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우리가 태어난 시대를 결정할 수 없다. 부모를, 인종을, 성별을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 내가 저자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유대인이었더라면 나도 시대의 광풍에 휩쓸려서 수용소에 갔을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짐승처럼 줄 세워져 몸에 난 털이란 털은 모두 깎여서 비누 한 장을 받아 목욕실로 들어가는 장면이 떠오른다.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 박사는 나치 수용소에 수감된 경험을 담담히 술회한다.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고통과 낙담을 통과하면서 인간이 얼 만큼 잔인해질 수 있는지, 무감해질 수 있는지 직접 경험하게 된다. 본인이 느꼈던 심리변화를 주관적으로 서술하면서 동시에 수감자들의 심리변화를 객관적으로 분석한다. 강제수용소에서의 생활은 인간의 영혼을 파헤치고, 그 영혼의 깊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나도록 만들었다. 고매한 인격과 미천한 인격의 차이는 결국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이 취한 태도였다. 가혹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서도 인간은 정신적 독립과 영적인 자유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같은 수용자 입장이면서도 수용자들을 괴롭히고 관리하는 ‘카포’의 역할을 맡을 수도 있고 내가 가진 빵을 더 약한 자를 위해 나누는 사람의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 그것은 나 자신의 ‘선택’ 인 것이다. 가족도 자유도 다 빼앗기고 몸뚱이와 번호로만 남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자유’만은 남아 있고 그것이 그 사람을 결정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일제 시대에 독립운동을 하면서 풍찬노숙을 할 수도 있고 일제 앞잡이가 되어 다른 사람을 닦달하는 대가로 배부르고 등 따시게 살 수도 있다. 70-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고문당하고 옥살이를 할 수도 있고 그들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입장에 설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본인의 ‘선택’이다.

 

 저자는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은 의미를 찾고자 하는 존재이고 의미를 찾는다면 그것이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힘도 준다고 말한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몸뚱이만 남은 처절한 ‘실존’을 경험한 그는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 하고 객관화 시켜 ‘로고 테라피’라는 심리 분석 및 치료이론을 개발한다. 프로이드는 신경증의 원인으로 ‘억압’과 그것의 치유로 ‘전이’ 개념을 밝히면서 정신분석의 토대를 닦았다. 프로이트 학파와 아들러 학파가 쾌락에의 의지와 권력에의 의지로 해석했다면 로고 테라피는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를 기본으로 두고 있다. 이것은 기존의 해석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강하는 접근이다. 이른바 ‘인간의 얼굴’을 한 정신 분석학 이다.

 

 먹을 것은 부족하고, 춥고,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퉁퉁 얼어버린 발을 찢어진 신발에 구겨 넣을 때 느껴지는 통증은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럽다. 그 고통과 좌절의 한 가운데서 자신의 빵을 나누거나 양심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라면 고통을 참지 못한 채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살기 위해, 편해지기 위해 나를 배반할 무슨 짓을 하던지 그도 아니면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채 철조망에 몸을 던져버릴 수도 있다. 그게 살아서 그 모든 시련을 감내하는 것보다 쉬운 길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 모든 시련을 견디고 이겨냈다. 끝끝내 살아내서 허무에 빠지지 않고 본인의 연구 분야에 접목시키고 환자들을 만났다. 말이 쉽지 본인의 ‘선택’을 온몸으로 책임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저자는 스피노자<윤리학>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며 책을 맺는다.

 

“그러나 모든 위대한 것은 그것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실현시키는 것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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