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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볼루션 - 어둠 속의 포식자
맥스 브룩스 지음, 조은아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7월
평점 :
벌써 10여 년 전 개봉했던 브레드 피트 주연의
영화 <월드 워 Z>는, 기존에 보아왔던 B급 호러 스타일의
좀비 영화와는 확연히 다른 재난 영화와 같은 전개라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스펙터클한 SF 장르 영화였다.
그 영화의 동명 원작 베스트셀러 작가인 맥스 브록스가
이번에 새롭게 펴낸 또 다른 크리처 물인 데볼루션 .
'어둠 속의 포식자'라는 부제와 함께 핏빛이 연상되는
숲속의 장면의 표지 디자인만 보고는, 다시금 좀비
시리즈로 이어지는 속편을 발표한 게 아닌가 싶었다.
미국 아마존 에디터 선정 베스트 SF 소설로,
<뉴욕 타임스>,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 선정,
SF 소설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로커스상 최종 후보에
오른 데볼루션 장편 소설은, 전설 속에서나 존재했던
거대한 거인 유인원 괴수인 빅풋을 소재로 하고 있다.
저자의 전작이었던 <월드 워 Z>는 영화로 먼저 접해
보았었기에, 원작 소설과의 비교는 정확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도 함께 하고 있었다.
영화 초반에 이산화 탄소 배출량이 높아지고 이상 현상이
계속되면서 우리 인류에게 몰아닥친 자연재해에 대한
경고 뉴스 보도로 시작되면서, 알 수 없는 좀비 감염으로
도심 전체가 마비되어 버리며 전 세계로 확산되었었었다.

이번 신작 데볼루션 역시 빅풋이라는 괴생명체가
습격해오는 괴물 크리처 장르 소설이기는 하지만,
기본 배경에는 화산 폭발로 인한 혼란 속에서 점점
피폐해지는 나약한 인간들의 모습을 찾아보게 되고,
자연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이상주의자들의 값비싼
친환경 공동체 생활의 이면에는 보잘것없는 인간의
자만심이 부르는 이중적 잣대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소설의 말미 에필로그에는 영화화를 위해서
판권을 돌려받았다고 하는데, 조만간 이번 작품도
스크린에서 관람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맥스 브룩스는 현대전 연구소와 대서양 위원회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략 보안 센터의 선임 연구원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전 세계정세의 흐름을 읽으면서
조금 더 사회 비판적인 글을 써내는 게 아닌가 싶다.
이번 작품 속 배경으로 그려지는 고립된 숲속의
고급 친환경 공동체인 그린루프의 지도가 그려진
카드도 도서와 함께 한 장 들어있기에, 각 사건 장소를
떠올리며 훨씬 더 입체적인 상상을 펼칠 수 있었다.
데볼루션 소설의 서문 도입 부분부터 바로 '빅풋'의
존재에 대해서 밝히고 있고, 한마을이 모두 파괴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시작을 한다.
이미 사건이 다 벌어진 후에 다시금 당시를 되짚어가는
시간 역순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기에, 무언가
알 수 없는 괴수의 존재를 밝히면서 찾아가는
추리 방식의 긴장감이 필요한 전개는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빅풋의 존재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지의 생명체와 맞서 싸우는 험난한 과정과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무력함이 만들어 내는 공포감이
더욱 극대화되면서 벌어지는 참혹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한 작가가 13개월 동안 실종
상태인 케이트의 일기장을 책으로 출간해달라는
의뢰를 받으면서 그 사건을 하나하나 전개하고 있다.
미국 내 레이니어 화산 폭발로 그린루프라는 친환경
공동체 시설이 깊은 숲속에서 고립이 돼버렸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구조대는 새까맣게 타버린
그린루프의 잔재와 함께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사이에 케이트 홀랜드의 일기장이 발견이
되면서 충격적인 빅풋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고,
그 안에 그들의 생존을 건 사투가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이야기의 화자는 책을 출간하기로 한 주인공 외에,
실제 사건 속에서 케이트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마치 다큐멘터리 사건을 보도하는 듯한
방식이기에 실제 일어났던 사건인 듯 현실감이 높았다.
특히 각 챕터 별로 실존 자료가 첨부되어 있는데,
실제 화산을 연구했던 미국 지질 학자의 무전 내용과,
과학 논문, 뉴스 보도를 비롯한 과학 자료들을
서두에 배치하기도 하고, 케이트 일기 내용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산림 감시원과의 인터뷰 등을 삽입하면서
마치 빅풋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실처럼 보일 수 있었다.
한때 유행했던 공포 영화 중에 페이크 다큐
스타일 영화의 시발점이었던 <블레어 위치>와 같은
모큐멘터리 영화가, 마치 실제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처럼 보이기에 더욱 무서움을 느낄 수 있었었다.
그 후에도 수많은 아류 영화들을 양산하고 있기에
페이크 임을 알고 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훨씬 더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는 구성임에는 틀림없다.
데볼루션 장편 소설에서도 그렇게 실제 사건의
내용과 자료들을 뒤섞어 놓고 있기에, 케이트의
일기에 남겨진 내용을 함께 읽어내려가다 보면
정말 깊은 숲속 어디선가 빅풋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친환경 공동 주택을 목표로 건립된 이상적인
그린루프 타운은 바이오 가스를 사용하고,
태양열 전지로 전력 공급도 하면서 녹색 사회를
꿈꾸는 바람직한 미래 이상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공동체 일원으로 입주하게 된 인원들은
학식과 덕망만 높은 하이클래스 인물들이었는데,
서로 의지하는 공동체의 취지와는 맞지 않는
독단적이고 나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집단일 뿐이었다.
게다가 자연을 위하면서 공생을 꿈꾸는 도시를
건립하는 게 목적이었지만, 정작 지역 거주인들은
조금 더 편리한 문명의 이기와 생활을 더 바라고 있다.
...(중략)...
카르멘 퍼킨스는 ······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세균 공포증이라고 단언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녀는 우리와 악수를 하자마자 손소독제를 바르고
딸도 발랐는지 확인한 뒤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권했다.
_P. 34
갑작스럽게 화산이 폭발하고 산속에 고립되어 버린
그린루프 타운의 지역인들은 통신이 모두 끊겨 버리자,
골짜기를 내려가보려는 시도를 해보기도 하는데
라하로 뒤덮여서 모든 산 아래 통로가 막혀버렸다고 한다.
본문에서 라하가 자주 언급되길래, 인터넷 백과사전을
검색해 보았더니 화산 폭발 후 화산 쇄설물이 물과
결합해서 걸쭉한 반죽을 이루면서 계곡을 따라 시속
100km의 빠르게 흐르는 퇴적작용을 말한다고 한다.
실제 화산 폭발 후 직접 적인 피해 뿐만 아니라 라하로
인해서 수만 명이 휩쓸려 사망한 사건도 보도가 되었고,
하류의 주변 도시까지 큰 피해를 입힌 사례도 다양했다.
깊은 숲속에 은둔자처럼 무소유로 지내려는 자연인이
아닌 그들은, 마치 휴양림에서 호화스러운 생황을
만끽하듯이 드론을 통해서 생필품을 배송받기도 하고
클라우드에 올려놓은 음악과 영화를 관람하는 식으로
더욱 문영의 이기를 마음껏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작 과학의 발전과 녹색 혁명이 함께 진보해 나가는 게
이처럼 이율 배반적이고 가당키나 한가 싶었다.
갑작스러운 자연재해로 인한 고립으로 타운의 주민들은
패닉에 빠지고, 생존에 필요한 식량 해결에 당장
문제에 빠지게 되면서 양극단으로 파벌이 나뉘게 된다.
철저히 공동 배급제를 실시하면서 공동체를 꾸리자는
인원이 있는 반면, 눈과 귀를 닫고 구조대가 곧 올테니
나 혼자 알아서 생존하겠다는 막가파들이 대립을 하게 된다.
하지만 거대한 빅풋의 등장으로 다시 한번 그린루프
주변에 방어 준비 태세를 하려는 팀과, 유인원은
초식 동물이며 건드리지 않으면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식으로 지식을 뽐내면서, 최첨단 경보 시스템을 믿고
구조를 요청하자는 파로 또다시 설전과 대립을 하게 된다.
...(중략)...
짜증이 밀려왔다. 식단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왜 모스타르의 말도 안 되는 '배급 계획'으로 나를
괴롭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녀의 말처럼
이곳에 고립된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_P. 109
그리고 화자가 선임 산림 감시원 조세핀 셀과의
인터뷰 내용도 이어지는 이야기 중간 삽입되면서,
현재 발견된 사건의 정황을 다시 되짚어 보기도 한다.
...(중략),,,
우리는 뼈를 찾았어요. 뼛조각들이었어요.
미치광이가 망치를 휘두른 것처럼 아주 박살이
나 있었어요. 발굽, 치아, 털을 보니 사슴이더군요.
남은 게 많지 않았어요. 살점은 아예 없었고요.
_P. 110
마치 모큐멘터리 영상을 보듯이 케이트의 일기
내용을 따라가면서, 점점 어둠 속의 포식자가 그들의
생활 터전 가까이 덮쳐오는 과정이 숨 가쁘고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리고 고대 화석과 진화론 등 과학 자료
설명과 지금도 목격되고 있는 빅풋과 사스콰치, 또는
설인 등으로 표현되는 거인 괴수들의 사례도 가득했다.
데볼루션 스토리 중반 이후부터는 점점 커지는
위협 속에서, 과연 그린루프의 주민들과 피에 굶주린
빅풋 간의 살육과 전쟁에 가까운 대결 장면들이
꽤나 강렬하게 묘사가 되고 있어서 마지막 장까지
숨죽이면서 긴장을 멈출 수 없는 스릴러 SF 소설이었다.
단순히 괴수 공포를 그린 내용이 아니라, 우리 역시
자연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동물임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중략)...
자연은 순수하다. 자연은 진짜다. 자연과의 교감은
우리의 가장 좋은 면을 끌어낸다. 평생 흙이라고는
밟아 본 적도 없으면서 에덴동산에서 길을 잃지 못해
안달이 나서는 매년 등산복 차림으로 이곳을 찾는
불쌍하고 멍청하고 한심한 인간들에게 늘 듣는 말이에요.
그 사람들은 며칠 뒤 괴저성 상처를 입은 채
굶주림과 탈수에 지쳐 진창을 기어가다 발견돼요.
그들은 모두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 싶어 해요.
하지만 그중 몇몇은 뒤늦게 깨달아요.
자연이 절대 조화롭지 않다는 사실을.
_P. 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