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그때 고모네 가족이 옆집에 사셨다. 하필이면 그때 고모부께서 실직상태이셨다. 하필이면 그때 나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나이였다. 고모부가 어린 조카에게 한글을 가르치시려고 마음먹게 된 그 이유를 나는 모른다. 내가 얼마만에 한글을 뗐는지도 이젠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아는 건, 그 날부터 내가 책벌레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1960년대 서울 달동네에서 벌어진 일이었음을 생각해주시라. 유치원에 다니는 건 아주 부잣집 아이들에게만 허용된 특권이었던 시절이다. 대부분의 달동네 사람들처럼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그날 하루의 양식 걱정을 하고 살아야 했다. 고모부가 아니었다면, 내가 한글을 깨우친 것은 학교에 들어간 다음의 일이었을 것이다. 왜 그렇게 책이 신기하고 좋았을까. 누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으랴. 그건 그냥 운명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골목길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자치기를 하며 뛰어 놀 때 나는 고종사촌 형과 누나의 책에 달려들었다.

 

책벌레가 된 소년은 몰랐다. 그것이 얼마나 저주받은 인생인지를. 책을 한 권 읽고 나면 뿌듯한 포만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 포만감은 아주 잠시였다. 눈 깜짝할 새에 포만감은 사라지고 지독한 배고픔이 밀려왔다. 아무리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배고픔.

 

초등학교 내내 소년은 외로웠다. 남자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면 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나갔지만, 소년은 학급문고에서 빌린 동화책의 결말을 어서 봐야 했으므로 책상을 떠나지 못했다. 남자아이들은 소년을 놀려댔고, 어느 날부턴가 아예 소년이 없는 것처럼 그들만의 공차기를 꾸려갔다. 여전히 가난했던 소년의 부모님은 소년에게 많은 책을 사 줄 수 없었다. 학급문고에서의 양식 조달이 끝나면 부잣집 친구의 집으로 놀러가야 했다. 친구의 어머니는 “쟤는 남의 책도 저렇게 열심히 보는데 너는 사다 줘도 안 읽냐”고 친구를 야단치셨고, 그날부터 친구는 소년을 집으로 데려가는 걸 피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안다. 그렇게 책벌레의 외로운 인생이 나 혼자만의 운명이 아니었다는 것을. 세상엔 그렇게 저주받은 책벌레의 인생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꽤나 많다는 것을. 분명히 다 읽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무더기로 책을 사들이고, 낯선 도시에 가서 헌책방을 만나면 그 퀴퀴한 낡은 책의 냄새와 먼지를 코로 들이마시며 ‘책벌레라서 행복해요!’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는 것을.

 

인생의 모든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책벌레로 인생을 살게 된 건 저주다. 끝없는 배고픔보다 더 지독한 저주가 어디 있는가. 그러나 그 끝없는 저주는 동시에 축복이다. 죽는 날까지 새로운 양식으로, 비록 곧 사라질망정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처럼 놀라운 축복이 또 어디 있는가. 끝없는 포만감과 끝없는 배고픔이 꽉 부둥켜안고 추는 왈츠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제는 안다. 그 끝없는 배고픔이 내 정신을 통통하게 살찌웠음을. 내가 파먹은 그 수많은 책들의 구절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탄수화물이며 단백질이며 무기질이었음을. 책을 사느라고 비싼 식당에 갈 수 없었지만, 그 덕분에 내가 비만에 걸리지 않게 되었음을. 책을 읽느라고 그 시간에 더 많은 돈을 벌 수는 없었지만, 돈 많은 자들 앞에서 적어도 스스로 초라해지지 않을 수 있었음을.

 

어쩌다 보니, 세상의 그 많은 책에 또 몇 권을 보태는 인생을 살게 되었다. 아주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몇 천은 족히 넘는 사람들의 서재에 내 책이 꽂혀 있을 것이다. 그건 정말 내 몸을 떨리게 만드는 기쁨이다. 내가 읽은 책들의 저자들이 지금 내 정신 속에서 살아 있듯, 내 책의 독자들의 정신 속에서도 내가 살아 숨쉬고 있음을 나는 안다. 책이 아니라면 그 무엇이 그토록 놀라운 ‘함께 살아감’을 가능케 하겠는가.

 

오, 아름다워라, 책벌레의 인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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