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에게 - 김선미 장편소설
김선미 지음 / 연담L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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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족 동반자살이 2009년 이후 현재까지 매달 한 두 가구씩 나오는 추세이다. 예전 한 신문기사에서 40대 한의사가 아파트 고층에서 투신한 사건이 떠올랐다. 당시 새로 개원한 한의원의 대출문제로 고심하던 가장이자 한의사인 그는 자신의 부인과 두 자녀를 목졸라 죽인뒤 자살을 한 것이었다. 대부분 한 가족 동반자살은 경제적인 문제나 가정적인 문제로 비롯되고, 이를 견디지 못한 부모가 배우자와 자녀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다.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 부모가 자녀를 한 인격체가 아닌 책임을 져야할 소유물로 인식해서 발생한 것은 아닐까. 사회구조적 문제로 접근해 가족동반자살로 안타깝게 치부해야할지, 한 개인의 잘못된 사고 문제로 접근해 자녀살인사건으로 봐야할지, 현재에도 많은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이번에 소개할 소설 김선미의 <살인자에게>는 이런 부모의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일가족 동반 자살을 소재로 한다. 일가족 자살을 감행하려한 아버지가 10년만에 돌아온다면? <살인자에게>를 소개한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내게는 일가족을 죽이려고 한 아버지가 있다.

사업 실패를 비관해서 가족을, 그러니까 나와 엄마와 형을 모두 죽이려고 했다.

세상엔 때론 그런 일도 일어나는 법이다.

피를 나눈 가족이 가족을 살해하는 일 같은 거 말이다.‘


한 한적한 시골 마을이 유일하게 북적이는 유등 축제 기간. 작은 고등학교 역시 축제준비가 한창이다. 물고기 유등을 만들어야하기 때문이다. 손재주가 없는 반장은 진웅에게 물고기 유등을 만들어 달라 부탁하고, 진웅은 내일 아침에 넘겨주겠다고 약속을 한 뒤 조퇴를 한다. 한번도 조퇴한 적이 없는 성적 일등의 진웅이지만, 오늘 만큼은 조퇴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바로 10년만에 온 가족이 한 집에 모이는 날이다. 10년전 진웅의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한 뒤 일가족 동반자살을 하려했다. 아버지는 칼을 휘둘렀고 그 칼에 진웅의 엄마는 죽었다. 곧이어 진웅의 형에게도 칼을 휘둘렀지만 진웅의 형은 칼을 맨손으로 잡은 뒤 틈을 타 현관문 밖으로 도망쳤다. 뒤쫓아갔지만 형을 찾지 못한 아버지는 곧 집으로 돌아왔고, 진웅마저 죽이러하지만 어린 진웅은 침대밑에 숨어 살아남게 된다. 그리고 곧 엄마 옆에서 자신의 배에 칼로 찔러 넣는 아버지를 목격하게 된다.

 

진웅의 아버지는 응급실로 실려갔고 살아났다. 아버지의 자살기도이자 일가족동반자살계획은 실패한 것이다. 퇴원후 그는 아내를 계획적으로 살해한 죄와 아들에게 상해를 입힌 죄로 수감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마을 저수지에 한 여자애가 빠져 죽은 사고사가 일어났는데, 마을 사람들은 아버지가 살인범이니 그 자식도 누군가를 죽일 수 있을 거라는 의심 섞인 험담과 욕설을 했고, 결국 그 표적이 된 진웅의 형(진혁)은 진웅을 할머니댁에 남긴 뒤 서울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현재 가족의 십년만의 재회지만 아직 어색하고 껄끄러운 집안. 서로에게 적응하기도 전에 진웅의 가족은 또 다시 살인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가족이 함께 할아버지 성묘를 마치고 내려오던 길에 들른 양계장, 그 곳에 싸늘한 시신 한 구를 목격하게 된다. 흙속 시신은 다름 아닌 진웅과 같은 반의 반장!...진웅은 그 날을 떠올리며 가족을 의심하기 시작하는데... 

연담L 출간작들은 <일곱번째 배심원>을 제외하고 전부 만나보았는데, 이 출판사에서 카카오페이지 연재작품, 추미스 공모전 수상작 작품을 출간하는 만큼, 재미 면에서는 늘 만족감이 있다. 이번에는 만족감과 더불어 한국 사회에 문제가 되는 일가족 동반자살이라는 소재와 함께 생각할 거리를 주어 사회파적인 면모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한 가족의 참혹하고 처참한 비극사로 시작한다. 실패한 가장의 극단적인 선택인 일가족 동반자살계획 그리고 그 사건 뒤에 일어난 또 다른 살인사건의 발생. 이 소설은 10년전 사건을 회상함과 동시에 10년후 재회한 가족의 불편한 관계와 미묘한 감정, 그리고 현재의 살인사건의 범인을 의심하며 추적하게 된다. 독자는 현재 살인사건인 반장을 살해한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표적을 따라가지만, 소설 속 주어진 5일의 기간 동안, 진웅과 진혁(진웅의 형) 아버지 세 사람의 시선으로 뒤엉키며 진행되기 때문에 중간 중간 의문점을 남기며 끈질긴 궁금증을 유발한다. 추리소설로써 꽤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인상 깊은 것은 각자 인물들만의 처지와 감정, 그 고통과 분노 슬픔이 한 사건을 두고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일가족 동반 자살이 동의가 아닌 강제에 의한 가족간의 폭력이자, 자살이 아닌 타살임을 섬세하면서 또렷하게 메시지를 담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일가족 동반 자살을 세간의 동정해야할 비극이 아닌 경계해야 할 범죄로 봐야한다는 문제의식을 품은 추리소설 <살인자에게>, 사회파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엄청난 반전소설로 인상을 남기기 보다는 사회의 어두운 일면이자 문제를 각자의 입장에서 섬세한 생각과 대사로 전하는 날카롭고 명확한 소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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