체를 냉철하게 분석한 다른 분야의 책들도 읽어야 한다. 그래야 진짜 사랑을 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균형 잡힌 일상 생활을 해나갈 확률이 높다.


p.229

 인문학이 사람을 알아가는 거라면 사람끼리 서로 존중하고 더 평등하고, 더 보편적인 삶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이 진짜 사람공부가 아닐까.

 어딘가에서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는 사람을 외면하면서 인문학 공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회사에 노조를 만들지 못하게 하는 사장이 인문학 운운한다면, 그것은 뜬구름 잡는 얘기일 뿐이다. 이 현실에 적용하는 펄펄 뛰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공부다.


p.242

 자신의 위치에서 그런 노력을 하는 여자가 진보적인 여자가 아닐까. 진보적인 성향이란 무엇이든지 거부하고 반항하고 전복을 꿈꾸는 것이 아니다. 진보란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다. 조금씩이라도, 거북이처럼이라도 변해가야 하는 것이다. 단지 그 방향이 사람을 향하기만 하면 된다.




꼭 여자만 읽어야할 책이 아니다. 아내가 읽고 남편에게 권하면 좋을 책.

암탉신드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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