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자놀이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 그래서 이제 어느 정도 민주화가 된 것 같으니까, 이제 나는

 더 커지고 싶었고 더 재밌어지고 싶었다.  ......

 아니, 나는 그러길 바랐고, 어느 정도 그런 사회가 왔다고

 생각했고, 이명박 정권이 처음 촛불집회 시위자들을 구속했을 때

 '설마' 했지만, 이후 미네르바가 구속되면서 '어어!' 했지만,

 드디어 아침 출근시간에 집을 잃고 항의하는 시민 다섯과

 젊은 경찰 한 사람을 불태워 죽이는 것을 보고 '이제 생각보다

 끔찍한 사회가 올지도 모른다' 불길하게 직감했지만, 그래도

 내가 가만히 있어도 사회가 다시 이성을 회복하겠거니 믿었다.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21세기이고, 이미 언론자유도 있었고,

 무엇보다 나는 이런 정치나 경제, 노동 체질이 아니며, 똑똑한

 분들은 그 분야에 많이 있었다. '다 잘될 거야.' 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왜 꼭 나야 하냐고?' 생각했고, 아버지의 죽음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돕는 구좌에 성금을 보냈고, 그리고 그것으로

 며칠 동안 스스로를 위로하며 편히 잠들 수 있었다.

 그런데 죽음의 행진은 그 후로도 지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고,

 이제 나는 여기 와 있다."

 

 " 내가 그들의 죽음에 (누군들 아닐까마는) 광의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리고 실은 내가 오래도록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나는, 그래도, 그러니까 무언가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용산 참사와 쌍용자동차 파업의 후유증

한진 중공업 사태와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태까지.

세상이 좋아졌다는데 도통 좋아진 줄 모르겠는 이런 일련의

일들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했으나 나도 그런 심정이었다.

 

"나는 이런 정치나 경제, 노동 체질이 아니며, 똑똑한 분들은

 그 분야에 많이 있었다" 이런 심정......

 

그래서 희망버스 집회 한 두번 참석하고 후원계좌에 얼마간의

돈을 보내면서 평안한 잠을 청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막막한 처지를, 어떻게 저항해도 지기만 하는 싸움을

들여다보고 함께 하기가 불편했던 것이 실제 마음일 것이다.

그보다 여행 블로그를 구경하고 예쁘게 장식된 인테리어 블로그를

구경하고 오늘은 뭘 해먹을까 뒤지는 일이 훨씬 편안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살고 있을거라고 위안하는 편이...

 

그래도 작은 일이라도 무언가, 해야겠다. 해야만 겠다.는 생각.

이름 없는 쌍용자동차 사람들에게 이름과 얼굴과 목소리를 부여한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처럼 작은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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