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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다
김재식 지음, 김혜림 그림 / 쌤앤파커스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단 하루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다니, 이 얼마나 가슴 설레는 말인가. 하지만 나는 이 말을 타인에게서,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듣는다면 되물을 것 같다. "(부정적인 표현의) 정말? 왜? 어째서?" 사람이 어떻게 내가 아닌 타인을 매일매일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결코 나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는 강약이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다툼을 통해 사랑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을 한다면 그건 사랑이라고 불릴 수 있지만, 다투고 미워하는 과정도 '사랑'이라고 말해버린다면 그건 분명 억지이고, 명백한 미화에 해당된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대부분의 '다툼'은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고, 나를 위해서인 경우가 많기에, 우리는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말한다기보다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편이 오히려 옳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당신을 위한다'는 말을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결국은 '나를 위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곤 하니까.
내가 평소에는 거의 찾지 않는 사랑 에세이를 찾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는 사랑의 이야기는 언제나 읽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는 하지만, 모음집을 굳이 찾아서 읽는 편은 아니다) 극도로 J에게 징징거렸던 나날들이었다. 이런저런 이유가 많았지만 가장 큰 틀은 결국은 ‘주말부부’였다.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 (이건 평소가 아니라, 특히 술 약속이 있을 때 그는 정말 나라는 사람은 잊고 사는 것만 같다. 평소에는 '어쨌든 집에 들어오니까'라는 믿음이 있었다면, 지금 우리 상황은 좀 다르다고 생각하기에 그 부분은 그가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는 것), 우리가 살 집이 있는 지역에 처음 갔을 때 너무 아무렇지 않게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나를 마중 나왔던 것 (당시에는 화가 나서 회식 때도 이러고 나가지는 않지 않냐.고 말했다. 나는 이날 데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런 생각을 한 내가 멍청하다고 비난했다. (나에게 있어 멍청하다는 의미는 내가 나에게 제일 하고 싶지 않은 말 중 하나의 종류의 단어다)), 내가 다음 날 본인이 있는 지역으로 갈 것임에도 불구하고 전날의 술자리에서 조절을 하지 않는 것, 그래놓고 나를 만나서는 피곤하다고 말을 했다. 물론 나는 그가 말을 하기 전부터 그의 피곤을 살폈다. 그는 그것을 단순히 '아직 업무에 적응되지 못해서'라고 말을 했다. 그건 내가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반복되는 문제들에 지쳐버렸고, 이 사람이 내가 함께 살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실망스럽기까지 했었다. 심지어 이건 연애 때도 없던 괴기한 행동들의 연속이었다.
주말부부를 하니 연애 때의 감정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착각한 것도 아니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나와 함께 지냈던 몇 년 간의 생활들이 초기화된 듯한 모습들을 보였고, 급기야 나는,“나는 짝사랑을 해본 적이 거의 없는데 요즘 당신을 나 혼자 짝사랑하는 감정을 느껴.”라고 말했다. 쌓이고 쌓였던 감정들이었다. 결국은 우려했던 상황들이 봇물 터지듯 터졌다.
문득, <빨간 장화>에서 “나랑 헤어져도 쇼짱은 분명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던 히와코의 말이 나의 생황과 오버랩됐다. 그는 아니라고 펄쩍 뛸 테지만, 내가 그에게 다시 읽어보라고 준 <빨간 장화>나 읽었으면 좋겠다. 그날은, 모든 것이 전부 외롭다고 느낀 밤이었다. 내가 베고 있는 베개, 덮고 있는 이불, 몸을 누인 침대, 내가 있는 공간마저도 부정하고 싶은 상태였고, “혹시 그는, 내가 필요한 게 아니라-”로 시작되는 문장들을 메모장에 휘갈겼고 그에게 내보였다. 예닐곱 줄의 문장밖에 안 되는데, 글을 전부 옮기지 않는 건, 내가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기분을 다시 끄집어내지 않기 위함이다. 이미 끝난 일이어서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쓰다 보니 또 화가 나서 여기서 멈춰야겠다.
결국은 내가 이 책을 읽으려고 한 것은, 내가 하고 있고 알고 있던 사랑에 대한 이면의 모습 때문이었다. 매번 공감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알게 될까 싶어서였다. 사랑이라는 게, 아니- 해보지도 못한 짝사랑이라는 감정이 이런 거지발싸개 같은 감정이라면 나는 당장에라도 그만두고 싶었다. 내 사랑이 어리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읽고 싶지 않은 마음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껏 위안받고 위로받고 싶었다. 이 책을 읽는 행위는, 암사자가 물소를 잡기 전 물을 축이는 행동과도 비슷했다. 나는 우선 좀 차분해질 필요가 있었다.
255.
나를 울게 한 것도 사랑이지만
다시 웃게 하는 것도 사랑이기에
우리는 또다시 사랑을 시작해야 한다.
올해 1월에 떠났던 부산 여행에서 노래를 하나 들었다. 가을방학의 <너로 인해>라는 노래였는데, 이 노래는 분명 고양이에 대한 노래였는데, 나는 자꾸 J가 거기에 대입되더라는 것이었다. ‘그래 난 너로 인해 많이 울게 될 거라는 걸 알아. 하지만 그것보다 많이 행복할 거라는 걸 알아’ 그래. 내가 J 때문에 많이 울기도 하지만, 많이 웃기도 한다. 행복해하기도 하고. (고양인가)
하나하나 차근차근 읽어내려갔다. 내 인생을 통틀어 연애라는 것을 하면서 나는 이별에 그다지 아파하지 않았다. 며칠만 앓고 일어나면 금세 괜찮아졌다. 그 부분에 대해 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주변 사람들은 내가 신기하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른 후에 생각해보니 이유는 두 가지였다. 정말 좋지 못한 사람과 연애를 했거나 끝이 남지 않는 연애를 했거나. 끝이 남지 않는 연애라는 것은, 내 이기적인 성격 때문에 뒤늦게 상대방에게 미안해하는 일이 많을지언정 나는 매 순간 진심을 다했었기에 미련이 남지 않는 연애를 말한다. 그래서 주변 지인들이 연애하고 이별했다고 슬퍼하거나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이 이별을 할 때 슬퍼하는 연기를 할 때면 잘 공감하지 못했던 축에 속했기에 나와는 별개의 세상으로 알고 지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이별에 저릿저릿한 마음이 느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J와의 관계에서 헤어짐을 염두에 두고 있거나 헤어질 수 있다는 상상을 하면서 사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현재 모든 '이별'에 민감해지고 예민해지는 시기다 보니 더욱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우리는 사랑을 했었다면 사랑을 다시 시작해야하고, 사랑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랑에 집중해야한다. 그랬을 때에 비로소 사랑과 마주 설 수 있다. 사랑은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사랑이 컨트롤이 가능한 것이라면, 세상 어느 곳에도 '진심'이라는 싹은 틔울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5.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오랫동안 함께하기를 바랐다.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받아들여야만
우리는 온전히 그 안에 살 수 있다.
나는 그 사람만의 색깔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확신하지는 않는다. 이걸 인정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로 무조건적인 수용 역시 올바른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특히 둘의 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상대방이 싫다고 하는 것이나 해줬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받아들이라고 하기 이전에 '노력'이라는 것을 해줬으면 한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는 그게 가깝든 가깝지 않든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일임에 분명하니까. 무조건적인 이해가 무서운 건, 이해가 아니라 체념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116.
한 세상을 살면서 오랫동안
한 사람과 함께할 수 있다는 건
참 멋진 일이다.
계절이 바뀌어 꽃이 피고
비가 쏟아지다가 하얗게 눈이 내리고
얼었던 강물이 따뜻한 햇살에 녹아도
서로의 곁에 머무르고 있다는 건
함께하기로 약속한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 사람은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힘겹게 당신을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