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학회 모임에 갔을 때다. 학회가 끝나고 식사하는 자리의 화제는 대학에서 새롭게 변화하는 교과과정이었다. 눈만 뜨면 무섭게 변해 가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학도 변화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대학마다 시대에 부응하고 학생들의 요구에 맞는 새로운 과목을 개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많은 대학들이 영문학 과목들 대신 영어 관련 실용 과목--실무 영어, 관광 영어, 토익 영어 등으로 대체해서, 선생님들이 오랫동안 가르쳤던 과목을 더 이상 가르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중 어느 지방대학교에 계시는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미국문학’, ‘영문학 개론,’ 다 뺏기고 겨우 ‘아동문학’ 하나 지켰지요. 학생들이 초등학교 영어 방문교사로 취업할 경우 꼭 필요한 과목이라고 우겨서 겨우 남긴 거예요. 문학은 실용성이 없어 시대에 안 맞는 분야라는데 할 말이 없더군요. 문학 수난시대입니다.”

 

문학 과목 감소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고, 그래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제 우리 ‘밥그릇’ 걱정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도 계셨다. 휴대폰 하나로 모든 통신이 이루어지고 가시적 실용성, 유효성만이 가치척도가 되는 이 시대에 문학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득 언젠가 미국의 어느 의대 교수와 우연히 만난 좌석에서 나눈 대화가 생각이 났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의 영미문학에 관한 지식은 명색이 일생을 문학을 공부한 나에 못지않았다.  전공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문학에 관한 지식과 관심이 많으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학부 때 많은 문학 관련 교양과목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버드 의대나 MIT 공대 교과과정에는 교양필수로 문학 과목이 거의 반 이상이라는 것이다. 

 

의학이나 이공계통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왜 문학을 공부시키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 교수는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초음파 검사를 하기 위해 어떤 사람의 내장을 보고 위 속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육체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성이 느껴집니다. 선하고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인지 갈등이 심하고 괴로운 사람인지 짐작이 가지요. 인간의 마음과 몸은 신비롭게 연결되어 있고, 육체만 보는 것은 진정한 의사가 아닙니다. 나도 그와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함께 공유하는 마음으로 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문학을 통해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함께 공유하는 마음--즉 문학이 가르치는 것은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고뇌와 상처를 이해하는 능력이고,  그 어떤 학문도 이러한 인간이해가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내게 흡족한 답을 주지는 못했다. 모든 것을 가시적인 생산성으로 가치판단 하는 시대에 문학의 의미가 무엇일까? 책이라는 매개체 자체를 버거워하는 소위 ‘영상세대’인 우리 학생들에게 문학은 무엇일까?  아니, 무엇보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그런데 이번 학교장 추천 입학 면접을 하면서 나는 뜻밖의 답을 얻었다. 별로 큰 기대 없이 어느 학생에게  “문학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질문했다. 

잠깐 생각하더니 그 학생은 “문학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이제껏 유명한 석학의 현학적 이론을 많이 읽었어도 나는 이보다 더 멋진 정의를 보지 못했다. 맞다.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우리는 대리경험으로 치열하게 고통과 갈등을 극복하고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는 인물들을 만나고 따라서 너와 나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문학 수난시대라지만 이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돈 안 되고 밥 안  되어도 여전히 소설 쓰고 시 쓰는 사람들이 있고, 또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고, 문학의 힘을 믿어주는 순수한 젊은이들이 있는 한, 내 밥그릇은 당분간 무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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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한 여자는

작은 사소한 것에 얽매여 감정의 변화가 있으면 안된다.
모든 감정의 위에 올라서 있어야 한다.

화가 나도 흥분하지 않고
핵심을 찌르는 말 한 마디 할 수 있어야 하며

슬픈 일이 있더라도 주저 앉지 않고
인생을 배워야 하며

후회되는 일이 있더라도
되돌릴 수 없는 일은 잊어야 하며

기쁜 일이 있어도 들뜨지 않고
즐길줄 알아야 하며

행복한 순간에도 안주하지 않고
유지시킬 방법을 모색해야 하며

싫어하는 사람앞에서 표정이 바뀌지 않고
웃으면서 안부를 건낼 수 있어야 하며

좋아하는 사람앞에서 어쩔줄 몰라하지 않고
적당한 친절과 배려를 배풀줄 알아야 하며

약간의 내숭과 애교를 몸에 익히고
하고 싶은 말은 당당히 하고
뒤끝은 깔끔하게 하고 집착은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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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사회구성원들은 정보의 홍수 시대를 살고 있다. 사회구성원들은 모든 사안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고 또 알고 있다고 믿는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알고 있다는 믿음을 갖기 때문이다.

 

  무지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자신의 무지에 대해 모르는 무지가 있고, 자신의 무지에 대해 알고 있는 무지가 있다. 후자의 경우는 자신의 무지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점에서 무지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전자는 그 가능성조차 없다. 정보의 홍수가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가령 정보가 넘쳐나지 않던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스스로 “무식하다”고 인정했다. 나의 유년시절인 50년대나 60년대에 아저씨뻘이나 할아버지뻘 되는 분들이 “나는 무식해서 잘 몰라”라고 말하는 경우를 비교적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엔 아무도 스스로 무식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책을 읽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독서의 중요성은 정보의 홍수 시대에 더 중요성을 갖는다. 정보를 생산하고 유포하는 주체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통해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벗어나기 위해서도 독서는 필수 불가결한 과정이다. 

 

  독서는 ‘세계를 향한 창을 여는 것’이다. 창은 열려졌을 때 그 참된 의미를 지닌다. 닫혀있는 창은 단지 가능성으로만 남을 뿐이다.   

 

  열려진 창을 통해 우리는 세상과 만난다. 그곳에 나와 다른 것, 내가 알지 못한 것과 내가 미처 느끼고 있지 못한 것이 있다. 오직 책을 통해서만 타임머신을 탈 수 있어서 우리가 갈 수 없는 과거의 세계와 미래의 세계를 찾아갈 수 있고 오랜 동안 인류가 남긴 지혜의 보고와 만날 수 있다. 공간적으로도 일상 세계를 뛰어넘어 지상의 모든 세계를 찾아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현미경으로도 들여다 볼 수 없는 인간의 내밀한 내면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것들에 대해 알게 되고 그것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인간은 동물적 본능만으로 살지 않는다. 이성과 감성의 복잡한 구조를 가진 인간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사회적 동물로서 살아간다. 사회적 동물로서 올바른 자아실현을 하려면 당연히 올바른 판단과 선택을 필요로 한다. 독서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령 다양한 것과의 만남은 개인이나 집단이 빠지기 쉬운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한다. 편견과 차별, 부조리와 불합리는 대개 무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물론 무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독서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폭 넓고 깊이 있는 깨달음을 위해 독서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엔 틀림이 없다. ‘책 속에 진리가 있다‘는 말이 공연히 생긴 게 아니다.

 

  다양한 간접 경험이나 지식의 습득이 곧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 모두 진리의 길을 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진리의 의미를 부정하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것은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선택 또한 앎을 통한 깨우침에 의해서 결정된다. 독서는 그러한 앎과 깨우침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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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갠 뒤 갓 돋은 달 밝으니
흐르는 그림자 성긴 발에 어리네
먼 데서 오신 손님은 흥도 많으셔
맑은 빛은 모두 싫어하지 않는구나
허공이 밝으니 하늘은 넓고 넓어
이슬이 내려 옷을 적시네
각은 허공속에 걸렸는데
산봉우리에 달이 걸렸네
구름으로 들어가면 구름 밖은 고요한데
별들은 나무 사이에 걸렸네
밤을 재촉하여 등을 걸었는데
바람이 읊조리니 호각소리가 짧아지도다
…차는 익어 시정에 젖어드니
거문고 맑은 소리 고운 손에 울린다
참으로 다정하고 즐거운 마음을
가도 가도 버릴 수 없네
머리 들어보니 은하수는 기우는데
이 기쁨 달님에게 물어본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차인 가족으로 알려진
혜거도인 홍현주가의 차시


초의 스님의 ‘동다송´을 오늘에 있게 한 주인공인
혜거도인 홍현주가는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
자식들 모두가 차를 즐긴 당대 최고의 세력자 집안이었다.
그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차를 마시며 지은 차시.


먼저 아버지인 족수 거사 홍인모가 운을 뗀 후
그의 어머니인 영수합 서씨, 두 형과 여동생 유한당 홍씨,
그리고 홍현주가 돌아가면서 쓴 연시다.
한가족이 달빛을 풍광삼아 차를 즐기는 향취를
그대로 드러내는 아름다운 차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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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감으면 보인다 ~



마음으로 봐야 잘 볼 수 있는 것
무엇이 있을까요?

눈을 감아야 오히려 잘 보이는 것
어떤 것들일까요?

어릴 때 어머니께 혼나고 나서
자발적으로 맨 처음 올려다봤던 그 하늘 색

내가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내밀어 주던 친구의 손길에 담긴 온기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던 사람을 용서한 후
뻥 뚫린 듯 후련해지던 마음

맨 처음 사랑을 느끼고
온 세상이 모두 그 사람으로 꽉 차던 열정

책 속에서 발견한 인생의 진리
음악 한 자락의 감동
시 한 구절의 느낌

이 모든 것은
눈을 뜨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뚜렷이 보입니다

잎이 무성한 여름 산보다
잎이 다 져 버린 겨울 산에 올라야
비로소 산의 길이 보이지요

그런 것처럼 우리 마음의 진정한 지도는
마음을 비우고 눈을 감을 때
비로소 선명해 집니다

지금 눈을 감아 보세요
그리고 가만히 마음을 채우는 그 대상을
응시해 보세요

그 사람이 진정한 내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길이 진정한 내 길입니다

- 송정림 / 마음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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