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은 쉽게 빵과 집으로 나뉠 수 있다
큰 길가 유리창에 두 뼘 도화지 붙고 
거기 초록 크레파스로
아저씨 아줌마 형 누나님
우리집 빵 사가세요
아빠 엄마 웃게요, 라고 쓰여진 걸
붉은 신호등에 멈춰선 버스 속에서 읽었다
그래서 그 빵집에 달콤하고 부드러운 빵과
집 걱정하는 아이가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자세를 반듯이 고쳐 앉았다

 

 

세 한 장의 그림이 그려지지 않나요? 이면우 시인의 ‘빵집’이라는 시의 일부입니다. 버스를 타고 퇴근하는 길에 빵집 유리창에 붙여진 어린아이의 글씨를 봅니다. 아마 빵이 잘 팔리지 않는 모양이지요. 어린아이는 빵이 많이 팔려야 집안에 웃음꽃이 핀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손님을 끌어올 수는 없고. 결국 ‘광고’를 하기로 한 것이지요. 어쩌면 부모님이 빵이 잘 팔리면 아이가 원하는 선물을 사준다고 약속했는지도 모르지요. 아이의 때묻지 않은 마음이 빵냄새처럼 풍겨옵니다.

 

그런데 저는 갓구워낸 빵처럼 따뜻한 아이의 마음 못지않게 시 속의 화자의 변화에 주목합니다. 보세요. 화자는 빵집에 나붙은 삐뚤빼둘한 글씨를 보고 ‘자세를 반듯이 고쳐 앉았’습니다. 자세를 바로 한다는 것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시에서 책과 책읽기의 진정한 모델을 발견합니다. 아이가 빵집 유리창에 써놓은 글이 책이라면, 그것을 보고 자세를 바로 하는 퇴근길의 화자는 진짜 책을 좋아하는 독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좋지만, 바른 자세로 읽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누워서 읽을 수 있는 책은 많습니다. 시간을 죽이기 위해 집어드는 책도 부지기수입니다. 목차만 훑어보아도 필요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책도 많습니다. 다 좋습니다. 하지만 퇴근길 버스 속에서 아이의 글씨를 보고 자세를 반듯이 하는 저 시의 화자처럼 척추를 곧추세우고 읽어야 하는 책이 있습니다.

 

제가 오늘 드릴 말씀은 책 속에 길이 있으니, 그 책 속으로 얼른 들어가라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책을 읽되, 때와 장소를 가려 읽으라는 것입니다. 때와 장소를 가려 책을 읽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일정한 경지에 올라 있는 사람입니다. 책에 따라 그 책을 읽는 때와 장소가 달라집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책을 읽는 자세가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제가 존경하는 분들 중에 남다르게 책을 읽는 분이 몇 있습니다. 먼저, 호텔방에서 책을 읽는 분이 있습니다. 남들이 여름휴가를 떠날 때, 그 분은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한 보따리 싸들고 시내에 있는 호텔로 들어갑니다. 일주일쯤 두문불출하며 책읽기에 빠져듭니다. 여름 휴가철에 도심의 호텔만큼 한적한 장소도 드뭅니다. 돈이 조금 들어가지만, 방해받지 않고 집중을 유지하는 데는 이만한 방법도 흔치 않습니다.

 

또 한 분은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맑은 정신으로 책상에 앉아 한 시간 동안 책을 봅니다. 일요일 아침 한 시간을 ‘호텔 방’처럼 확보해 놓은 것입니다. 일요일 아침에 읽는 책은 평소 필요에 의해 펼치는 책과는 성격이 다른 책입니다.

 

세 번째 사람은 세계 최고의 부호인데, 일년에 한 달씩 휴가를 내고 틀어박혀 책만 읽는다고 합니다. 휴가를 마치고 다시 집무실에 돌아가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온다고 합니다.

호텔에 들어가 책을 읽었던 분은 30년 가까이 신문기자 생활을 하다가 쉰이 넘어 소설가로 변신한 김훈 씨입니다. <칼의 노래>나 <자전거 여행>과 같은 문장이 하루 아침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 분은 문학평론가이자 동국대 국문과 교수인 황종연씨입니다. 황교수는 풍요로운 이론과 날카로운 안목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제가 보기엔 저 일요일 아침의 참선 수행 같은 독서가 그 비결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누구나 다 아는 사람입니다. 바로 빌 게이츠입니다. 그는 “어릴 때 마을 도서관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책과 더불어 성장한 그는 마이크로 소프트사를 설립하고, 그것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끌어올린 뒤에도 책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소설가 김훈씨나 평론가 황종연 교수 그리고 빌 게이츠가 책을 읽을 때 어떤 자세이겠습니까. 빌 게이츠한테는 직접 들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앞의 두 분은 정좌하고 책을 읽습니다. 정좌란 척추를 곧추 세우는 자세를 말합니다. 스님들이 깨달음을 구하고자 용맹정진할 때, 척추를 수직으로 세웁니다. 척추가 흐트러지는 순간, 집중력은 깨져버립니다. 죽비가 날아가지요.

 

호텔에서 책을 읽기란 쉽지 않습니다. 일요일 아침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빌 게이츠처럼 비행기를 타고 홀로 조용한 휴양지를 찾기란 더욱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지하철에서든, 교실이나 강의실에서든, 화장실에서든 척추를 바로 세우고 읽은 책이 한두 권 있다면 오케이입니다.

 

척추를 곧추 세우고, 다시 말해 온몸과 마음을 집중해 읽은 책이 한두 권 있다면, 당신은 책 속에서 이미 길을 찾았을 것이고, 또 그 길 위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 나갔을 것입니다.  책을 몇 권 읽었느냐는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척추를 곧추 세우고 읽은 책이, 또는 그런 자세로 읽고 싶은 책이 과연 몇 권이 있는가가 책읽기의 핵심입니다. 척추로 읽는 책이 진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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