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이가라시 다카히사 지음, 이선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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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카의 공포는 끝나지 않았다!”
제2회 호러 서스펜스 대상 수상작, 《리카》 이후 10년
독자들의 열렬한 요청으로 만들어진 이가라시 다카히사의 후속작!


리카의 섬뜩한 공포가 멈춘 지 어느덧 10년이 지난 어느날, 리카의 공포는 다시 시작된다. 아침 산책을 나온 노인이 발견한 수트케이스에 발견된 시체가 그 시작이었다. 성인남자를 넣을 수 없는 작은 수트 케이스에서 발견된 시체는 신체부위가 절단된 토막 살인 시체 였다. 눈, 코, 귀, 혀, 팔, 다리가 없는 시체. 그리고 놀랍게도 그 시신은 최근까지 음식물 섭취 흔적이 있어 절단된 신체를 가지고 살아왔었다는 사실. 그리고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시체가 바로 10전에 납치된 혼마 다카오라는 것이다. 혼마 다카오는 10년전 한 만남 사이트에서 리카라는 여성을 만났고 집요한 스토킹을 당하다 끝내 납치되었다. 이런 그를 10년만에 마주하게 된 것이다. 콜드케이스 전담수사반의 오쿠야마 형사는 리카를 잡기 위해 다시 집요한 수사를 벌이고,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던 중 오쿠야마의 연락이 끊어진다. 그의 연인 다카코는 불안한 예감에 콜드케이스 수사반의 나오미와 함께 그를 찾아 나서는데...



- 전작 보다 부족한 후속작이나 읽을 가치는 충만한 작품!

후속작 리버스의 출간을 기다리게하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한 것, 결론부터 이야기 하고자 한다. 리카보다 재미있는가? 답은 안타깝게도 ‘NO’ 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전작보다 훌륭한 후속작은 없다’ 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리턴은 리카에 비해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재미가 없는가? 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재밌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는다’ ‘흡입력 충만한 일본공포소설’ 이라고 평할 수 있다. 


다만 장르상 스포가 될까 어떻게 언급할지는 모르겠지만 중반부까지 전작 리카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이미 전작을 읽은 독자에게는 루즈하게 느껴지고, 전작 리카가 더 강해져서 돌아와야 한다는 작가의 압박감 때문인지 리카가 먼치킨 캐릭터처럼 추리소설에서 필요한 인과관계를 무시하고 날뛰는 것이 대단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가능해?’라고 의문이 들어 설득력이 부족한 면이 있다. 결말부에 후속을 예고하는 듯한 힘이 빠지는 듯한 종결도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이것은 모두 훌륭한 전작 리카 때문에 평가 기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전작 리카에서의 리카는 그야말로 신선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인터넷상에서 만남으로 이루어진 관계 속에 스토커가 생긴다면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하는 것을 뒤집는 ‘여자 스토커’의 등장은 새로웠다. 그리고 그 여자 스토커 리카는 그야말로 공포 영화 속에서 ‘끝날 때 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극악의 스토커이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괴물이며, 보통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적인 사고방식과 도를 지나친 잔인함으로 철저한 공포심을 선사하는 불사신 같은 악의 화신이었다. (공포 영화보면 살인범을 아무리 죽여도 뜬금없이 이곳 저곳에서 쾅쾅 튀어나와 여지없이 살인을 저지르는데 딱 리카가 그렇다)


리카에서 리카가 너무 새로웠고 강했기 때문에 같은 인물을 가지고 후속으로 이어가는 것은 마치 면역주사를 맞은 독자에게 같은 바이러스를 주입하는 것과도 같으니 전과 같은 충격을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무리한 욕심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전작이 어마어마 했다) 분명 리카에 비해 아쉬운 리턴이긴 하지만 ‘리카’라는 캐릭터가 너무나 매력적이고 사랑을 지키기 위한 처절함과 전지전능한 극악함의 광풍 같은 대결은 짜릿하면서도 서늘했다. 이 작품이 3부작으로 구성되어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결말이 좀 아쉬운것도 어쩌면 트릭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마지막 3편 리버스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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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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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죽었다
눈물 한 방울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부터 사랑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내가 죽었다. 갑작스러운 버스 사고였다. 인기 소설가 사치오는 어이없게 아내를 잃고 만다.  아내가 자신의 친구인 유키라는 여자와 함께 여행을 떠났는데 사고가 난 것이다. 그 사고로 인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울분에 겨워 고통스러워 한다. 주변에서는 아내를 잃은 그를 동정하고 위로한다. 헌데 사치오는 슬프지가 않다. 아니 아무렇지도 않다.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러 거짓으로 슬픈 연기를 한다. 이런 스스로에게 놀람이나 경멸 따위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자연스럽고 아내의 장례는 그저 다른날과 똑같은 하루가 되버렸다.

사치오가 아내 나츠코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사랑해서 결혼했고 그녀는 사치오가 무명 소설가 시절부터 그를 응원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다. 헌데 언제부터일까? 아내를 사랑하지 않게 되버린게? 대학 시절 동기인 나츠코와 찬란하게 사랑했고 결혼했지만 차츰 미용사로 성공을 거두는 아내의 뒤에서 사치오는 무명작가일 뿐이였다. 자존감은 곤두박질 쳤고 자존심은 구겨졌다. 부부 사이는 점차 거리가 벌어졌고, 사치오는 언제부턴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안기 시작했다. 아내가 죽었던 그 날도 다른 여자를 안았다. 그리고 아내가 죽었다.

슬픔, 후회,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이런 사치오의 매마른 감정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은 아내와 같은 사고로 죽은 아내의 친구 유키라는 여자의 가족을 만나면서 부터였다. 유키라는 여자는 얼굴조차 모른다. 헌데 죽은 그녀의 가족을 알 리가 있나? 그런데 우연찮게 여유가 생겼고 같은 처지인 유키의 남편 요이치를 도와주기로 한다. 요이치는 트럭 운전수로 장거리 운전을 하느라 늘 집을 비웠고 그에게는 중학교 입시 준비를 하는 아들과 4살된 딸아이가 있었다. 그래서 사치오는 별 뜻 없이 요이치의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한다.

매마른 땅에는 비가 내렸고 젖은 땅에는 움이 텄다. 사치오는 요이치의 가족과 함께 할수록 정이 들었고, 자신이 요이치의 가족의 일원이 된것처럼 그들속에 젖어들었다. 안정되고 평화로운 어느날 사치오는 요이치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다. 사치오가 자신과 아내가 아이를 싫어 했기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았다고 말했고 요이치는 사치오의 아내가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며 좋아해주었다는 말을 한다. 자신이 모르는 아내를 모습을 발견한 사치오는 아내가 죽은 이제야 아내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는데...

-차갑게 아리고 뜨겁게 울컥하다.
단단한 댐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 모든 감정을 폭발하듯 터져나오다.

10년동안 같이 산 아내가 죽었다. 한때 사랑했던 아내가 죽었는데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다. 그녀의 죽음은 마치 일상의 한 페이지 마냥 지나갔고 아내가 죽을 때 함께하긴 커녕 다른 여자를 안았음에도 죄책감 따윈 없다. 처음 소설에서 표현한 아내는 마치 집에 둔 오래둔 가구같다. 그냥 그 자리에 있었고 어느날 없어져도 많은 가구중 하나 빈곳이 생겼을 뿐이다. 그러다 중후반이 넘어가자 아내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죽은 후에 알게 되는 자신이 몰라왔던 아내의 모습. 그리고 한가지 한가지 아내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될때마다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었고 사랑하고 있는지를 한가지 한가지 떠올릴 때 한없이 무너지며 절망하는 남자의 모습이란. 처음에는 문체 자체가 너무 단단하고 담담해서 아내가 죽었다는 극적인 상황에도 동요되지 않았다. 남편의 심리를 이해할수 없을뿐더러 때론 분노까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 분노도 금방 식어버렸다. 고요하고 차분하게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 그저 그런 일본영화 한편 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 책을 덮고 난 후에는 열병을 앓은 것 마냥 알알하다. 목구멍에 뜨거운 것이 울컥하고 쳐 올라 눈을 질끈 감는다. 댐을 막아놨는데 댐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다. 작가가 참 영리하다. 독자의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버리다 한순간에 놓아버리는 재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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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빙데이
조너선 스톤 지음, 김무겸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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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출발을 꿈꾸는 이삿날, 장밋빛 춘몽은 순식간에 핏빛 악몽으로 변해버렸다.
그 남자의 물건에 함부로 손대지 마라! 목숨을 잃고 싶지 않다면...

“당신이 짐승을 풀었어. 그 녀석을 다시 우리에 넣지 못할 거야.”

노장 액션이라는 점, 빼앗긴 것을 되찾는 점에서 영화 <테이큰>과 <맨 인 더 다크>가 떠올랐다. <테이큰>은 소중한 딸이 인신매매 조직에게 납치되었고 딸을 구출하는 전직 요원 아빠가 그려졌다. <맨 인 더 다크>는 눈 먼 퇴역 군인의 집에 침입한 빈집털이범들이 오히려 집안에서 갇혀서 집을 탈출하는 내용이 그려졌다. <테이큰>과 <맨 인 더 다크>의 공통점, 이들은 빼앗긴 것을 찾기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는 노장이라는 것, 그리고 악당들이 노장이라 얕보았다가 뒷일을 감당할 수 없었다는 점, 그런 노장에게는 ‘비밀’이 있다는 것...

이번에 읽은 <무빙 데이> 역시 이런 맥락을 가지고 있다. 앞선 영화들을 재밌게 보았다면 이 책이 기대해볼만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을 가진 무빙데이,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72살의 노인 스탠리는 40년동안 살았던 뉴욕을 떠나 산타바바라로 이사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스탠리에게는 로즈라는 부인과 자녀들과 손자소녀들까지 있고 성공한 사업가로서 남부럽지 않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 화목한 가정과 부유한 재산.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삶을 살고 있는 평범한 노인인 스탠리. 스탠리는 이사를 앞두고 이삿짐 직원을 고용한다. 녹색 유니폼을 말끔히 차려입은 이삿짐 직원들이 도착하고 직원들은 열심히 스탠리의 물건들을 화물차에 옮겨 싣는다. 스탠리는 직원들의 깔끔한 일처리와 친절함에 기분 좋은 이사를 하게 되고, 그 모습들을 바라보며 옛 정이 든 물건들과 함께 크고 작은 추억들을 회상하기도 한다. 이삿짐을 보내고 앞으로의 새 출발에 대해 설레며 40년을 살았던 텅 빈 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다. 다음달, 아침 그 설레던 기분은 악몽과 경악으로 뒤바뀐다. 이삿짐 센터에서 짐을 실러 오게 된 것이다. 전날의 이삿짐 직원들이 도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스탠리는 분노와 허탈감에 시달리고 결국 복수를 다짐하며 거대한 대륙을 횡단하며 사기꾼 닉을 추격하게 되는데...

​-추격전이 속도감이라 전부라는 편견을 깬, 은밀하고 치밀한 추격전! 그리고 끔찍하고 처절한 뒷 이야기 까지...

<무빙 데이>는 재밌다! 재미가 되는 관전 포인트를 말하자면 이렇다. 첫째는 줄거리에서 드러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다. 노인과 사기꾼, 되찾으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추격과 사기가 교묘하고 음밀하게 진행된다. 액션영화처럼 빵빵 터진다기 보다는 노인의 추격적은 고요하고 치밀하다. 그래서 고조되는 분위기 또한 색다르다. 닉을 점점 조여오는 노인의 추격전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닉이되버린냥 심장이 벌렁거린다. 둘째는 노인의 정체이다. 출판사 소개글에 있음으로 스포는 아니라는 생각에 적어두자면, 노인은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였던 것이다. 홀로코스트는 제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로 '제사'라는 의미를 두고 있다. 600만명의 사람들이 ‘인종청소’라는 명목으로 대량으로 학살된 사건인데 거기서 살아남은 스탠리의 과거사가 문득문득 엿보일 때 인간의 잔인함, 폭력성, 광기에 공포스럽지만 그로 인해 무너지는 삶의 모습또한 참담하고 암울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장점은 <무빙 데이>는 추격전이 속도감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데서 새롭고 놀랍다. 음밀하고 치밀하게 서서히 조여오는 맛이 있다. 소리없는 차가 강하다라는 옛날 CF선전이 떠오르는 소설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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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가족놀이 스토리콜렉터 6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로드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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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속 가상가족 사이에 일어난 실제 연속살인
취조실 현장 속에 숨겨진 예측 불가 이중반전!

21세 미모의 여대생 이마이 나오코가 살해됬다. 원한에 의한 살인인가? 가는 목을 부러뜨릴 듯 졸라 살해한 이른바 교살이었다. 그리고 사흘 후 도코로다 료스케라는 이름의 중년의 남자가 공사 현장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유명 식품업계의 과장이며 단란한 가족의 가장인 도코로다 료스케. 겉보기에 너무나 평범한 중년의 가장이 수십번을 찌르고 찔려 과다출혈로 사망하게 된 것이다. 사인도 다른,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개의 살인사건. 그러나 그의 사건현장에서 독특한 밀레니엄 블루라는 섬유가 발견되고, 섬유의 희소성으로 경찰은 두 사건의 범인이 동일범이라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밝혀지는 피해자들의 비밀스러운 과거사. 중년의 평범한 가장 도코로다 료스케와 미모의 여대생 이마이 나오코는 이마이 나오코가 10대 시절부터 서로 관계를 맺어왔다는 사실. 경찰은 치정관계에 의한 원한살인으로 수사방향을 잡고, 두 명의 피해자를 살해한 범인으로 이마이 나오코와 같은 대학의 연적 ‘A코’를 중요 용의자로 삼게 되는데...

한편 평범한 직장인이자 가장인 것처럼 보였던 피해자 도코로다 료스케가 최근 인터넷상에서 ‘아버지’라는 닉네임으로 몇몇 사람들과 함께 ‘가상가족놀이’를 했다는 사실이 뒤이어 밝혀진다. 서로 얼굴도 실명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마치 가족처럼 아버지, 어머니, 딸, 아들로 연극을 해왔던 것. 게다가 딸의 닉네임인 ‘가즈미’는 도코로다의 친딸의 이름과 같다. 수사에 난항을 겪는 가운데, 경찰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전대미문의 계획을 세운다. 진짜 가족이 매직미러 너머로 취조실을 지켜보는 가운데, 도코로다 료스케와 함께 인터넷상에서 가족놀이를 했던 가짜가족들을 차례로 불러 사건의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이제 진짜가족들은 가짜가족들이 연기하는 한편의 사이코드라마를 보게 되는데...

​-미야베 미유키 다운 소설? 미야베 미유키 답지 않은 소설?
다작하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 질렀다면? 바로 이 소설!
미야베 미유키의 중도포기자 였다면? 바로 이 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두명의 거장은 이른바 일본추리소설계의 양대 산맥과 같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작가들이며 다작을 하기로도 유명하다. 단지 스타일이 조금 다른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단문의 스피디한 진행으로 범인이 누구일까? 라는 요소보다 범인이 왜 살인을 저질렀는가? 범인의 동기에 주목하는 트릭보다는 감동을 이끄는 스토리 중심의 작가이다. 즉 추리소설 매니아가 아니더라도 허용가능한 대중성이 있다는 말이다. 반면 미야베 미유키는 추리소설의 본질에 더 충실한 미스터리라는 분위기와 허를 찌르는 반전,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로써의 묵직하고 암담한 배경가운데 독자를 씁쓸하고 서럽게 만드는 묘하고도 강한 울림이 있는 작가이다.

여담이 길어졌는데, 결론은 히가시노 게이고 같이 단문형태가 아닌 장문의 섬세한 묘사와 치밀한 배경을 깔고 시작하는 작가라는 점이다. 그래서 두꺼운 벽돌책을 자랑한다. 이런 그녀가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이번 <가상가족놀이>에서는 얇은 두께와 제법 깔끔해진 문체로 전개 또한 치고 빠지며 정신없이 몰아친다. 여직 그녀가 후반후에 힘을주고, 그에 이르기까지 애를 먹기로 유명한 작품을 내놓았는데 (예를 들면 화차, 화차에서 중간 개인파산과 금융, 법률에 대한 설명에 일찌감치 포기하는 독자가 꽤 있었다) 이번작품은 미미월드의 중도 포기자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수 없다. 미미월드 입문자나 중도 포기자에게 딱 권하고 싶은 책이랄까.

또한 미미여사의 오래된 팬들도 쾌재를 부를 작품이기도 하다. 다케다미 형사와 치카코 형사. 바로 <모방범>과 <크로스파이어>에서 선보인 인물들이 공동출연한다. 그 작품들을 인상 깊게 본 독자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킬만한 소식이다. 수사분석에는 냉철하면서 날카로운 직관력을 보이나 피해자와 피의자에게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그들의 활약과 인간적인 모습 또한 좋다. 살풍경인 잔인한 사건과 암담한 사회적 문제를 어루만지는 인물들은 오히려 스토리를 더 아리게 만들어 버린다. 

중간중간 단편처럼 용의자들이 주고받는 단편적인 메시지와 추격해나가는 형사들의 추리가 서로 이가 빠진 톱니처럼 덜커덩 거리다 딱딱 맞물려 돌아갈 때. 뭐야 쉽잖아?하고 쉽게 결론 지으며 방심하고 있을 때. 이중반전이라는 쾅 하고 때려버리는 한방! 그리고 여운이랄지 씁쓸하고 묵직한 그 특유의 뒷맛 또한 좋다. 새로움(메세지 형식의 힌트)과 여전함(뒷맛)이 동시에 존재한다.

물론 추리소설에 제법 익숙한 사람들은 몇몇 실망할 요소 또한 있을지 모른다. 주무대가 확확 바뀌는 현장이 아니라 밀폐된 취조실이라는 점. 범인의 정체나 범인의 정체를 단정짓는 근거가 탄탄하고 치밀하기보다는 의외성을 가질 정도의 쉬운점도 있다. 하지만 밀폐된 취조실이라는 점에서 용의자들의 사이코드라마 같은 심리극에 더 몰입할 수 있다. 몰입뿐만 아니라 간혹 참여를 하고있는 자신을 볼 정도였으니. 범인의 정체는 오히려 이것저것 의심하다가 너무 쉽게 놓쳐버린 독자의 방심을 이용한 것도 허를 찌른 것은 분명했다. 단점들이 장점으로 상쇄된 면이 있다는 말이다.

끝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소설에는 두가지 미스터리가 존재한다. 기본적인 추리소설의 난제 ‘범인은 누구일까?’라는 요소와 이 소설에서 전하고픈 메시지를 담은 ‘왜 이들은 가상가족놀이를 하기 시작했을까?’라는 미스터리가 존재한다. 독자는 분명 첫 번째 미스터리를 기대하고 책장을 열었을 것이다. 하지만 책장을 덮고 나선 두 번째 미스터리가 주는 뒷맛이 오히려 각인될 것이다. 이 책은 허위, 거짓, 기만으로 얼룩진 가상가족놀이에 여러 사회문제를 녹여냈다. 소외된 개인, 익명성의 유혹, 붕괴된 가족, 잘못된 교제 등 분량은 가벼워졌으나 여전히 그녀가 던지는 화두에는 가슴을 짓누르는 묵직함과 그 특유의 씁쓸한 뒷맛이 존재한다. 가볍게 열린 첫 페이지와 무겁게 닫히는 마지막 페이지, 이번 책에서도 명장의 칼날은 날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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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에 대하여
아리요시 사와코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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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요시 사와코의 <악녀의 대하여>를 읽었다. 여담이지만 요새 독서 슬럼프라고 해야하나? 서평 슬럼프라고 해야하나? 읽는것도 쓰는것도 막막한 타이밍에 만난 소설이었다. 개인적으로 벽돌책을 많이 읽어왔던탓에 그리 긴 페이지는 아니였지만 내 기준에서는 그리 긴 분량이 아님에도 읽는데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렇다 해서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재미가 있던 탓에 곱씹었다고나 할까?

작가의 삶 만큼이나 강렬하고 한방이 있는 소설이었다. 작가 아리요시 사와코는 일본 와카야마의 명문가의 딸로 태어나 자카르타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스물다섯살에 샤미센 노래로 문학계의 신인상을 수여하며 이 첫 작품이 무려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르며 혜성처럼 등극했다. 어떻게 보면 부와 재능을 동시에 가진 평탄한 인생이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참 기구하게도 재능만큼이나 작가의 사상과 색이 강렬해 사회참여도 많이하고 직설적인 성격과 시대를 앞서가는 논쟁으로 당시 남성 중심의 문단에 거센 돌풍을 일으켰다. 천재성 만큼이나 집중력도 대단해 글을 쓸 때 숨조차 쉬기 않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일화와 그 만한 고역때문인지 작품을 마치면 입원하는 사례도 허다했다 한다. 결국 불면증에 시달려 수면제를 복용하는 날들이 많아 53세 죽기에는 젊은 나이로 급성 심부전증이란 병명으로 타계하였다.

그녀가 한 글자씩 꾹꾹 눌러가며 쓴 소설. 뭔가 그녀의 짧고 굵은 기구한 인생사같은 소설이 이 소설 같다. 빈틈없는 구성력과 치밀함은 그녀의 성격 같고 선이 굵고 한방이 있는 것은 그녀의 인생과 같다. 출간연도가 1970년대임에도 불구하고 순문학에서 벗어난 세련된 맛이 있는 드라마틱한 소설. 드라마가 두 번씩이나 방영될 정도로 재미는 물론이고 시대를 앞서간 작가의 선구적인 의식이 반영된 소설이다. 전체적인 구성 또한 인상 깊고 지금봐도 새롭고 독특하다. 한 여성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찾는 르포 취재 형식의 인터뷰로 진실에 대한 독자의 호기심과 추리력을 한껏 올리는 방식이다.

이 소설은 사업의 여왕인 도미노코지 기미코라는 여성의 죽음을 두고 그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에 대한 것을 주간지 소설가가 그녀와 관계된 27명을 방문 취재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젊은 나이에 막대한 부를 축적한 도미노코지 기미토는 도쿄 빌딩가 뒷골목에서 추락사 하고 젊은 사업가 미모의 여자라는 점에서 언론은 이 죽음에 대해 일제히 대서특필한다. 온갖 억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인터뷰의 내용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수 없을 정도로 가지각색이다. 어떤 사람은 아들 둘을 둔 채로 온갖 역경을 이긴 여성사업가로, 어떤 사람은 진짜 보석을 매입하고 가짜 보석으로 바꿔 판 사기꾼으로, 부동산 매입 매도로 부를 축적한 일, 천생여자, 몰락한 귀족, 악녀, 등등 수없이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누군가에게는 선인, 누군가에게는 악인. 진실은 무엇인가? 간혹 작가들 중에 결말이나 논점에 대해 스스로 답을 구해보라는 작가들이 있는데 이 작품 또한 그렇다. 책장을 덮고 난 후에 결론은 참 어렵다. 독서 슬럼프기간에 꽤 괜찮은 소설을 만났다. 재미는 물론이고 뭔가 생각할 거리또한 주는. 전개가 독특하고 매력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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