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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시타 호가 곧 출발합니다
비르지니 그리말디 지음, 지연리 옮김 / 저녁달 / 2025년 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펠리시타 호가 곧 출발합니다』
원제는 Le premier jour du reste de ma vie.
원제를 우리말로 번역해 보니,
"내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새롭게 인생을 출발하기 위한 전환점을
보여주는 제목으로, 100일간 세계 여행을 떠나는
크루즈 여객선 펠리시타 호에서 벌어지는 내용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쌍둥이 두 딸을 키우고 있는
마흔 살 전업주부 마리의 시선으로 시작을 한다.
아내 모르게 여러 명의 여성들과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오히려 권위적으로 대하는 남편에게
이혼을 통보하고 크루즈 여행에 홀연히 떠나게 된다.
여행길에 우연히 만나게 되는 62세의 노부인 안,
스물다섯 자유분방한 젊은 여성 카미유와 함께
여행 동반자가 된다. 세 명의 여성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면서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고독 속의 세계 일주'라는 모토로 여행객을
모집하고 있는 펠리시타 호의 독특한 콘셉트이기에,
한 가지 특이한 합의 권고 사항이 있었다.
크루즈 여객선에는 오로지 혼자 탑승할 수 있으며,
여행 중에 다른 여행객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을 삼가야 하며, 갑판 위 의자 위에서
애정 행각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서로 사랑을 나누는
연인이 되는 걸 금지하는 엄격한 규정이었다.
홀로 전 세계를 돌아보면서 고독하지만
여유로움도 만끽할 수 있는 여행 프로그램이었기에,
100일간 긴 여행길에 홀로 탑승한 남녀가
이성 찾기에 혈안이 되는 짝짓기 장이 되는 걸
막기 위한 필수 사항임에 납득이 가는 부분이었다.
남편 생일날 이혼을 통보하고 떠난 마리는,
여객선을 타기 전 비행기 안에서 먼저 만난 안과
크루즈 안에서 자연스레 합석하게 된 카미유
세 여성이 나이를 넘어서 의기투합을 하게 되는
과정부터 너무 신나고 흥미로운 구성이었다.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세 명의 여성이었지만,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속에 담아 두었던 사연을
하나 둘 터놓으면서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된다.
고독을 여행하는 크루즈 여행 프로그램답게,
그들 모두 사랑하는 사람과의 실패로 아픔을
달래기 위해서 탑승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펠리시타 호가 곧 출발합니다 신간 소설 배경의
여객선에선 애정 행각이 금지가 되어있지만,
자석의 플러스와 마이너스 양 극이 서로 당기면서
달라붙게 되는 것처럼, 남녀 간에도 서로의 반쪽을
찾게 되는 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이치가 아닐까 싶다.
다분히 폐쇄적인 규정이 존재하고는 있지만,
드넓은 바다와 새로운 환경의 고독을 즐기면서
세 명의 여성 삼총사에게도 또다시 사랑의
불씨가 하나 둘 피어오르는 걸 느껴 볼 수 있었다!

프랑스 신간 소설 속 여주인공들의 모습이
어쩌면 20대, 40대, 60대로 변모해 가는
나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해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연애관이나 결혼 생활의 모습이 우리 전통적인
동양 문화권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20대 활발한 여성인 카미유는 외모 콤플렉스에
소심한 성격이었지만, 성형 수술을 통해서
새롭게 변모한 외적인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오히려 과장된 님포매니악
같은 행동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듯 보였다.
남편의 불륜과 독단적인 행패에 휘둘리고
있으면서도, 전업주부로 살고 있는 마리의
순응적인 중년의 여성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예순이 넘은 노부인 안은 그의 사랑하는 연인과는
결혼 없이 40년을 함께 살아오고 있었지만,
한순간 뜻하지 않게 이별을 통보하고 그동안
서로에게 길들어진 시간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다.
홀로 세상에 독립하고자 하는 싱글들을 위한
펠리시타 호 크루즈 세계 여행이었지만,
자석처럼 서로의 짝을 찾게 되는 자연의 법칙은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닥친 현실일 것이다.
서로 다른 사연을 지닌 세 여성들이 자신의
자아도 찾아가면서, 또 잃어버렸던 사랑의 모습을
저마다의 색으로 칠해가는 과정도 무척 흥미로웠다!
푸껫, 로스 앤젤리스, 시드니, 태국 등 전 세계를
돌면서 대표 랜드마크 속에서 이어가는 전개는
마치 내가 함께 여행을 하는 듯 생생하게 다가왔다!
펠리시타 호 크루즈 여객선의 한정된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성격의 인물들과 다툼과 도움도
주면서 작은 사회의 새로운 갈등에도 직면하기도 했다.
그저 로맨스 스토리가 아니라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도 흥미진진하게 이어졌기에, 긴장감을
살짝살짝 올려주면서 어떻게 해결이 될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전개에 한숨에 책을 모두 읽게 만들었다.
가정을 지키는 것만이 전부라 여겼던 마리는,
홀로 세상에 뛰쳐나왔지만 직장 경력이 없는
전업주부였기에 앞으로의 생계조차 막막했다.
미래의 혹독한 현실이 두렵기는 했지만,
매일 아침 따뜻한 핫초코를 마시면서 객실 내
발코니에 나와 조용히 명상에 잠기는 루틴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때로는 주변과 단절하고
나 자신과 소통하는 그런 시간을 갖고 싶어졌다.
중간중간 다른 여행객들과도 조우하면서
몇 가지 사건들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세 명의 여성이 여행지를 돌아보면서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기도 하고, 서로 응원하며 드넓은
세상 속 나 자신 자아를 찾는 모습이 너무 대견했다!
"오늘은 내 남은 인생의 첫날!"이라는
마법의 주문을 외우면서, 과거 그립지 않은 목록과
아픔을 훨훨 날려버리고 다시 새 삶의 도전에
뛰어드는 세 여성들을 나를 위하듯 응원하게 되었다.
세계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알콩달콩
진실한 사랑도 키워가는 인물들을 보면서,
역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이가 어리면 어린 대로 광풍에 휩쓸리는 듯
격렬한 사랑을 꿈 꾸기도 하고, 나이가 들면서도
결코 사그라지지 않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쩌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원동력인 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