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산 형사 베니 시리즈 1
디온 메이어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noir(아르테누아르)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 아동 대상 범죄자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연쇄살인자의 충격적인 실체,시신에 남은 단 하나의 표식은 아프리카 전통 차 아세가이의 상흔뿐!

 

소수자 우대정책으로 차별 당해 마흔 넘도록 경위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형사 베니, 불철주야 일에 매달리고 밥먹듯이 보는 살인사건에 알콜로 위로받는 그는 동료들에게는 구제불능 주정뱅이고 자식들에게는 있으나마나 한 아버지다. 술김에 아내에게 손찌검까지 하고 그 바람에 달랑 슈트 케이스만 들고 쫓겨난 가장 베니는 6개월 안에 술을 끊지 않으면 이혼이라는 통보를 받는다. 한편 전직 반 아파르트헤이트 투쟁 요원 토벨라는 사랑하는 여인이 죽고난뒤 그 여인의 아들인 파카멜라를 친 아들처럼 여기고 함께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 들른 주유소에서 강도사건으로 사랑하던 아들을 잃고 범인들이 잡히나 경찰의 어이없는 관리소홀로 범인들이 풀려나자 복수를 위해 아동 대상 범죄자들을 아세가이(아프리카 전통 창)로 제거해 나간다. 이 사건을 베니가 맡게 되지만 시신에 남은 증거는 아세가이의 상흔뿐, 수사는 점점 미궁에 빠지고 이렇게 잡을것인가 잡히지 않을것인가 베니와 토벨라의 추격전에 한 여인이 등장한다. 그녀의 이름은 크리스틴, 성매매를 하는 스물두살의 매력적인 콜걸이다. 성매매로 인한 자괴감에 스스로에게 자해를 하기도 하지만 네 살배기 딸 소니아를 사랑하는 평범한 엄마이기도 하다. 이 여인이 자신의 고객이던 마약상이 딸을 납치해 갔다며 신고를 하게되고 이들의 이야기는 이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 돌을 쌓을 것인가? 돌을 던질 것인가?: 두명의 영웅, 그리고 진정한 '악'은 없었다.

 

불합리한 소수자 우대정책으로 만년 경위 신세를 못 벗어나지만 가정과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공공의 정의구현을 위해 온몸을 내던지는 형사 베니, 아들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개인적인 복수심과 사회정의 구현이라는 타당성 아래 무자비한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범 토벨라, 불합리한 사법체계에 돌을 쌓을 것인가? 돌을 던질 것인가? 법의 한계점에 한탄하지만 순응하고 돌을 쌓아 좀 더 탄탄한 사법체계를 만드는데 일조할 것인가? 아님 법의 한계점에 무자비한 돌팔매질을 하여 그것을 깨부수고 자신만의 정의를 세울것인가? 두 명의 영웅들의 정의가 첨예하게 부딪친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논의점과 재미는 바로 이 점이다. 악마의 산에서 보여지는 영웅은 다른 소설처럼 한명이 아니다. 두명이다. 그중 하나는 정의를 구현하는 방법이 악의 정점인 ‘살인’이다. 이렇듯 악이라는 것이 정의의 옷을 입고 활개치는데 이상한건 그 악을 정의라 부르고 싶고 그 옷이 딱 맞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소설 속에서도 불신이 팽배한 사법체계에 진절머리가난 사람들은 법과 자신들을 대신해 범죄자들을 처단해주는 토벨라를 응원하고 숭상하게 되는데 그 점이 이상하게도 공감이 된다. 그렇다고 올바른 정의가 약해 보이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이 비등한 두 영웅이 치열하게 자신만의 정의를 구현하다가 끝에 아버지라는 이름에 도달했을 때 그 정의는 힘겨루기를 그만두고 공감이라는 틀안에서 서로를 끌어 안는다. 거기서 오는 감정선도 남다르다.

 

결국 어떤 이유에서건 살인을 정당화 할수 없다는 형사 베니도 어떤 이유에서건 아동성범죄자는 처단되어야 한다는 살인자 토벨라도 목숨만큼 소중한 자식이 있는 평범한 아버지였고, 불합리한 사법체계에 상처입은 희생양이였고, 정의 구현을 위해 피말리게 분투했던 안타까운 사람들이였다.

 

 

- 독자를 속내를 파악해 소설의 무게감을 저울질하는 작가

 

이 소설은 아동 성폭행과 살인이라는 다소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다룬다. 솔직히 연쇄살인도 가볍게 보는 추리소설독자들에게조차 그리 쉬운 주제는 아니다. 하지만 디온 메이어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어둡고 참담한 현실을 여과없이 고발한다. 토벨라가 처단하는 성범죄자들은 실제로 현재도 존재한다. 아동과의 성관계가 에이즈를 낫게 한다는 무지함이 있고, 감염자들은 이 무지함으로 아무 거리낌 없이 죄없고 힘없는 아이들을 성폭행하고 살해한다. 그게 현실이기에 눈살이 찌푸려지더라도 작가는 할 수 없이 소재로 삼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주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독자에게 덜 거북하게 접근할 수 있을까? 그건 무게감의 조절이다. 디온 메이어는 독자의 속내를 잘 파악하는 작가다. 어느쯤에서 무게감을 주고 어느쯤에서 무게감을 덜 줄지를 독자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 적절하게 분배한다. 솔직하고 담담하게 다뤄질 암담한 현실부분은 단단하고 무직하게 다루며, 잔인하고 무섭게 다뤄질 추리스릴러부분은 날카롭고 빠르게 다루며, 가끔 베니의 일상에 대해서는 찰진 욕설과 함께 어설픈 인간미로 블랙코미디를 연상하게해서 웃음을 준다. 불편함을 줄 수 있는 주제를 다루되 그 불편함을 최소화 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보인다. 그래서 악마의 산은 계속해서 무겁지도 계속해서 가볍지도 않다. 독자의 감정선에 따라 탁월한 무게감의 분배가 돋보인다.

 

 

- 흩어진 조각이 한 조각으로, 접점에서 오는 쾌감: 다중사건이 한 사건이 되기까지...

 

13시간을 읽었을 당시에도 느낀 것은 디온 메이어는 참 영리한 작가라는 점이다. 앞서 말한 무게감 조절도 그렇고 이야기의 속도 즉 페이스 조절에도 능숙하다. 어디쯤에 독자가 집중도가 떨어질지를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능숙하게 떡밥을 던져주는가 하면, 어디쯤에 독자가 복잡한 추리로 골머리를 앓지를 알고는 다른 인물에 이야기로 환기를 시켜주기도 한다.

 

원래 추리물은 한 가지 사건에 집중하는 소설이 많다. 그 이유는 한가지를 농밀하게 다루기 위함이다. 작가가 이야기를 농밀하게 다루어야 독자는 작가의 복잡한 추리를 따라 갈 수 있는 집중력이 생긴다. 그리고 더 깊이 파고들어야 그 깊이의 배신감(반전)만큼 쾌감이 따른다. 하지만 다중사건을 다소 그 점이 떨어진다.

 

하지만 디온메이어는 다르다. 이 다중사건, 전혀 상관없는 크리스틴의 이야기가 베니와 토벨라의 팽팽한 추리극에 껴맞춰졌을 때 느껴지는 쾌감은 남다르다. 13시간때도 그랬다 전혀 상관없는 사건을 곳곳에 배치하여 중간에 환기를 시키는가하면 마지막에 절묘한 조각들의 맞춤으로 쾌감을 선사한다. 마지막에 맞춰지는 조각이 주는 쾌감은 깊이감에서 오는 반전보다 짜릿한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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