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과학도다. 고등학교 때도 물리나 수학에 비중을 둔 공부를 했고, 대학에서도 그랬다. 그때 나는 문학은 감수성 예민한 여학생들의 전유물인 줄 알았고, 실제로 내 주위에는 그 흔한 소설 책이나 철학서를 뒤적이는 부류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주위의 친구들 중에 간혹 문학이나 철학에 대한 얘기를 하는 친구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때 나는 그런 얘기들을 인문학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지 못 할 정도로 무지했다. 그렇다고 과학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교과서에 적힌 내용을 외우고 응용하는 정도였으니 딱히 과학을 공부한다고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그때까지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책을 읽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학 입시가 끝나자 지금도 그렇겠지만 우리에게는 이상한 공백이 왔다. 학과 진도는 이미 다 나간 상태에서 입시까지 끝나자 수업시간에 더 할 공부가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상한 공백 기간 동안 학교에서는 우리에게 아무 책이나 읽으라는 권유를 했다. 처음 맛보는 방임 상태에서 나는 잠시 난감했다. 독서 지도같은 것은 말도 들어 본 적이 없었고, 한 번도 서점이나 도서관을 드나든 경험도 없었다. 나는 자연히 집에 있는 책들 가운데서 한 권을 골랐다. 출판사는 잘 알 수 없지만 <철학대계>라는 전집(당시에는 전집류들이 장식용으로 방문판매되는 게 유행이었다) 중에서 제 1권을 뽑아 들었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늘 그렇듯이 첫 째 권부터 뽑아든 것이었다. 그게 무슨 책인지 상관없었다. 학교에 가서야 비로서 읽으려고 표지를 보니 『플라톤』이었다. 한 권의 책에 「대화」,「향연」,「파이돈」,「국가」 이렇게 4편이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주욱 읽어 나갔다. 처음 읽는 책이라서 그런지 마른 스폰지에 물이 스미듯이 책의 내용은 아무 비판없이 수용되었다. 그런 내 꼬락서니를 보던 국어 선생님이 뒤에서 다가와 물었던 기억이 있다. “재밌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아무 말없이 나를 지나갔다. 친구들도 궁금했는지 “뭔데?”하고 물어왔다. “플라톤.” “윤리 시간에 배웠던 그거?” “어.” 친구들은 뭐 별 대수롭지도 않네하고 제 자리로들 돌아갔다. 아무튼 나에게는 『플라톤』이 아주 단순하고 재미있는 우화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플라톤』을 다 읽고나서 또 집에 책장을 보니 또 교과서에서 본 이름이 있었다. 키에르케고르였다. “이 사람도 윤리책에서 본 사람이네.” 『죽음에 이르는 병』―그런데 이 번엔 좀 힘들었다. 처음엔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말들이 계속되었다. 나는 당황했다. 글자는 읽는데 의미는 해독되지 않는 경험을 그 때 처음했다. 내가 얼마나 당황했느냐면, 나는 누가 책망하는 것도 아닌데 무지 챙피했다. 급기야는 공부 시간에는 친구들이 읽은 책을 빌려서 읽고, 키에르케고르는 집에서 혼자 몰래 읽었다. 이해 될 때까지. 그러나 읽어도 읽어도 키에르케고르는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키에르케고르를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그 후로도 다시는 키에르케고르와 친해지지 않았다.


  그 후 대학에 와서 열 아홉의 나이에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에 대한 회의에 빠졌고, 나는 자연스럽게 신학에 관한 서적들을 닥치는대로 읽었고, 사회운동에 경도되었다. 80년대는 인문학의 시대였다. 사상이 넘쳐났고, 정의 할수 없는 용어들이 내 주위를 유령처럼 떠돌며 나를 괴롭혔다. 나는 이 혼란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수강 과목 중에서 물리와 공업수학만 빼고 나머지 과목은 수업에 들어 가지도 않았다. 수업을 거의 전폐하다시피하며 나는 대학 도서관의 참고열람실에 파묻혔다. 거기서 닥치는 대로 읽어댔다. 방학 때도 집에 가지 않았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그리고 나서 우연히 잡은 책이(디자인이 좋아서였다)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었다. 나는 거기서 플라톤을 다시 만났다. 그 때의 기쁨, 그리고 헤겔과의 만남, 조흔 인연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 국한 된 게 아니었다. 나는 항상 책과 나 사이에도, 사물과 사람 사이에도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경제에서 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 도대체 왜, 나를, 이렇게 어딘가로 이끄는 것인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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