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걸스
에마 클라인 지음, 정주연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 히피문화가 광풍처럼 몰아쳤던 혼돈의 시기,

열병처럼 뜨겁게 아파야만 했던 소녀들의 치명적인 상실과

위험천만하고 자기파괴적인 질주. 어른이 되어서도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 그날의 기억...

 

중년 여성 이비 보이드는 196914살 자신의 사춘기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폭력과 약물, 반전운동, 문질문명에 대한 반심이 열병처럼 번지던 1969년 남부 캘리포니아. 그 혼돈의 시기에 이비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마음만은 부유하지 못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그러진 가정, 코니 이외에는 가지지 못한 인간관계,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대에 그녀는 혼돈의 시기에 홀로 내던져진 연약한 소녀였다. 외로움과 분노, 반항심, 조금이라도 건들면 터져버릴것 같은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공원에서 히피 소녀 무리를 목격한다. 야하고 경박스러운 웃음소리, 자유로운 행동과 자연스러운 옷차림. 그 무리는 공원주위를 초월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비장하게, 동떨어진 망명 왕족처럼. 이비는 무리를 넋 놓고 뜯어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운명을 나락으로 떨어트릴 소녀에게 매료된다. 이비의 눈에는 가장 예쁘고 유혹적인 검은 머리 소녀 수전. 엄격하고 따분한 기계 같은 기숙사생활에 무료했던 이비에게 수전은 자유로움의 환영 같은 존재였다. 이비는 수전에게 맹렬하게 끌리고 결국 히피무리에 속하게 된다. 히피무리들은 버려진 목장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리더 러셀의 지휘아래 살아가고 있었고 수전에 대한 동경과 사랑, 자신도 그녀와 같기를 바라는 이비는 무리에 속해 살아가게 된다. 히피무리 소녀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저지르는 무모한 일탈의 삶은 태어나 처음으로 겪는 자유와 우정으로 느껴졌다. 여지껏 이비가 간절히 원했던 사람들의 관심, 외로움의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듯한 착각에 점점 더 깊숙이 그들의 삶에 빠져들게 되었다. 결국 소녀들과 범죄를 저지르면서 자신도 그들 중 하나가 되기를 더욱 더 열망하는 이비. 하지만 러셀을 중심으로 이교도 같은 소녀들의 위험하고도 맹목적인 믿음에 소녀들은 방향을 잃고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결국 수십년이 흐른 뒤에도 끔찍한 기억이 될 얼룩진 그날 밤이 찾아오는데...

 

 

-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십대, 십대 아이를 가진 부모, 십대를 지나온 어른,

연약하고 미숙했기에 쉽게 상처 입고 흔들렸을 그 시기를 가진

모두를 위한 이야기.

 

에마 클라인은 쉽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더 걸스는 1969년 찰스 맨슨과 그를 추종하는 소녀들이 저지른 끔찍한 실제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지어낸 소설이다. 보통 이런 충격적인 사건을 모티브로 할려면 화제성을 낳기 위해 주 용의자, 9건의 살인사건으로 35명을 죽인 20세기 최악의 살인마로 평가되고 있는 찰스 맨슨(소설에서는 러셀)을 전방에 내세워야 했다. 장르도 스릴러 장르를 선택하는 것이 대부분의 작가들의 선택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에마 클라인은 전방에 한 소녀, 이비를 내세웠다. 모티브가 된 실제사건에 비하면 주인공이 너무 연약하지 않은가...더군다나 이 소설은 스릴러소설이 아닌 성장소설이다. 모티브가 주는 스릴러적 요소를 기대한 독자들을 무시한 처사가 아닌가... 하지만 이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작가의 선택은 결론적으로 탁월했다.

 

찰스 맨슨 만큼 자극적이진 않지만 소녀의 삶도 녹록지 않았고 소녀가 가진 청소년기의 불안, 공허함, 예민함, 갈등, 욕망, 방황 등은 사춘기를 지내고 있거나 지나온 사람 모두를 설득시키기에 충분히 설득력이 있게 묘사되었다. 설득력을 가진다면 독자는 공감을 하게 되고 공감을 하게 되면 감동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이 책이 가져오는 감정은 단순하고 쉽기보다는 복합적이고 어려울 것이다. 감동이 있되 어떤 감정을 움직일지는 모른다는 말이다. 이비에 대한 동정심, 안타까움, 슬픔, 먹먹함, 혹은 자신의 사춘기에 대한 고마움, 현재 가지고 있는 가족이나 친구에 대한 다행스러움 등 많은 감정이 동요되고 움직일 것이다. 이 소설은 사춘기시절에 대한 공감과 추억을 소환해서 현재 자신의 삶과 과거 열병같은 그 시절을 다시 보게 되는 힘이 있는 소설이다. 연약하고 미숙하기에 쉽게 상처 입었고 더욱 흔들렸던 누구에게나 있었던 상실과 갈망의 시기를 뜨겁게 떠올리게 만든다.

 

- 소설을 읽는 목적이 '재미'라면, 이 소설은 재미에 마음을 담았다.

소설을 읽는 주된 목적은 단연 재미. 그러다 보니 장르소설에 주목하게 되는 추세이다. 여기 재미뿐만 아니라 마음을 담은 소설이 있다. 더 걸스가 바로 그것이다. 솔직히 재미를 담으면 마음에서 멀어지고, 마음을 담으면 지루함이 앞서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실제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시켜 책을 들게 하고, 평탄하지 않은 이비의 굴곡진 인생이 안타까우면서도 궁금해 뒷장을 넘기게 하는 힘이 있으니 재미라는 부분은 충분히 충족시켜주었다. 그런데 거기에 마음까지 담아내다니... 마음을 담아냈다는 말은 이 책을 읽으면 분명 당신은 이비의 이 아니라 마음을 보게 될 것이고, 자신의 사춘기를 떠올리면서 더욱 마음이 흔들릴 것이라는 말이다. 놀랍지 않을가? 책 한권이 인물의 이야기가 아닌 마음을 볼 수 있고 독자의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 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책은 에마 클라인의 데뷔작이라는 점과 그녀의 나이는 25살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소설은 데뷔작 치고는 색이 짙고 강렬하다. 소설에 색을 입히려고 작가들은 자신의 독특한 문체나 플롯 즉 전개에 힘을 주기 마련인데 에마 클라인은 스토리라는 숲보다 숲 안 즉 나무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그려냈다. 소묘같은 느낌이랄까? 이렇게 인물의 행동이 아니라 심리에 주목하다보니 자연스레 독자는 인물에 삶이 아닌 마음을 보고 그 마음이 또 다른 마음, 즉 독자의 마음과 옛 시절을 떠오르게 해 더 먹먹하고 더 여운이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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