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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술래
김선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2월
평점 :
그의 곁으로, 우리 집으로, 나는 돌아왔다. 그가 내 이름을 부른다. 다시 부르고 또 부른다.
나는 웃는다.
세상에 하나뿐인 이름이 세상에 하나뿐인 이름을 부른다.
술래야,
내
딸,
술래야. ...
p12
이미 오래전에 죽었음을 시인하면서 시작하는
내 딸 술래 의 이야기.
정말 요즈음에는 잘 쓰지 않는 이름이기에,
이 이름이 주인공의 실제 극 중 이름인지조차도 불분명 하다. 아이가 너무 촌스러운 이름이라며 뾰료통해서 투정을 부릴때에도 그저 아이의 아빠가
그녀를 애틋하게 부르며 이름의 의미 심장한 뜻 풀이를 해주는 장면들 조차, 농으로 아이에게 하는 이야기 인지? 실제 아이의 이름을 그렇게 작명해
놓은 것인지? 다시는 숨어 버리지 말라는 뜻인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그에 대한 정확한 답은 내놓고 있지 않다.

작가의 의도 대로
'술래' 라는 놀이 문화 속 내재된 의미와, 작가의 상상 속에서 인생과 삶과 죽음의 의미에 이르기 까지 확장된
개념으로 여겨 볼 수도 있다.
10여 년 전 '카쿠렌보(숨바꼭질)' 라는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 되었던 일본 단편 애니가 떠오르게
된다. 요즈음 아이들은 혼자만의 놀이 문화에 익숙하다보니 친숙하지 않은 '술래잡기' 혹은
'숨바꼭질' 이라고 알려진 놀이는, 이렇듯 지역은 다르지만 윤회의 동양 사상에서 사뭇 죽음과의 경계를
떠올리는데에도 비슷한 유형의 의미를 만들어 내는데에 어렵지 않은가 보다.
이 책의 제목이자 주인공인
'술래'는 열살의 어린 소녀로 본인이 죽었음을 인지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 되고 있지만, 각 챕터 속에서 시간의
흐름은 무시 된 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가 전개 된다. 그 녀와 친구가 되는 '영복'이는 탈북 아이로
또다른 아픔을 가지고 있는 아이로 등장을 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술래만의 이야기가 아닌, 술래가 살고 있는 재건축 지역의 버려진 장소에서 살고 있는
술래와 술래의 아빠, 그리고 아파트 담벼락 너머 쓰레기와 함께 살고 있는
노인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각각의 고단했던 삶과, 죽음보다도 힘든 삶의 모습 속에서 의미 없이 하루 하루를
소비해가는 우리네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내 비추는 듯하다.
이 책의 독특한 책 제목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서, 직접적으로 글들의 의미를 내비치지 않으며 무언가 의미 있는 내용을 독자들에게 이해해주길 바라면서, 하나 둘 조곤 조곤하니 각
인물들의 불편했던 과거와 되뇌이고 싶지않었던 고통의 여정등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총 3부로 구성 되어 있는데,
목차에서 분류되어 있는 3부의 페이지 넘버 외에는 왜 굳이 3부로 나누어져 있는지 조금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긴 하다. 최소한 소제목으로 각
구분되어 지는 의미나 3부로 나뉘어진 각 장에서 우리가 환기해야할 내용이 무언지 최소한의 안내가 있었으면 훨씬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기 좋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안에 또다시 1, 2,3
.... 챕터가 나뉘어 있는데 이 또한 각 인물들의 불편한 이야기를 소녀 '술래'
와 노인 '필순' 이 번갈아 가면서 각 챕터 별로 화자가 되어 본인들의 다른 이야기가 전개
되는데, 이야기 속 대화 상대나 내용을 보면 누구의 이야기 인줄 짐작은 가지만, 그저 1, 2, 3 숫자로 분류된 챕터가 아닌 다른 유사 설정의
도서들 처럼 화자의 이름이나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들을 챕터 번호와 함께 해주는 편의가 있었으면 좋았을법
하다.
이처럼 이야기를 따라가는데 개인적으로는 책의 구성으로 조금
불편했던 점이 있었는데,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용 속에서도, 왠지 모르게 이야기 내용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제자리를 걸으며 도돌이표를
찍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작가가 의도한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시간조차 의미 없이 흐르거나, 흐리지 않거나.. 상당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은 느낄 수 있었지만, 그러한 의미의 인지와는 상관없는 또 다른 같은 이야기를 무한 반복하는 고장난 카세트 테이프 같은 정지되어
버린 이야기가 되버린 듯하다.
이야기의 전개와 결말의 열쇠를 독자에게 넘겨주면서 상상의
공간과 각자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한참 뒤에 물러 서 있는 저자의 위치는 조금더 적극적이었으면 어땠을까?
개인적인 바램이다.
시인으로도 등단을 한 저자의 이력 답게, 아름다운 문체와
절제력있는 내용으로 삶과 죽음의 어려운 논제를 놓고, 각 등장 인물들과 함께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듯하다. 하지만 장편
소설로서의 전개에서는 연결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 연결이나, 극 중 인물이 어느 장소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지 조차 한참의 내용을 읽고나서야 이해가
되기에, 철학서나 단편시집처럼 하나의 상황만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영상처럼 장면이 그려져야 하는데 그러한 부분에서는 조금 아쉽지 않나
싶다.
영복이가 나를 쳐다본다. 이름이
어떤 이유로 생겨난 것인지는 모르지만, 영복이라는 이름이 영복이를 가장 영복이처럼 보이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엄마도, 엄마의 이름과 닮은
사람일 거다. 이름은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부터 특별해진다.....p238
김춘수 님 의 '꽃' 의 시 글귀 처럼, [내 이름은 술래]또한, 의미 없는 한낱 놀이 이름이 하나의
큰 의미로 다가 오고, 우리의 삶에서 한번쯤은 고민하고 생각해봐야할 우리의 삶은 과연 의미 있는 삶을 향해가고 있는지? 단순한 진리이면서도
조금은 깊이 생각해볼 화두를 던지고 있는 이야기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