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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
다비드 디옵 지음, 목수정 옮김 / 희담 / 2022년 7월
평점 :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 소설은 분량이 그렇게 많은
페이지의 긴 장편 소설은 아니지만, 마치 그 옛날
고대 그리스 영웅들을 읊었던 서사시처럼 독특한 문체로
문장 하나하나 곱씹게 만드는 시와 같은 글이기에
기존과 다른 굉장히 새로운 느낌으로 접해 볼 수 있었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세네갈의
젊은이들도 독일과의 전쟁에 참전을 하게 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알파라는 세네갈 청년이
전투에 참여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성장 소설이다.

최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에 경제,
문화 등 여러 일상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직접적인 화마에 휩싸여 있는 지역에 위치한 사람들은
더욱 큰 아픔과 충격 속에 하루를 나고 있을 듯싶다.
과거 전쟁에서는 지금보다 더 직접적으로 적군과
대치하면서 피 튀기는 전투를 했을 것이다.
이제 갓 스물이 된 어린 알파와 그의 친구 마뎀바는
총알받이와도 같은 돌격 방식의 전투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죽음의 그늘 아래서 맞설 수밖에 없었다.
형제보다도 더 가까운 친구가 고통스러운 죽음의
시간을 내 품 안에서 거두게 되는 끔찍한 현장에서
신을 향해 독백을 하며 이야기가 시작하게 된다.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 저자는 프랑스 출신이지만
세네갈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프랑스에서 대학을
나오고 18세기 불문학 학자로 활동하면서 현재
남불의 포(PAU) 대학에서 문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1년 <영혼의 형제>로 각종 국제 공쿠르 상을
휩쓸고 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책의 서문에 '혼혈의 싦을 전해 주신 내 부모님께'
문구를 보면, 세네갈과 프랑스의 감성을 모두 지녔기에
저자 역시 사회의 부조리와 편견에 대한 목소리로
우리 세대에도 더욱 공감 가는 역사 이야기인 듯싶다.
저자는 실제 프랑스와 독일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세네갈의 증조부가 당시에 대해 남겼던 몇 줄의
편지에서 영감을 얻고 이 소설을 집필을 했다.
...(중략)...
그들은 적들이 그들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에
만족해했다. 그들은 자신의 두려움을 잊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던 것이다. 그러나 왼손엔 총을 들고,
오른손엔 가지치는 칼을 쥐고 포복하다가
땅 밖으로 몸을 내던지며 와하고 튀어나올 때면,
그들의 얼굴은 광기 어린 눈빛으로 번들거렸다.
_p. 26
프랑스 군은 식민지 아프리카 여러 종족들의
청년들을 징집해서, 그들의 검은 피부와 야만성을
과시하기 위한 커다란 칼을 전투 무기로 쥐여 주고는
공포심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전쟁에 임했다고 한다.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 주인공인 알파는 거의
친형제와 다를 바 없이 끈끈한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 마뎀바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시작을 한다.
적군에 의해 심각한 부상을 입고 퇴각한 친구는
자신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알파의 손으로
죽여달라고 하지만 그의 부탁을 들어 줄 수 없었다.
그가 그렇게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에
본인이 그를 선두에 뛰도록 부추겼다며, 이미
자신으로 인해 한번 죽임을 당한 친구를 두 번
죽이는 것은 인간의 율법과 조상들의 율법을
거역할 수 없었고 인간적이지 못한 행동이라 여긴다.
그렇게 친구의 험한 죽음을 망연자실하게 목도하며
자신의 무책임한 행동에 자책을 하게 된다. 점점
광기 어린 전투 속에 그 자신도 자신의 존재를
점점 잃어가면서 스스로 광기 그 자체가 되어 간다.
"너희들은 아프리카의 초콜릿이다."라면서
야만인이 되어 주기를 강조하는 아르망 대위의
진격을 알리는 호각 소리와 함께, 참호 속에서
뛰쳐나와 적진을 향해 달려가기를 반복하고 있다.
프랑스가 원하는 것은 제국주의를 위한 헌신이나
애국심보다도, 적군들에게 더욱 야만적인 모습으로
공포를 조장하는 게 우선이었던 그들이었다.
불타오르는 애국심으로 나라를 위한 전투 역시
그 아픔은 클 수밖에 없을 텐데 자신의 조국도 아닌
제국주의의 희생양으로 총칼 앞에 놓인 그들은, 어쩌면
일제강점기의 우리 선조들 모습에 투영되기도 한다.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 문체가 일상의 문장이
아니라, 영웅들의 서사시를 노래하듯이 구전되어
전달되었던 그런 고대시와 같은 구성이라서
잔인하고 끔찍한 전투의 장면 묘사들도 하나의
오페라 연극처럼 아름다운 수식어로 연결되었다.
어쩌면 하늘의 신에게 지상의 벼룩만큼 작은
하찮은 인간들의 무의미한 전쟁을 알파를 통해서
개탄하는 목소리로 고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너의 절친, 형제보다 가까운 너의 벗을 죽이지
마라. 그의 삶을 거두어 가는 사람은 네가 아니야.
신의 손이 할 일을 네가 나서지 마라. 악마의
손이 할 일을 너의 몫으로 여기지 마라.
알파 니아이, 만약 네가 그를 죽인다면,
파란 눈의 적이 시작한 한일을 네가
마무리했다는 사실을 가슴에 품고서, 어떻게
마템바의 부모님 앞에 떳떳하게 나설 수 있겠니?"
_P. 43

알파는 그의 친구를 죽일 수는 없었지만, 그의
슬픔 따위는 아랑곳 없이 진격과 퇴각을 반복하는
소모전의 전투 과정에서 퇴각 명령이 떨어진 이후에,
그는 적진에 몰래 잠입해서 적군의 손목을 잘라오고
총도 탈취해서 돌아오는 기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파란 눈의 적군을 희생양으로 삼으면서, 친구
에게 해주지 못했던 적의 삶을 마감시켜주었다.
그는 마침내 진정한 인간성을 되찾았다고 하늘의
신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을 것인지 묻고 있는듯했다.
그렇게 총 일곱 개의 적군의 손목을 전리품으로
들고 오면서, 군에선 처음에는 그를 영웅으로 칭하면서
훈장까지 사사했지만 점점 그를 악마로 여기면서
프랑스 군에서도 그를 피하게 되고 퇴출시키려 한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알파는 악마와 같은 야만인이
되어가고 전쟁의 광기를 쏟아내고 있었지만,
정작 그렇게 만들었던 당사자들은 오히려 그 죄를
그에게 짊어지게 하고 쓰레기처럼 치워버리길 원했다.
이제 갓 스물 어린 나이의 한 청년이 세상에 나와
살육의 현장에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당사자가
아니라면 상상이 가지 않는 환상과도 같을 것이다.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 선조들도 그렇게 많은
침략과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지금의 우리를 있게
만들었던 히스토리가 있기에, 전쟁의 공포를 직접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그 슬픔과 아픔은 여전히
진행 중임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진격 호각이 불리면, 참호 속에서 뛰쳐나가고
다시 퇴각 명령에 되돌아오는 도돌이표 같은
전투에서 누구라도 끔찍한 공포심이 가득할 것이다.
군대에서는 직속 명령만이 존재하기에, 명령에
불복종했던 알파의 다른 동료들은 적군이 아닌
자신의 대위에게 오히려 즉결 처분을 받게 되었다.
..(중략)...
전쟁터에서 미친놈은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말하지 않는다. 신의 진실로 말하노니,
그 미친놈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은, 백인이건 흑인이건, 대적한 적군의
총탄을 향해 조용히 몸을 던질 수 있도록 미친놈을
연기했다.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큰 두려움 없이
죽음 앞에 내달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_P. 50
마치 기계처럼 살인을 위한 전투 로봇 같던
알파는 스스로 생각을 하면서, 전쟁의 분노와
광기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서 멈추기를 바란다.
그의 절친과의 만남, 어머니와 아버지의 만남,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 등 알파의
역사도 세상의 편견과 사랑 사이에서 힘겨운
모습의 과거를 떠올리는 장면들로 연결되었다.
점점 악마 군인으로 변해가고 있는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지 못한 후회와 회환만이 가득 차 있는 자신을
돌아보는 참회와 회개를 담은 자서전과도 같았다.
아직 꽃을 채 피우지 못한 젊은 청년에게 전쟁보다도
사회의 통속적인 편견과 인종 차별 등.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악마와 같은 관습과 행동들 속에서
과연 누가 악마인지 묻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중략)...
만일 그 순간, 그의 파란 눈이 완전히 빛을
잃지 않았다면, 나는 그의 옆에 누워 그의
얼굴을 내 머리 쪽으로 돌려 그가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바로 그의 멱을 딴다. 인간적으로
말이다.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
_P,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