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밤과 노래
장연정 지음, 신정아 사진 / 인디고(글담) / 2017년 5월
평점 :
호흡이 긴 글을 읽기가 힘든 순간이 또다시 도래했다. -이 순간은 한 달에 여러 번 찾아온다- 순간,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내가 힘들어하다고 느끼는 것은 너무나도 장기적인 것이어서 일정한 템포로 힘든 것이 아니라 클라이맥스가 있는 까닭이다. 이 책을 읽을 때가 그랬다. 가장 클라이맥스로 다다른 때. 그때는 아무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워낙 장기전이다 보니, 그 순간이 가장 힘든 것이다. -나를 미치게 만드는 다른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라면-
그래도 억지로 뭔가를 해보려 나는 무던히 노력한다. 잊기 위해서. 그래서 책을 들었는데 눈 앞에 난잡하게 활자만 덧대어 보일 뿐, 글이 읽히질 않는다. 근래에는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책을 읽지 않게 되었다. 장편보다 단편을 더 자주 찾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단편도 들어오지 않아, 에세이를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세 그 에세이에는 신물이 나서 덮어버렸고, 책장 앞을 서성거리다가 책 한 권을 들었다. 「밤과 노래」 - 때마침 감정이 꽉 차오르는 밤,이었다.
잠시뿐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았다. 하지만 활자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온몸의 힘이 쭉 빠져버렸고, 나는 기어이 책을 읽던 중간에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눈동자에 활자들만 이유도 없이 동동 떠다녔던 것이 없던 일인 것만 같았다. 어떤 것에도 위로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분명 나는 위로를 받고 있었다. 그것이 활자가 가진 강력한 힘이었다. 보태어 음악의 선율 또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책에 위로를 받아본 일이 언제던가. 참 오랜만이었다.
지나간 일들은 지나간 일들로 바라보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통틀어 ‘인생’이라 부르고,
나는 그것에 조금 더 마음을 보태 ‘사랑’이라고 불러본다. (p.39)
위의 글처럼, 내가 힘들어하는 일 또한 그저 ‘지나가는 일’이 되었기를, 되기를, 절대적으로 소망했다. 하지만 아직 그 무엇도 지나가는 일은 될 수 없었고, 되지 못했으며, 되지 못할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지속되던 일들이 한 번에 지나가는 일이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지나갈 일,이겠지. 그것만으로도 희망이 된다. 나의 희망이 존재함으로써 그것은 좀 더 분명한 의지가 생긴다. 그런 나의 희망이 달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고 있다고, 오늘도 믿으며 소망한다. 언젠가는 내게도 상냥한 시간이 찾아오기를.
생각한다.
대립할 수 없어도 좋다고.
다만, 오래도록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제대로 살 수 있다고.
물어본다는 것은 내 안에 느슨해진 호흡이 살을 튕기는 일.
심장을 다시금 뛰게 하거나,
세상이 정해준 안전선 밖으로 한 걸음 더 디디게 만드는 일.
문득 가슴에 송곳이 꽂히는 일.
그 날카로움에 절절히 눈물이 나는 일.
질문은, 달처럼 품어져 눈빛으로 맑게 뿜어져 나오는 것.
나이 듦을 지나, 현실 위에 안주함을 지나,
나는 오래도록 그런 눈빛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나에게 하는 질문이 닳지 않고 늘 새롭게 솟아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도 나에게 물어본다.
나는 정말로 괜찮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냐고. (p.58-59)
그리고 요즘 일기를 쓰기 전에 생각하는 것.
“나는 오늘 괜찮은 사람이었나.” 그 물음엔 아직까지는 아니오.로 끝나는 날이 더 많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점점 더 발전한다는 것. 참, 다행스럽다. 심연의 끝에서도 반짝이는 빛을 볼 수 있어서. 차단된 회로에서 돌아갈 방향을 생각하는, 나는 내가 아직까지도 많이 기특하다. 기억하자. 힘든 순간들. 그래야 나중에 다가온 행복을 더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 테니.
/ 위로를 온몸을 한껏 감싸안아주었던, 귀중한 시간이었어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