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넥스트 도어
알렉스 마우드 지음, 이한이 옮김 / 레드박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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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웃집에 잔인한 살인범이 살고 있다!


셰릴이란 소녀는 담배를 피우고 자리로 돌아갔다. 돌아간 곳에는 형사들과 사회복지사가 함께 있었다. 그곳은 취조실. 버나드 경장과 체이니 경위는 그 사람이 준 텔레비전 이야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사람이 텔레비전을 주는 대가로 무엇을 바랬는지 얼핏 알았지만 그런 위험한 상황도 별 개의치 않을 정도로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온지라 셰릴은 별 의심없이 그 남자와 함께하게 된 몇일을 이야기 했다. 역겨운 냄새가 나긴 했지만 그 원인이 ‘그것’ 때문인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곧 이여 형사들은 서류철에서 리사 던이라는 이름의 여인의 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셰릴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리사 던이 아니라 콜레트다. 6월 초쯤 이사온 여자, 니키 언니가 실종되고 나서 이사 온 여자였다. 얼이 빠진듯한 셰릴에게 형사는 더욱 충격적인 이야기를 건넨다. 그 남자가 자기 냉장고 냉동실에 ‘그것’을 두었는데 거기서 잘려진 손가락 두세개가 발견되었고 지문 조회를 해보니 리사 던 아니 콜레트와 일치하다는 이야기였다. 실종된 니키는 어디있는 것일까? 콜레트(=리사 던)는 손가락이 잘린채 살아있을까 죽어있을까?


이야기는 콜레트(=리사 던)가 이사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년전 클럽에서 일하던 리사 던은 우연히 사장의 살인사건을 목격하고 거금을 돈가방을 들고 스페인으로 도주한다. 그리고 돌아온 지금 당시의 범인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신분을 콜레트란 이름으로 세탁해 런던의 노스본 23번지의 허름한 아파트로 이사한다. 주변의 개발되는 지역에 비해 누추했지만 요양원에 있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 요양원과 가까운 거리를 선택해야만 했고 도망자 신분에 걸맞게 신원보증이 필요 없는 현금 거래가 가능한 아파트 였기에 그녀에게는 허름하지만 최적의 아파트였다. 이 최적의 아파트, 아니 이 허름한 아파트에 허름함과 어울리는 최적의? 이웃들이 살고 있었다.


사회보호센터를 나와 거리에서 남자들은 유혹해 돈을 빼앗고 상점에서 물건을 훔쳐 파는 소매치기와 좀도둑질로 하루하루를 연명해가고 있는 15세 가출 소녀 셰릴, 예산 삭감으로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는 고독한 독신남이자 사회복지사인 토머스, 오로지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고 자기만의 세계에 홀로 살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이자 음악교사인 제라드, 아내를 잃고 홀로 영국으로 망명와 망명절차를 밟고 있는 친절한 이란인 호세인, 칠십 평생을 부모에게 물려받은 이 아파트 지하에서 살아가고 있는 노인 베스타까지... 사회에 소외되어있고 어딘가 부서진 삶을 살아온 그들은 각각이 자신의 이익과 안위를 위해 반드시 숨겨야할 비밀이 있는데, 그래서 인지 서로 어느 적정선을 넘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기묘한 이웃들과의 콜레트의 동거 아닌 동거는 어느 시점에서 위험한 기류를 타고 적정선을 넘어가된다.


사건의 발생은 베스타 할머니의 하수구에서 시작된다. 베스타의 집 부엌 하수구에서 이상한 악취가 풍기고 오물이 넘쳐나면서 베스타는 집주인에게 항의를 하게 되지만 집주인은 배관수리는 하지 않을뿐더러 베스타가 귀찮고 빨리 그녀를 내보낼 궁리를 하게 된다. 집주인은 어떤 속셈으로 베스타의 집까지 몰래 침입하게 되고 베스타는 두려움과 당황스러움에 물건을 휘둘르고 거기에 맞은 주인이 어이없게 죽자 베스타는 황망해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파트 내부인들은 모두 각자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사건 신고가 아닌 사건 매장을 하기로 하는데...   


한편, 이렇게 결의한 이웃들은 이제 시체유기죄를 뒤집어쓴 범죄의 공모자가 되었는데 각자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위험한 공모를 한 이들에게 더 위험한 것이 있었으니... 이 중 한명은 진짜 살인범이였다는 것. 그들 중 한명은 극악한 연쇄살인마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고이 곁에 두고 평생을 사랑하기로 하여 살해하고 시체로 만들어 보관하는 연쇄살인마. 그는 이제 그의 연인들 중 실증 난 시체 한구를 폐기하고 이웃들 중 한명을 새로운 연인으로 맞이하겠다고 다짐한다.


각자의 사정과 비밀로 베스티의 살인죄를 감추기 위해 한순간에 공범이 된 기묘한 이웃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숨겨진 진짜 살인마... 평범한 하루, 권태로운 일과는 어느덧 함정과 매장 살인으로 얼룩져 버리는데...


-일상을 지내는 공간 아파트, 평범한 무대가 주는 강렬한 서스펜스


사람이 일상을 살아가는 공간 집, 그 중에서도 대부분의 한국인이 살아가는 주거공간은 아파트가 많다. 좁은 땅덩어리에 옹기종기 혹은 다닥다닥 붙어있는 고층 빌딩은 밤이면 작은 창 사이로 불빛을 뿜으며 각각의 그림자가 그들만의 이야기로 움직인다. 이 소설이 한국인에게 더 먹힐 것 같은 이유는 바로 무대가 이런 ‘아파트’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살고 있는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 그 안에서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사는 것 같으면서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주민이라는 공동체에 속하게 되며, 우연히 마주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무의미한 안부를 묻고, 공동의 목적을 위해 반상회라는 것을 열며, 겉으로 포장된 친목회를 가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무의미한 관계가 의미를 가지게 되는 순간이 관심이나 친애가 아니라 ‘살인’이라면? 내가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집’ 그 집 바로 옆집에 살인자가 산다면? 이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무대가 주는 서스펜스는 누구나 상상해봤기 때문에 가능한 최대의 상상력을 키워내고 더 큰 공포심을 불러 일으킨다. 특히나 우리나라 같은 경우 얼마 전 하남시에서 발생한 층간소음살인사건을 떠올린다면 이 무대가 주는 소설의 실현 가능성은 더욱 더 가능한 이야기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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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걸스
에마 클라인 지음, 정주연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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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피문화가 광풍처럼 몰아쳤던 혼돈의 시기,

열병처럼 뜨겁게 아파야만 했던 소녀들의 치명적인 상실과

위험천만하고 자기파괴적인 질주. 어른이 되어서도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 그날의 기억...

 

중년 여성 이비 보이드는 196914살 자신의 사춘기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폭력과 약물, 반전운동, 문질문명에 대한 반심이 열병처럼 번지던 1969년 남부 캘리포니아. 그 혼돈의 시기에 이비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마음만은 부유하지 못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그러진 가정, 코니 이외에는 가지지 못한 인간관계,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대에 그녀는 혼돈의 시기에 홀로 내던져진 연약한 소녀였다. 외로움과 분노, 반항심, 조금이라도 건들면 터져버릴것 같은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공원에서 히피 소녀 무리를 목격한다. 야하고 경박스러운 웃음소리, 자유로운 행동과 자연스러운 옷차림. 그 무리는 공원주위를 초월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비장하게, 동떨어진 망명 왕족처럼. 이비는 무리를 넋 놓고 뜯어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운명을 나락으로 떨어트릴 소녀에게 매료된다. 이비의 눈에는 가장 예쁘고 유혹적인 검은 머리 소녀 수전. 엄격하고 따분한 기계 같은 기숙사생활에 무료했던 이비에게 수전은 자유로움의 환영 같은 존재였다. 이비는 수전에게 맹렬하게 끌리고 결국 히피무리에 속하게 된다. 히피무리들은 버려진 목장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리더 러셀의 지휘아래 살아가고 있었고 수전에 대한 동경과 사랑, 자신도 그녀와 같기를 바라는 이비는 무리에 속해 살아가게 된다. 히피무리 소녀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저지르는 무모한 일탈의 삶은 태어나 처음으로 겪는 자유와 우정으로 느껴졌다. 여지껏 이비가 간절히 원했던 사람들의 관심, 외로움의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듯한 착각에 점점 더 깊숙이 그들의 삶에 빠져들게 되었다. 결국 소녀들과 범죄를 저지르면서 자신도 그들 중 하나가 되기를 더욱 더 열망하는 이비. 하지만 러셀을 중심으로 이교도 같은 소녀들의 위험하고도 맹목적인 믿음에 소녀들은 방향을 잃고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결국 수십년이 흐른 뒤에도 끔찍한 기억이 될 얼룩진 그날 밤이 찾아오는데...

 

 

-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십대, 십대 아이를 가진 부모, 십대를 지나온 어른,

연약하고 미숙했기에 쉽게 상처 입고 흔들렸을 그 시기를 가진

모두를 위한 이야기.

 

에마 클라인은 쉽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더 걸스는 1969년 찰스 맨슨과 그를 추종하는 소녀들이 저지른 끔찍한 실제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지어낸 소설이다. 보통 이런 충격적인 사건을 모티브로 할려면 화제성을 낳기 위해 주 용의자, 9건의 살인사건으로 35명을 죽인 20세기 최악의 살인마로 평가되고 있는 찰스 맨슨(소설에서는 러셀)을 전방에 내세워야 했다. 장르도 스릴러 장르를 선택하는 것이 대부분의 작가들의 선택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에마 클라인은 전방에 한 소녀, 이비를 내세웠다. 모티브가 된 실제사건에 비하면 주인공이 너무 연약하지 않은가...더군다나 이 소설은 스릴러소설이 아닌 성장소설이다. 모티브가 주는 스릴러적 요소를 기대한 독자들을 무시한 처사가 아닌가... 하지만 이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작가의 선택은 결론적으로 탁월했다.

 

찰스 맨슨 만큼 자극적이진 않지만 소녀의 삶도 녹록지 않았고 소녀가 가진 청소년기의 불안, 공허함, 예민함, 갈등, 욕망, 방황 등은 사춘기를 지내고 있거나 지나온 사람 모두를 설득시키기에 충분히 설득력이 있게 묘사되었다. 설득력을 가진다면 독자는 공감을 하게 되고 공감을 하게 되면 감동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이 책이 가져오는 감정은 단순하고 쉽기보다는 복합적이고 어려울 것이다. 감동이 있되 어떤 감정을 움직일지는 모른다는 말이다. 이비에 대한 동정심, 안타까움, 슬픔, 먹먹함, 혹은 자신의 사춘기에 대한 고마움, 현재 가지고 있는 가족이나 친구에 대한 다행스러움 등 많은 감정이 동요되고 움직일 것이다. 이 소설은 사춘기시절에 대한 공감과 추억을 소환해서 현재 자신의 삶과 과거 열병같은 그 시절을 다시 보게 되는 힘이 있는 소설이다. 연약하고 미숙하기에 쉽게 상처 입었고 더욱 흔들렸던 누구에게나 있었던 상실과 갈망의 시기를 뜨겁게 떠올리게 만든다.

 

- 소설을 읽는 목적이 '재미'라면, 이 소설은 재미에 마음을 담았다.

소설을 읽는 주된 목적은 단연 재미. 그러다 보니 장르소설에 주목하게 되는 추세이다. 여기 재미뿐만 아니라 마음을 담은 소설이 있다. 더 걸스가 바로 그것이다. 솔직히 재미를 담으면 마음에서 멀어지고, 마음을 담으면 지루함이 앞서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실제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시켜 책을 들게 하고, 평탄하지 않은 이비의 굴곡진 인생이 안타까우면서도 궁금해 뒷장을 넘기게 하는 힘이 있으니 재미라는 부분은 충분히 충족시켜주었다. 그런데 거기에 마음까지 담아내다니... 마음을 담아냈다는 말은 이 책을 읽으면 분명 당신은 이비의 이 아니라 마음을 보게 될 것이고, 자신의 사춘기를 떠올리면서 더욱 마음이 흔들릴 것이라는 말이다. 놀랍지 않을가? 책 한권이 인물의 이야기가 아닌 마음을 볼 수 있고 독자의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 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책은 에마 클라인의 데뷔작이라는 점과 그녀의 나이는 25살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소설은 데뷔작 치고는 색이 짙고 강렬하다. 소설에 색을 입히려고 작가들은 자신의 독특한 문체나 플롯 즉 전개에 힘을 주기 마련인데 에마 클라인은 스토리라는 숲보다 숲 안 즉 나무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그려냈다. 소묘같은 느낌이랄까? 이렇게 인물의 행동이 아니라 심리에 주목하다보니 자연스레 독자는 인물에 삶이 아닌 마음을 보고 그 마음이 또 다른 마음, 즉 독자의 마음과 옛 시절을 떠오르게 해 더 먹먹하고 더 여운이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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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7 7 시리즈
케리 드루어리 지음, 정아영 옮김 / 다른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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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투표하시겠습니까?" 참으로 섬뜩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한 사람을 놓고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 모여 그 사람의 목숨을 저울질한다. 이렇듯 셀7의 초반 설정은 매우 섬뜩하면서도 흥미로웠다. 7에서는 시청자가 방송을 보고 유죄와 무죄 두가지중 한가지에 투표를 한다. 그리고 이 시청자들은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이다. 법체계를 공부하지도 법전을 읽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다. 어떻게 보면 국민참여재판이고 전국민은 배심원이나 다름없다. 다수의 의견으로 재판을 진행한다는 점은 자칫 민주주의의 원칙을 따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공정한 방법일까? 모든 소설이 그렇듯 공정한 사회를 두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적 소설로 부당한 사회를

 

고발한다. 즉 겉으로 보기에는 공정할 것 같은 이 제도는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부패되있고 잔인하기 그지없다. 공공연하게 까발려지는 죄인의 신상털기, 사실 보도 보단 여론을 조장하는 자극적인 뉴스 보도, 돈으로 투표권을 행사하는 ARS, 죄인의 인권보호라든지 죄를 판가름할 증거조사나 증인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국민투표, 정의실현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마녀사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돈 만있으면 투표할수 있고 더 기막힌건 돈이 있는자는 몇 번을 투표해도 되며 그렇게 사형당한 사람들 중 몇십은 사실은 무죄였다는 사실이다. 소리없는 살인에 국민 모두가 책임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 국민참여재판이라는 탈을 쓴 사형제도는 돈 있는 자의 유흥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던 것이다.

 

이런 내용은 한 소설을 떠오르게 한다. 생존게임이라는 스릴러적 요소에 신데렐라 스토리를 가미하고 거기에 영웅 소설을 더한, 매우 흥행한 소설 헝거게임이 떠오른다. 페허가 된 북미의 독재국가 판엠 그리고 캐피톨이라는 수도, 돈과 자원 권력을 모두 캐피톨이 차지하면서 주변 구역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반란에 실패한 구역에서 캐피톨에게 조공으로 받치는 아이들과 이 아이들을 잔혹한 생존게임에 참여시켜 서로 죽고 죽이는 서바이벌 게임을 만들고 그것을 유흥으로 시청하는 힘 있는 자들, 그리고 그 속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소녀 캣니스...시청자의 투표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고 한 생명의 존명을 좌지우지 한다는 설정, 이런 부당한 세력에 맞서는 연약함을 벗어던진 영웅 같은 소녀라는 점이 매우 비슷하게 다가왔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서 뭐가 더 재밌는데?’라고 물을 것이다. 결론은 뭐가 더 재미있다기 보다는 이야기가 같은듯하면서도 다르다는 것이다. 7은 헝거게임 같은 광범위한 배경을 오고가는 스펙타클한 모험, 생존게임에서 느껴지는 서스펜스, 상상력을 자극하는 SF적 요소, 여성독자를 겨냥한 신데렐라풍(캣니스는 승리하여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스타가 된다: 능동적 신데렐라라고나 할까?) 스토리,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로맨스의 전형적인 전유물 삼각관계, 보잘 것 없던 약자가 부딪치고 깨짐을 감내하고 혁명을 일으킨다는 영웅적 요소, 이렇게 다양한 장르의 오락거리를 복합적으로 섞은 풍부한 소설이라면, 7은 좀 더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한 집약적인 소설이라는 느낌을 준다. 7은 제목처럼 살인을 저지른 마사 허니듀가 셀1부터 셀7까지 한칸식 옴겨가면서 사형장에 도달하기를 기다리는 데 이 과정에서 오는 인물의 복합적인 심리변화와 마사 허니듀가 왜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가? 그 살인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라는 물음에 진실을 찾아가는 추리적 요소가 책을 붙잡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그리고 헝거게임이 액티브한 서바이벌 게임에서 오는 스릴감이 있다면 셀7은 투표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잔인한 원초적인 모습, 마치 파리대왕처럼 사람의 깊은 속내에서 잠자고 있던 잔인함이 더욱 무섭게 느껴지며 그 스릴감은 섬뜩하게 온몸을 타고 오른다.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이 소설들은 모두 나에게는 만족감을 주었던 소설이다. 다른 사람들도 헝거게임을 재미있게 봤다면 이 소설도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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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삼킨 소년 - 제37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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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들이 살인범 이라면? 감정의 휘둘림이 뭔지를 보여주는 사회파추리소설

어느날 평범한 생활을 살고있는 이혼남 요시나가의 세상이 무너진다. 그 무너짐의 시작은 형사들의 말이였다. 그의 중학생 아들 쓰바사가 동급생 친구를 살해했다는. 자신의 아들이 살인범이라면? 누구나 감히 상상할수도 없고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이 일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요시나가의 아들 쓰바사는 자신이 알고있기에는 평범하고 착한 아이였다. 누군가를 헤치기 보다는 누군가를 배려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옛날 이야기 였던것일까? 동급생 살인 및 시체 유기 혐의로 체포된 아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침묵만 하는 아들앞에서 타들어 가는 부모의 심리는 어떤걸까? 끝끝내 아무말도 하지 않을 것 같은 그 아이의 침묵이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쓰바사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충격이라는 단어로 표현되기 어렵다. 자신이 믿고있던 아들이 살인을 인정하고 더 기막힌건 죄책감을 같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죽인 그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죽였고 자신은 그아이의 몸을 죽였을 뿐 이라는 말, 아이는 자신이 누군가를 죽인 것을 동물을 죽인것과 동급으로 생각하는 행동에 요시나가는 앞이 캄캄해 진다.

살인에 관해 나쁘다’ ‘잔인하다’ ‘무섭다등의 피해자의 입장에서 감정을 처리한 작가는 많았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피해자 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압장도 다루는 추세가 이여져왔다. 꽤 오래된 작품 노자와 히사시의 심홍의 등장이 그랬다. 어느날 수학여행을 다녀왔는데 가족 전부가 살해되었고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된 피해자의 딸이 가해자의 딸에게 복수심을 가지고 몰래 접근하다가 자신과 다르게 평범하게 잘 살고 있을거라는 가해자의 딸에게서 자신만큼 고통속에서 몸부리치며 살아가는 모습에 이 또한 또 다른 자신이라는 복잡한 심경 변화를 다루었고, 드라마쪽에서는 일드 그래도 살아간다라는 작품이 있는데 이 작품은 초반에 피해자의 엄마가 가해자들의 가족을 의도적으로 괴롭히고 피해자의 오빠 또한 가해자는 죽어마땅한 놈이라고 분노한다. 선량한 가족이 피해자의 가족이 되는 순간, 무너짐과 분노의 찬 모습을 격정적으로 다뤄 그들의 분노에 공감하게 되고 가해자의 가족을 괴롭히는 모습 또한 타당성을 주는 듯 보이지만 뒤에어 나오는 가해자의 가족들이 주변에서 받는 시선과 제약들,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고개 숙이고 무릎 꿇어야만 하고 부당한 대우에도 입을 다무는 모습을 가슴 아프게 풀어내며 시청자들의 감정이 바뀔 때 또 뒤서는 피해자의 오빠와 가해자의 여동생이 서로를 동정하고 공감하다 사랑으로 변모하지만 결국 가족이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이유 때문에 서로 함께할수 없을 때 오는 안타까움까지 다루었다. ‘심홍이 피해자의 가족과 가해자의 가족이 점점 동일시되가면서 풀어갔다면 그래도 살아간다는 피해자의 가족과 가해자의 가족이 서로 부딪치며 끝에는 화해 사랑이라는 감정이 나오지만 그 감정조차도 인정할수 없는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낙인에서 오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침묵을 삼키는 소년은 어떠한가? 작가는 오래전부터 소년 범죄를 다루어 왔다. 그래서인지 어느 한쪽에 편향되기 보다는 그 범죄의 본질과 살인이라는 극악한 범죄를 쫓는 추리물이 아닌 왜 그래야만 했을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독자들에게 답 없는 질문을 던지며 피해자와 가해자의 가족을 동시에 다룬다. 물론 가해자의 가족 입장이 좀 더 다뤄지는 것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가족들의 아픔이나 슬픔에만 집중하는가? 그렇지만도 않다. 주축이 되는 가해자의 가족이야기에 피해자의 가족 이야기가 날카롭게 지나친다. 그 지나침이 결코 작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날카롭게 말이다. 작가는 어느쪽에서도 서지 않는다. 범죄에 대해 평가하거나 단죄하지도 않는다. 이 무시무시한 이야기, 자신의 아들이 살인자라면? 이라는 가정을 묵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낸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독자는 결코 담담하지도 묵직하게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무게가 묵직하기보다는 버겁고 아버지인 요시나가가 자신의 아들이 살인자라는 사실에서 오는 분노 슬픔 두려움 방황 안타까움 죄의식 등의 복합적이고 무거운 감정들이 격정적으로 휘몰라친다. 결코 쉽지 않은 소설이다. 이 소설이 일본추리소설이라는 카테고리에 있지만 일본추리소설 특유의 섬세한 트릭이나 기막힌 반전이나 간담을 서늘하게하는 서스펜스가 있다기 보다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스스로에게 대입시키면서 읽는 재미보다는 감정의 휘둘림이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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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산 형사 베니 시리즈 1
디온 메이어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noir(아르테누아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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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 대상 범죄자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연쇄살인자의 충격적인 실체,시신에 남은 단 하나의 표식은 아프리카 전통 차 아세가이의 상흔뿐!

 

소수자 우대정책으로 차별 당해 마흔 넘도록 경위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형사 베니, 불철주야 일에 매달리고 밥먹듯이 보는 살인사건에 알콜로 위로받는 그는 동료들에게는 구제불능 주정뱅이고 자식들에게는 있으나마나 한 아버지다. 술김에 아내에게 손찌검까지 하고 그 바람에 달랑 슈트 케이스만 들고 쫓겨난 가장 베니는 6개월 안에 술을 끊지 않으면 이혼이라는 통보를 받는다. 한편 전직 반 아파르트헤이트 투쟁 요원 토벨라는 사랑하는 여인이 죽고난뒤 그 여인의 아들인 파카멜라를 친 아들처럼 여기고 함께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 들른 주유소에서 강도사건으로 사랑하던 아들을 잃고 범인들이 잡히나 경찰의 어이없는 관리소홀로 범인들이 풀려나자 복수를 위해 아동 대상 범죄자들을 아세가이(아프리카 전통 창)로 제거해 나간다. 이 사건을 베니가 맡게 되지만 시신에 남은 증거는 아세가이의 상흔뿐, 수사는 점점 미궁에 빠지고 이렇게 잡을것인가 잡히지 않을것인가 베니와 토벨라의 추격전에 한 여인이 등장한다. 그녀의 이름은 크리스틴, 성매매를 하는 스물두살의 매력적인 콜걸이다. 성매매로 인한 자괴감에 스스로에게 자해를 하기도 하지만 네 살배기 딸 소니아를 사랑하는 평범한 엄마이기도 하다. 이 여인이 자신의 고객이던 마약상이 딸을 납치해 갔다며 신고를 하게되고 이들의 이야기는 이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 돌을 쌓을 것인가? 돌을 던질 것인가?: 두명의 영웅, 그리고 진정한 '악'은 없었다.

 

불합리한 소수자 우대정책으로 만년 경위 신세를 못 벗어나지만 가정과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공공의 정의구현을 위해 온몸을 내던지는 형사 베니, 아들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개인적인 복수심과 사회정의 구현이라는 타당성 아래 무자비한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범 토벨라, 불합리한 사법체계에 돌을 쌓을 것인가? 돌을 던질 것인가? 법의 한계점에 한탄하지만 순응하고 돌을 쌓아 좀 더 탄탄한 사법체계를 만드는데 일조할 것인가? 아님 법의 한계점에 무자비한 돌팔매질을 하여 그것을 깨부수고 자신만의 정의를 세울것인가? 두 명의 영웅들의 정의가 첨예하게 부딪친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논의점과 재미는 바로 이 점이다. 악마의 산에서 보여지는 영웅은 다른 소설처럼 한명이 아니다. 두명이다. 그중 하나는 정의를 구현하는 방법이 악의 정점인 ‘살인’이다. 이렇듯 악이라는 것이 정의의 옷을 입고 활개치는데 이상한건 그 악을 정의라 부르고 싶고 그 옷이 딱 맞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소설 속에서도 불신이 팽배한 사법체계에 진절머리가난 사람들은 법과 자신들을 대신해 범죄자들을 처단해주는 토벨라를 응원하고 숭상하게 되는데 그 점이 이상하게도 공감이 된다. 그렇다고 올바른 정의가 약해 보이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이 비등한 두 영웅이 치열하게 자신만의 정의를 구현하다가 끝에 아버지라는 이름에 도달했을 때 그 정의는 힘겨루기를 그만두고 공감이라는 틀안에서 서로를 끌어 안는다. 거기서 오는 감정선도 남다르다.

 

결국 어떤 이유에서건 살인을 정당화 할수 없다는 형사 베니도 어떤 이유에서건 아동성범죄자는 처단되어야 한다는 살인자 토벨라도 목숨만큼 소중한 자식이 있는 평범한 아버지였고, 불합리한 사법체계에 상처입은 희생양이였고, 정의 구현을 위해 피말리게 분투했던 안타까운 사람들이였다.

 

 

- 독자를 속내를 파악해 소설의 무게감을 저울질하는 작가

 

이 소설은 아동 성폭행과 살인이라는 다소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다룬다. 솔직히 연쇄살인도 가볍게 보는 추리소설독자들에게조차 그리 쉬운 주제는 아니다. 하지만 디온 메이어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어둡고 참담한 현실을 여과없이 고발한다. 토벨라가 처단하는 성범죄자들은 실제로 현재도 존재한다. 아동과의 성관계가 에이즈를 낫게 한다는 무지함이 있고, 감염자들은 이 무지함으로 아무 거리낌 없이 죄없고 힘없는 아이들을 성폭행하고 살해한다. 그게 현실이기에 눈살이 찌푸려지더라도 작가는 할 수 없이 소재로 삼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주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독자에게 덜 거북하게 접근할 수 있을까? 그건 무게감의 조절이다. 디온 메이어는 독자의 속내를 잘 파악하는 작가다. 어느쯤에서 무게감을 주고 어느쯤에서 무게감을 덜 줄지를 독자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 적절하게 분배한다. 솔직하고 담담하게 다뤄질 암담한 현실부분은 단단하고 무직하게 다루며, 잔인하고 무섭게 다뤄질 추리스릴러부분은 날카롭고 빠르게 다루며, 가끔 베니의 일상에 대해서는 찰진 욕설과 함께 어설픈 인간미로 블랙코미디를 연상하게해서 웃음을 준다. 불편함을 줄 수 있는 주제를 다루되 그 불편함을 최소화 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보인다. 그래서 악마의 산은 계속해서 무겁지도 계속해서 가볍지도 않다. 독자의 감정선에 따라 탁월한 무게감의 분배가 돋보인다.

 

 

- 흩어진 조각이 한 조각으로, 접점에서 오는 쾌감: 다중사건이 한 사건이 되기까지...

 

13시간을 읽었을 당시에도 느낀 것은 디온 메이어는 참 영리한 작가라는 점이다. 앞서 말한 무게감 조절도 그렇고 이야기의 속도 즉 페이스 조절에도 능숙하다. 어디쯤에 독자가 집중도가 떨어질지를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능숙하게 떡밥을 던져주는가 하면, 어디쯤에 독자가 복잡한 추리로 골머리를 앓지를 알고는 다른 인물에 이야기로 환기를 시켜주기도 한다.

 

원래 추리물은 한 가지 사건에 집중하는 소설이 많다. 그 이유는 한가지를 농밀하게 다루기 위함이다. 작가가 이야기를 농밀하게 다루어야 독자는 작가의 복잡한 추리를 따라 갈 수 있는 집중력이 생긴다. 그리고 더 깊이 파고들어야 그 깊이의 배신감(반전)만큼 쾌감이 따른다. 하지만 다중사건을 다소 그 점이 떨어진다.

 

하지만 디온메이어는 다르다. 이 다중사건, 전혀 상관없는 크리스틴의 이야기가 베니와 토벨라의 팽팽한 추리극에 껴맞춰졌을 때 느껴지는 쾌감은 남다르다. 13시간때도 그랬다 전혀 상관없는 사건을 곳곳에 배치하여 중간에 환기를 시키는가하면 마지막에 절묘한 조각들의 맞춤으로 쾌감을 선사한다. 마지막에 맞춰지는 조각이 주는 쾌감은 깊이감에서 오는 반전보다 짜릿한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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