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
안나 가발다 지음, 김민정 옮김 / 북레시피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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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는 단편을 참 많이 읽게 된다. 긴 호흡을 감당할 수 없어서,라는 것이 그 까닭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여 읽게 된 단편들이 너무나도 주옥같다. 그 중 한 권인 안나 가발다의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 ㅡ 읽는 시간이 참 길었다. 모든 단편이 다 그러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을 폭 파고드는 이야기는 하나쯤 있게 마련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접할 때마다 마음에 발그레한 휘광이 일렁이는 듯하였다. 오랜 여운을 간직하고 싶어 이야기 하나를 오래도록 곱씹었다. 혹여나 바람에 따라 흩어질 것만 같아서.

  


 


생 제르맹 데 프레에서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고, 그 남자에게 저녁식사 제안을 받는 것을. 생페르 거리에서 생브누아 거리, 다시 생페르 거리에서 그리고 생자크 거리로 이동하는 짤막한 시간 동안의 긴장감을, 코트드뉘 주브레샹베르탱 1986년산 레드와인을, 블랙베리 셔벗을, 그리고 아직 접하지 못한 프랑수아즈 사강과 샤를 보들레르, 장폴 뒤부아의 작품을 감히 상상해보는 그런 시간이다. 그 시간은 마음을 요란스레 만들었다. 이야기는 파리, 그 자체였다. 자연스레 상상이 된다. 그 상상은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는 사랑이다.


걸으면서 나는 길가에 빈 깡통이라도 널려 있는 것처럼 허공에 대고 발길질을 했어요.

나는 휴대폰이 미워요. 사강도 싫고 보들레르도 지긋지긋해요. 그리고 내 오만함도. (p.30)


 


 


그리고,

기욤텔 거리의 녹음실에서는 그는 앙브르를 만났어. 코르베이 7번 국도변 작은 빌라에선 누군가가 휴가를 나온 한 남자를 기다릴 테고, 쉴리에서는 한 남자가 첫 사랑인 그녀를 만나는 일이 있었어. 물론, 아내 몰래 말야. 갤러리라파예트 백화점에서 그녀에게 선물로 줄 탕가 스타일의 속옷을 사던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며 누이들과 함께 살던 콩방시옹 역 근처 110의 아파트에서 그녀가 사는 파리 10구로 이사를 해. 그리고 집들이랍시고 그녀를 초대를 하지.


그렇게 그들은 사랑을 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하고, 이별하는 법을 함께 배운다. 사랑, 그리고 사랑, 그럼에도 사랑, 할 수 없이 사랑.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인양, 힘껏 그러모아서, 사랑.


 


 


하지만 그저 사랑만을 담고 있지도 않다. 그 외에, 또 다른 이야기들.

이를테면, 사투르누스(토성: 슬픔의 근원)의 날이 출산 예정일인 여성에게 끔찍하게도 재미없는 일이 생겨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남은 임무가 있다는 점이, 그 점이 바로 사투르누스일지 모른다는 것.까지 상상을 하다 보니, /모든 이야기를 읽어도 그렇게 심각해지지 않는다./라고 생각했던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락까지 떨어뜨리지 않는다. 작가의 힘일까. -이러다가 모든 단편을 쓸 것만 같아서 이쯤에서 멈추기로 한다.-


 


 


그러니까……. 그렇게 심각할 건 없네?” (p.186)


그들에게는 외로움이라는 키워드가 공통분모로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외로움의 형태가 무수히 다양하여 단숨에 알아채지 못할 뿐. 하지만 나의 모든 생활을 지배하는 외로움 따위의 감정은 타인이 보기엔 그리 심각한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나 말고는 그 외로움을 타인이 이해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 요행일 수 있다.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그들이 바라는 것은 어쩌면 단 하나였을지 모른다.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는 이가 있다면……. 사실 그게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닌데.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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