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에 대하여
아리요시 사와코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리요시 사와코의 <악녀의 대하여>를 읽었다. 여담이지만 요새 독서 슬럼프라고 해야하나? 서평 슬럼프라고 해야하나? 읽는것도 쓰는것도 막막한 타이밍에 만난 소설이었다. 개인적으로 벽돌책을 많이 읽어왔던탓에 그리 긴 페이지는 아니였지만 내 기준에서는 그리 긴 분량이 아님에도 읽는데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렇다 해서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재미가 있던 탓에 곱씹었다고나 할까?

작가의 삶 만큼이나 강렬하고 한방이 있는 소설이었다. 작가 아리요시 사와코는 일본 와카야마의 명문가의 딸로 태어나 자카르타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스물다섯살에 샤미센 노래로 문학계의 신인상을 수여하며 이 첫 작품이 무려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르며 혜성처럼 등극했다. 어떻게 보면 부와 재능을 동시에 가진 평탄한 인생이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참 기구하게도 재능만큼이나 작가의 사상과 색이 강렬해 사회참여도 많이하고 직설적인 성격과 시대를 앞서가는 논쟁으로 당시 남성 중심의 문단에 거센 돌풍을 일으켰다. 천재성 만큼이나 집중력도 대단해 글을 쓸 때 숨조차 쉬기 않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일화와 그 만한 고역때문인지 작품을 마치면 입원하는 사례도 허다했다 한다. 결국 불면증에 시달려 수면제를 복용하는 날들이 많아 53세 죽기에는 젊은 나이로 급성 심부전증이란 병명으로 타계하였다.

그녀가 한 글자씩 꾹꾹 눌러가며 쓴 소설. 뭔가 그녀의 짧고 굵은 기구한 인생사같은 소설이 이 소설 같다. 빈틈없는 구성력과 치밀함은 그녀의 성격 같고 선이 굵고 한방이 있는 것은 그녀의 인생과 같다. 출간연도가 1970년대임에도 불구하고 순문학에서 벗어난 세련된 맛이 있는 드라마틱한 소설. 드라마가 두 번씩이나 방영될 정도로 재미는 물론이고 시대를 앞서간 작가의 선구적인 의식이 반영된 소설이다. 전체적인 구성 또한 인상 깊고 지금봐도 새롭고 독특하다. 한 여성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찾는 르포 취재 형식의 인터뷰로 진실에 대한 독자의 호기심과 추리력을 한껏 올리는 방식이다.

이 소설은 사업의 여왕인 도미노코지 기미코라는 여성의 죽음을 두고 그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에 대한 것을 주간지 소설가가 그녀와 관계된 27명을 방문 취재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젊은 나이에 막대한 부를 축적한 도미노코지 기미토는 도쿄 빌딩가 뒷골목에서 추락사 하고 젊은 사업가 미모의 여자라는 점에서 언론은 이 죽음에 대해 일제히 대서특필한다. 온갖 억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인터뷰의 내용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수 없을 정도로 가지각색이다. 어떤 사람은 아들 둘을 둔 채로 온갖 역경을 이긴 여성사업가로, 어떤 사람은 진짜 보석을 매입하고 가짜 보석으로 바꿔 판 사기꾼으로, 부동산 매입 매도로 부를 축적한 일, 천생여자, 몰락한 귀족, 악녀, 등등 수없이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누군가에게는 선인, 누군가에게는 악인. 진실은 무엇인가? 간혹 작가들 중에 결말이나 논점에 대해 스스로 답을 구해보라는 작가들이 있는데 이 작품 또한 그렇다. 책장을 덮고 난 후에 결론은 참 어렵다. 독서 슬럼프기간에 꽤 괜찮은 소설을 만났다. 재미는 물론이고 뭔가 생각할 거리또한 주는. 전개가 독특하고 매력있는 소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