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군산에 가는가 - 해방 후 3세대가 본 일제강점기
강석훈 외 지음 / 글누림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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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에 나는 언제나 전주라고 대답한다. 실은 초등학교 6학년 때 군산에서 전주로 전학 왔다. 내가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곳은 두 곳이다. 친가와 외가가 있는 김제와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군산인데 두 군데 모두 전라북도 소도시니까 변두리 출신이라고 할 수 있다. 중 고등학교를 전주에서 나온 데다 김제나 군산 같은 작은 도시는 모르는 사람이 많고 거기에 대해 설명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전주 출신인 척 한다. 사람들은 전주 출신이니 음식을 잘 하냐고 물어보거나 전주비빔밥이 맛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어본다.

 

 일하는 엄마는 음식을 잘 못했고 비빔밥은 집에서 그냥 비벼 먹는 거지 사먹는 건가 싶었다. 한마디로 전주에 있을 때 비빔밥을 한번도 사먹지 않았다. 중 고등학교 때 집 학교 도서관 이외 가본 적도 없어서 실은 누가 전주에 대해 물어봐도 대답이 변변찮다. 요즘은 한옥마을이나 전동성당 등이 유명해져서 관광지가 되었다. 내 유년의 기억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곳은 끝도 없이 펼쳐지던 논이 있는 김제나 바다가 넘실거리는 군산이다. 특히 군산에서 많이 돌아다녔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군산에 가기 시작했다. 오래된 ‘이성당’의 단팥빵을 먹으러 가기도 하고 누가 정했는지 모를 3대 짬뽕집인 ‘복성루’를 방문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숨겨진 맛 집을 방문하고 이색적인 풍경을 나만의 카메라에 담는 이른바 ‘출사’의 명소로 군산을 소개했다. 멋지게 편집되어 올라오는 군산의 풍경은 반가웠지만 낯설었다. 화질 좋은 카메라가 편집한 그런 근사한 풍경이 군산에는 없다. 

 

 찝질한 비린내가 가득하고 바다는 속을 알 수 없는 진흙탕에 기름이나 스티로폼이 떠다니는 곳, 그곳에서 나는 일제시대 건물인 군산 국민학교를 다녔고 남동생은 안국사(현 흥천사) 유치원을 다녔다. 우리 남매가 헤메고 다니던 서국민학교 앞의 해망동 굴다리나(주로 방방을 탔던) 까만색 게를 주우려고 노력하던 째보 선창이 다 역사적인 곳이었다니 놀랍다. 우리 가족이 주말마다 놀러갔던 월명공원의 수시탑 자리가 해망정이 있던 자리란다.

 

 군산 시내와 개항장을 연결하기 위해 일제시대 때 지었던 해망굴은 바닷바람이 들어와 시원해서 여름이면 인기만점이었는데 강제 징집된 조선인이 손으로 직접 바른 천정의 손 무늬를 책에서 처음 봤다. 한국 전쟁 때 폭격을 피해 북한군이 지휘본부를 이곳에 설치했는데 그 당시 유엔군의 폭격기 총탄 자국도 마찬가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이제 식상할 정도로 익숙한 말인데도 또 쓸 수밖에 없다. 내가 어린 시절에 드나들었던 해망굴에 이런 역사가 있었다니...... 

 

 로마에 갔을 때 가이드 한 분이 평범하게 생긴 작은 성당을 가리키며 여기서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했다고 이야기했을 때 감동적이었다. 벽돌 하나 조각 하나에 깃들지 않은 이야기가 없었고 그 무거운 역사와 함께 하기 위해서 후손들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었다. 어릴 적 내가 자란 도시 곳곳에 비록 일제시대의 잔재긴 해도 많은 건물과 유적이 남아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역사를 찾고 공부해서 상세히 설명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중국집에서 외식하고 돌아갈 때마다 아빠는 이성당 빵집에서 커다란 롤리팝을 사주셨다.  색색의 사탕을 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행복’ 그 자체였다. 그 길에는 미군들을 위한 호피무늬 실크 잠옷이며 군용 잠바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했다.

 

 우리 할아버지가 수확한 만경 평야의 쌀이 기차를 타고 째보 선창에 뜬다리를 통해 배에 실리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알고 보니 도시 전체가 시대를 앓은 흔적으로 가득하지만 내게는 행복한 유년 기억의 한 부분이다. 얼마나 변했는지 한 번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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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발돋움
헨리 나우웬 지음, 이상미 옮김 / 두란노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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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의 책을 펼치면 우리는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 사람이 크고 빠르게 이야기 하는 사람 일수도 있고 아는 것을 일일이 말해야지 직성이 풀리는 사람일 수도 있고 수줍어하며 요점만 말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아마 그것이 문체일 것이다. 헨리 나우웬의 ‘영적 발돋움’을 읽으면서 나는 낮지만 정확한 말투로 조곤조곤하게 설명하는 노학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고 나도 모르게 책을 읽는 자세를 고쳐 앉게 되었으며 심박동이 천천히 잦아드는 것을 느꼈다. 

 

 내가 만난 기독교인들은 말을 잘한다. 좀처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본인의 생각이나 느낌을 잘 표현한다. 일반 교회의 목사님들은 열정적인 퍼포먼스에 가까운 설교를 하시며 신도들은 본인의 내적인 기도를 모든 교인 앞에 나가서 선언하는 시작기도를 한다. 부흥회를 가본 적은 없지만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면 울면서 통성기도를 하기도 하고 두 팔을 벌려 찬송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문화들이 낯설고 내가 따라 하기에는 영 어색하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외향적인 기독교 느낌과는 다르다. 그것은 학창시절 억지로 눈감고 앉아있던 ‘명상의 시간’처럼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우면서도 편안하다. 저자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명확하다. 서양에서 말하는 ‘선(ZEN)'의 정서를 가지고 '영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는 영적인 삶이란 ‘가장 깊숙한 자아로’ ‘우리의 동료 인간들에게로’ 그리고 ‘하나님께로’ 향하는 발돋움이다, 라고 말한다. 세 부분으로 구성된 이 책은 단 한 문장도 버릴 데 없이 정갈하고 따뜻하다. 꼭꼭 씹어서 잘 소화시키고 싶은 좋은 문장들이 가득하다. 그 문장이 현란한 기교가 있어서가 아니라 진심을 정확하게 집어내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영문이라면 존댓말이라는 개념이 없을 텐데 존댓말로 번역되어 있다는 부분과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마지막 단락인 환상에서 기도로 향하는 움직임이 내게는 구체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기도’할 수 있는 대단한 비법을 가르쳐 주기를 기대해서였을까? ‘기도’를 통해 하나님에게 발돋움해야 하는데 내가 아직 기도가 부족해서 일까?

 

 이 책이 더욱 감동적인 것은 저자의 행보가 본인의 글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생각으로 말로 글로 우리는 얼마든지 주님 곁에서 주님처럼 살고 싶어 하지만 막상 실천하는 삶을 살기는 어렵다. “우리가 그들처럼 진실하게 삶을 살아가도록 돕기 위한” 훌륭한 안내자로서의 모습을 저자는 본인의 삶을 통해 보여 준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다 읽고 나자 마치 갓 구운 소박한 빵을 좋은 사람들과 나눠 먹은 기분이 들었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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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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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에서 일 하다보면 가끔 ‘뚜껑’이 열릴 만큼 열 받을 때가 있다. 손끝이 분노로 바들 바들 떨리고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목소리가 흔들린다. 가끔씩 터져 나오는 ‘분노’의 기원이 어디인지 궁금했다. 개인적인 인격의 문제인지, 숨겨진 원인이 있는 건지 감정의 쓰나미가 지나가면 감정 조절 실패에 후회하면서도 막상 비슷한 상황이 오면 되풀이 된다. ‘수신’ 책을 읽으며 인격을 가다듬어 보아도 ‘도’는 아무도 없는 면벽 수련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사람 속에서 부대끼며 이루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멸은 모욕하고 경멸하는 것, 즉 마음으로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을 의도적 혹은 무심코 격하시키고 그 존엄성을 부정하는 것, 상대방을 비하하고 깔아뭉갬으로써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다. 이런 행동들은 수치로 계량화 할 수 없다. 퉁명스러운 말씨, 안하무인의 태도, 경멸하는 듯한 표정, 자연스럽게 섞여 나오는 반말투...... ‘심증’은 있으나 ‘물증’을 잡기가 어려운 상황들이다.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식하고 타인을 통해 확인하면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 모욕은 바로 그 자존감을 손상시키는 행위다. 모욕의 핵심은 상대방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거나 격하시키는 것이다. 그로써 나의 존재 가치가 높아지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다.

 

 저자는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불균형을 꼽는다. “경제의 규모는 막대하지만, 그 결실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나누는 시스템이 부실하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지성은 쇠퇴하고 있다. 수명은 길어졌지만,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면서 죽음을 준비하기는 훨씬 힘들어졌다. 경쟁력은 높아졌지만, 혹독하게 경쟁하면서 치러야 하는 사회적 부작용과 개인적 피로감을 견디기 어렵다. 이런 원인으로 일상과 사회 곳곳에 감정의 지뢰밭이 드리워 있는 듯하다. 표출할 대상을 만나면 쌓여 있던 화를 한꺼번에 분출한다. 나는 분노한다, 고로 존재한다. 노동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견뎌야 하는 과로와 스트레스 그리고 굴욕감은 어디에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현대사회에서 가장 유력한 것은 바로 소비시장이다. 돈 벌면서 받은 ‘천대’를 돈 쓰면서 받는 ‘환대’로 갚는다.”

 

 모멸은 다른 모멸로 이어지면서 자괴감과 수치심을 확대 재생산하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분노는 자기나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표출된다. 내가 무심코 반복하는 언행이 사회를 형성하는 과정의 일부다. 타인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관행에 나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사회학자로서 많이 연구된 분야가 아닌 생소한 분야의 도전은 의미 있었으나 논지를 전개할 때의 논거들끼리의 인과성이 약했다. 에피소드가 주로 논거로 사용되는데 그 점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간혹 에피소드 앞뒤가 부자연스럽기도 하고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하려고 해서 집중도가 부족한 부분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치화 할 수는 없으나 우리 곁에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은 ‘존엄’과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각도에서 다룬 새로운 시도가 돋보였다.

 

 가끔 진료실에서 무례한 환자들을 만나거나 자신의 역할이 최고인양 으스대는 직원을 맞닥뜨릴 때 돈을 적게 받아도 존경받고 존중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진료실에서 작은 표정이나 말투로 다른 누군가를 불쾌하게 하지는 않았나 직원에게 네가 뭔데? 가 아니라 내가 뭔데? 라고 생각해 봤나 고민하게 된다.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그리고 인간을 존엄하게 하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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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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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우리가 태어난 시대를 결정할 수 없다. 부모를, 인종을, 성별을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 내가 저자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유대인이었더라면 나도 시대의 광풍에 휩쓸려서 수용소에 갔을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짐승처럼 줄 세워져 몸에 난 털이란 털은 모두 깎여서 비누 한 장을 받아 목욕실로 들어가는 장면이 떠오른다.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 박사는 나치 수용소에 수감된 경험을 담담히 술회한다.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고통과 낙담을 통과하면서 인간이 얼 만큼 잔인해질 수 있는지, 무감해질 수 있는지 직접 경험하게 된다. 본인이 느꼈던 심리변화를 주관적으로 서술하면서 동시에 수감자들의 심리변화를 객관적으로 분석한다. 강제수용소에서의 생활은 인간의 영혼을 파헤치고, 그 영혼의 깊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나도록 만들었다. 고매한 인격과 미천한 인격의 차이는 결국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이 취한 태도였다. 가혹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서도 인간은 정신적 독립과 영적인 자유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같은 수용자 입장이면서도 수용자들을 괴롭히고 관리하는 ‘카포’의 역할을 맡을 수도 있고 내가 가진 빵을 더 약한 자를 위해 나누는 사람의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 그것은 나 자신의 ‘선택’ 인 것이다. 가족도 자유도 다 빼앗기고 몸뚱이와 번호로만 남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자유’만은 남아 있고 그것이 그 사람을 결정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일제 시대에 독립운동을 하면서 풍찬노숙을 할 수도 있고 일제 앞잡이가 되어 다른 사람을 닦달하는 대가로 배부르고 등 따시게 살 수도 있다. 70-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고문당하고 옥살이를 할 수도 있고 그들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입장에 설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본인의 ‘선택’이다.

 

 저자는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은 의미를 찾고자 하는 존재이고 의미를 찾는다면 그것이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힘도 준다고 말한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몸뚱이만 남은 처절한 ‘실존’을 경험한 그는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 하고 객관화 시켜 ‘로고 테라피’라는 심리 분석 및 치료이론을 개발한다. 프로이드는 신경증의 원인으로 ‘억압’과 그것의 치유로 ‘전이’ 개념을 밝히면서 정신분석의 토대를 닦았다. 프로이트 학파와 아들러 학파가 쾌락에의 의지와 권력에의 의지로 해석했다면 로고 테라피는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를 기본으로 두고 있다. 이것은 기존의 해석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강하는 접근이다. 이른바 ‘인간의 얼굴’을 한 정신 분석학 이다.

 

 먹을 것은 부족하고, 춥고,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퉁퉁 얼어버린 발을 찢어진 신발에 구겨 넣을 때 느껴지는 통증은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럽다. 그 고통과 좌절의 한 가운데서 자신의 빵을 나누거나 양심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라면 고통을 참지 못한 채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살기 위해, 편해지기 위해 나를 배반할 무슨 짓을 하던지 그도 아니면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채 철조망에 몸을 던져버릴 수도 있다. 그게 살아서 그 모든 시련을 감내하는 것보다 쉬운 길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 모든 시련을 견디고 이겨냈다. 끝끝내 살아내서 허무에 빠지지 않고 본인의 연구 분야에 접목시키고 환자들을 만났다. 말이 쉽지 본인의 ‘선택’을 온몸으로 책임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저자는 스피노자<윤리학>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며 책을 맺는다.

 

“그러나 모든 위대한 것은 그것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실현시키는 것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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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배를 접는 시간 - 한진중공업 3년의 기록
허소희 외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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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퇴근 시간이 길어서 책 한권은 챙겨서 지하철에 탄다. 이 책은 며칠 째 가방 안에만 있었다. 차마 손이 가지 않았다. 무거운 내용 일까봐, 내 안에 뭔가를 건드려서 불편하게 될까봐 그랬는지 모르겠다. 며칠을 가지고만 다니다가 첫 장을 펼치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눈물 콧물이 쏟아져서 책장을 넘길 수 없게 될 정도였고 내릴 역이 가까워지자 다 읽었다. 

 

 종이배를 접는 시간은 한진 중공업 싸움의 기록이다. 희망버스라는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낸 싸움이기도 했고 아직도 진행 중인 싸움이기도 하다. 3년 전 한진 중공업은 400명의 노동자를 해고하겠다고 했다. 선박 주문이 없어서 2010년 손실액이 517억 이라는 이유였다. 운영이 어렵다던 회사는 다음날 주주들에게 176억원을 현금 배당했고 대주주인 조남호(한진 중공업 회장)는 29억 원을 받았다. 10년 전에도 회사는 수주가 어렵다며 500명을 해고 했고 이에 맞서는 노조에 손해배상가압류 소송을 걸었다. 김주익은 85호 크레인에 올라 손배 가압류 해제, 해고자 복직, 징계 철회를 요구했다. 회사는 꿈쩍도 안하고 조합원들은 떨어져 나가고 129일째 되는 날 그는 85호 크레인에 목을 맸다. 그리고 십년이 지난 후에도 회사는 단협을 무시한 채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수주 제로를 만들고 임금이 싼 필리핀 조선소로 물량을 뺐다. 여기 까지 만으로도 숨이 차오른다.

 

  김주익 노동자가 투신한 이후 겨울에 보일러도 틀지 못했다는 김진숙 위원장은 산자와 죽은 자가 나눠진 상태로 분열하던 쌍용차 투쟁을 떠올리며 그 전에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85호 크레인을 오른다. 주검으로 내려올지 살아서 내려올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끄덕도 하지 않는 회사에 맞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김주익 열사는 100일이 넘어서 주검으로 내려왔고 김진숙 위원에게는 희망버스가 왔다. 결국 309일 만에 김진숙 위원장은 살아서 크레인을 내려왔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회사는 어용 노조를 만들고 노동자를 분열시키고 또 다시 복직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언론이 국회가 난리치니 약속을 지키는 시늉만 한다. 노동자들은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데 자본가들은 너무 쉽게 해고 하고 약속을 저버린다.

 

 이 사회에서 나의 가치는 하는 일과 임금으로 매겨진다. 해고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살인이다. 사회적인 위치로 내가 먼저 죽고 생계를 해결하지 못해서 가족이 같이 죽는다. 사택에서 같이 살던 직장 동료와 이웃이 하루아침에 나가는 가족과 남는 가족으로 나뉜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노동자의 임금이 싼 나라로 공장을 옮기는 것이 잘못되었는가. 자유로운 경제 이윤을 쫓는 것이 죄가 되는가. 내 사업장에서 못나가겠다고 목숨을 던지고 영업을 방해하는 것이 죄가 아닌가. 적어도 본인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는 대가가 주어지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남은 사람은 언제까지 일해야 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떨고 잘린 사람은 열패감과 좌절감에 헤매야 한다. 직장에서,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거기에 항의하면 매 맞고 구속되며 수십억 수백억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병든 사회이고 힘의 균형이 깨진 사회다. 쥐똥 섞인 도시락을 먹어가며 청춘을 바쳐가며 함께한 회사다. 그 이윤을 공유하고 인정받지는 못할망정 하루아침에 길바닥으로 내쫓는 것은 ‘범죄’다. 목숨을 걸고 싸워도 지기만 하는 이 싸움이 심지어 노동 귀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싸움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노조’도 없는 비정규직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판판히 깨지는 계약직이다. 찍 소리도 못 내보고 죽을 수밖에 없는 약자다. 

 

 대학시절에 나를 지배했던 대부분은 감정은 열패감이었다. 어떻게 해도 맨 날 지기만 했다. 이기는 싸움이 없었다. 잠시 이겼다고 생각되더라도 그건 일시적인 것이었다. 손해 배상처럼 어마어마한 그물이 그들에게 다시 드리워졌다. 만성적인 패배에 지쳤다. 실은 내 싸움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나는 뒤돌아서서 내 길을 가면 된다. 어차피 나는 ‘연대’하는 입장일 뿐 ‘그들’의 싸움이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다른 사람들의 지지나 관심의 부재였다. 철지난 이야기 한다는 표정, 모두 다 새로운 가치 새로운 이념을 위해 살고 있는데 나만 외떨어진 것 같은 소외감, 인정받지 못하는 외로움 등이 나를 지치게 했다. 그래서 희망버스 집회 한 두 번 참석하고 후원계좌에 얼마간의 돈을 보내면서 평안한 잠을 청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막막한 처지를, 어떻게 저항해도 지기만 하는 싸움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함께 하기가 불편했다. 그보다 여행 블로그를 예쁘게 장식된 인테리어 블로그를 구경하고 오늘은 뭘 해먹을까 뒤지는 일이 훨씬 편안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다고 위안했다. 

 

 기술을 가진 숙련공들이 실업자가 되고 멀쩡한 도크는 왜 폐쇄되어야 하는가. 필리핀 노동자들은 또 얼마나 위험에,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노출되어야 하는가. 일하겠다고 하는 노동자들을 쫓아낼 용역에 쓸 돈은 있으면서 노동자들을 책임 질 돈은 없는가. 어느 날 갑자기 쫓겨나는 데 항의하면 수십억 수백억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하는가. 배도 잘 만드는 나라가 배 만들고 싶다고, 일하고 싶다고 온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가 왜 폐기 직전의 다른 나라 배를 들여와야 했는가. 왜 세월호 선장은 나이 많은 계약직 바지 사장일 수밖에 없었을까. 대부분의 선원이 계약직에 안전 교육을 못 받고 있는가. 책을 읽는 동안 질문은 끝이 나지 않는다. 우연히 세월호 였을 뿐이다. 일인 일 승무제가 되고 노후 된 열차에 정기 검사를 외주화한 이호선 사고도 우리 사회에 잠재되어 있는 사건 사고 중의 하나 일 뿐이다. 

 

 대강 봉합할 수 없는 질문들이 막막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이 싸움은 ‘희망버스’라는 새로운 움직임을 보여주고 또 많은 질문들을 우리에게 한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희망버스’를 탄 사람들은 누군가의 말처럼 어둠을 저주하기 보다는 촛불을 밝혔으며 작고 힘없는 그 빛이 세계를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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