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 읽어주면 아이 성격도 좋아져요”

4월1일 '북스타트 데이'가 선포된 뒤 두달여가 흘렀다.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지원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전국 각지에서 참여를 요청하는 등 북스타트 운동에 대한 각계의 반응은 뜨거웠다. 9일 폐막한 서울국제도서전 북스타트 홍보 부스 역시 관심있는 시민들의 발길로 성황을 이뤘다. 북스타트 사업의 성공적 안착과 호응에 대한 소식을 들은 도종환 시인이 축하와 조언을 보내왔다. 시집 '접시꽃 당신' '부드러운 직선' 등으로 친숙한 도 시인은 "북스타트가 책과 어린이의 만남을 주선하는 행복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들고양이한테 잡혀 먹힐 뻔한 야생의 어린 산토끼 한 마리를 집에 데려다 키우고 있다. 어려서부터 토끼장 바닥에다 신문지를 깔아주고 젖으면 갈아주곤 했더니 방에 들어오면 신문지가 쌓여 있는 곳에다 똥오줌을 싼다. 얼마 전부터는 밖에다 풀어놓았는데 돌아다니며 놀다가도 내가 부르면 얼굴을 쏙 내밀고 나타난다. 내 말을 알아듣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건 아닐 것이다. 억양이나 음색을 듣고 감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제 일곱 달 정도 된 토끼다.

감각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하기로는 식물도 마찬가지다. 차윤정씨의 ‘식물은 왜 바흐를 좋아할까’에 소개된 식물학자들의 실험에 관한 글을 읽고 놀랐다. 옥수수,호박,백일홍,금잔화 등을 대상으로 클래식 음악과 록음악을 지속적으로 들려주면 클래식 음악을 틀어준 쪽으로 줄기가 이동하며 자란다는 것이다. 식물들도 소리의 진동에 대해 나름대로 반응을 한다는 것인데 놀라운 것은 여러 음악 중에서도 바흐의 오르간 음악,인도 음악을 좋아하더라는 것이다. 사람에게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악은 식물들도 부드럽고 감미롭게 느끼며 소란한 음악은 식물의 세포 전위나 활성 전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어린 짐승과 식물도 그렇다면 사람에게도 좋은 감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일은 나쁘지 않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아기에게 책을 읽어주도록 북돋우는 북스타트는 그런 행복한 경험을 공유하는 운동이다. 북스타트를 보면서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너무 어려서 사물에 대한 개념을 가르치는 것은 나쁘다는 것이다. 책을 통해 지식을 넣어주려 하거나 글자를 가르치려는 것이라면 그건 지나친 욕심이다. 그러나 책이 감각을 익히기 시작할 때 보여주고 느끼게 하기 위해 세심하게 선택하는 소재라면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유아기 때는 아무 것도 모르리라고 생각할 것만은 아니다. 태교를 할 때 좋은 음악을 들려주듯이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들려주는 자장가나 좋은 이야기는 아이의 성격에 긍정적인 경험으로 쌓일 것이다.

‘최초의 교육이 가장 중요한 교육’이라는 말이 있다. ‘에밀’에서도 이 점을 강조한다. 루소는 인간의 교육은 탄생하면서부터 시작된다고 하였다. 말을 하기 전부터,말귀를 알아듣기 전부터 교육받고 있는 것이다. 경험이 학습보다 먼저 오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지식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만인 공통의 지식과 학자에게 배우는 지식 부분으로 가른다면 후자는 전자에 비해 극히 미미하다고 루소는 말한다.

유아기 때의 감각에 대한 교육이야말로 어린이의 지식에 있어 으뜸 가는 소재가 되므로 그것들을 알맞은 순서로 제공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 기억들은 뒷날 사물에 대한 이해와 판단의 준비가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어린이가 물건을 식별하게 되는 때에 어린이에게 보여주어야 할 물건을 선택하는 일은 중요하다. 어린이에게 어떤 물건을 보여주는가를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어린이를 소심하게도,용감하게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북스타트 운동이 유아기 어린이에게 제공되는 문화적 소재 중에 책을 택한 것은 아마 이런 교육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였을 것이다. 잘 정착되고 확산되게 한다면 문화의 질적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어린이들은 보고 만지고 듣고 느끼면서 물체의 크기를 비교,대조도 하고 뜨거움,단단함,가벼움,부드러움 등 크기나 모양,성질 등을 배우고 넓이와 거리를 익힌다. 이렇게 감각을 경험하기 시작할 때 책을 만지고 보면서 자란 기억은 차곡차곡 저장되어 책에 익숙한 아이로 성장하게 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할 때도 유아들은 엄마가 얘기하는 걸 듣는다. 아이들이 말을 한다는 건 귀에 많이 익은 말소리를 흉내내는 것이다. 많이 들은 어조,억양,빠르기를 모방하며 말속에 담긴 의미와 분위기와 느낌도 따라서 배우게 된다. 그런 걸 생각하면 이야기 들려주기(story-telling)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중요한 독서교육이며 인성교육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은 이야기하는 순간에 그 생을 창조하고,감정을 불러일으키며,웃음과 즐거움,이상함과 놀라움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라고 루스 소여는 말한다. 어린이 도서관을 운영하는 분의 말씀을 들으면 이야기를 들려주면 자기 엄마가 아닌데도 아이들이 품에 와 자연스럽게 안긴다고 한다.

생각 있는 어머니는 자기 아이를 일찍부터 노래와 낱말의 음률 속에서 자라게 한다고 한다. 이런 엄마와 함께 자라나 책의 세계로 들어가는 아이는 충만한 감수성과 상상력,꿈을 가진 아이로 자랄 것이다. 다만 엄마가 너무 성급하거나,금방 과실이 열리기를 기대하거나,조급하게 아이를 채근해서는 안 된다. 책과 함께 인생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며,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습관 하나를 갖게 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엄마는 아이의 훌륭한 스승인 것이다.

도종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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