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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붉게 피던
집] 이라는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제목과는 달리, 과거의 사건을 추적해가는 미스터리 이야기로 전개되고 있는 이야기
이다.
경제적으로 한창 못사는 나라의 오명을 씻고
경제 개발을 하기 위해 모든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 맷던 1980년대. 지금으로 부터 그리 오래 전 시기는 아니지만, 우리 나라를 비롯해서
전세계적으로 급격한 기술 개발과 함께 산업 부흥의 전성기 시대 였을 것이다. 그만큼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모하는 시대 였기에 그 날의 과거를
회상 하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낯설기도 하고 때로는 진한 향수로 다가 오기도 한다.

이야기의 발단은 성공한 강사이자 대중문화
평론가로 집필을 하고 있는 30대 후반의 커리어 우먼인 <현수빈> 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그녀의 어릴적
조그마한 집에 여러명이 함께 세들어 살던 다세대 주택의 살가웠던 이웃들과의 이야기를 회상하면서 시작 된다.
그 옛날 우리 생활에 함께 했던 세밀한 극
중 묘사들을 보면서, 그 인물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기억들이 다시금 먼지가 잔뜩 덮인 오래된 사진을 꺼내놓듯이 하나 둘 새록 새록 기억이 나게
만들었기에, 더욱 이야기 하나 하나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나의 이야기 처럼 그대로 감정 이입이 되어 버렸다.
흑백 티브이에서 컬러 티브이로 옮겨가던
시절. 모든 것들은 터치가 아닌 회전식이었던 시절. 채널을 돌리기 위해서도 회전식 손잡이를 돌려야 했고, 종종 빠져버려서 없어져버린 채널
손잡이 대신 펜치로 잡아서 돌리기 일 수 였고, 보급화 되지 않았던 전화기를 온 동네 식구들이 번갈아 가면서 쓰기도 하고, 집 앞 대문에는
커다란 회색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던 쓰레기통 등등. 주인공의 지난 과거를 회상하면서 쓰는 칼럼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과 소품들 하나 하나
읽어가다보면, '맞아~! 우리 집에도 그랬는데..' 하면서 주인공 뿐 아니라 글을 읽고 있는 나 조차도 다시 눈을 살포시 감고 그시절의 여운을
떠올려 보게 된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 못해서 힘들게 고생도
하면서 지냈지만, 세들어 사는 가족들 모두 친 가족들처럼 너와 나가 아닌 우리 라는 개념으로 서로 도와가면서 기쁨과 슬픔도 함께 하던 정말
구공탄의 빨간 불꽃 만큼이다 따뜻했던 시절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살갑게 지내고 모두가 한 가족 같은
그 시절의 이웃들 사이에서, 주인공은 과거 세들어 살던 자취생 오빠의 연탄 가스 중독 사고로 죽은 사건을 조사하면서, 누구에게도
말못했던 어두웠던 과거와 현재의 내 모습 아래 전대 꺼내놓지 말아야 할 숨겨진 비밀들이 하나 둘씩 벗겨지면서 더욱 깊어가는 의문과 사건들이
벌어지게 된다.
이야기 전개가 크게 멋진 액션 활극이나
긴장감 넘치는 위험들이 곳곳에서 고개를 내미는 스릴러는 아니지만, 문 한칸을 두고 함께 옹기 종기 살던 이웃들의 숨겨진 비밀들이 더욱 소름끼치고
큰 충격으로 다가 오기 충분했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인물들의
기억과 장면들이 크로스 오버되는 영화의 한장면과도 같은 이야기의 흐름은 한순간도 책읽기를 멈출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입체적 구성으로 되어있어서
자칫 밋밋해 버릴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듯 생상한 모처럼의 멋진 미스터리물이었다.
라일락이 곱게 피어 있던 여러 가구가 함께
서로를 위하며 살던 집.
지금은 손바닥 만한 공동 마당 하나 없이
커다란 철문으로 꼭꼭 닫혀진 연립 주택들로 탈바꿈 해버린 모습들 속에서 이전보다도 더 아리고 차가운 시멘트의 감촉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