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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은 전쟁
장강명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세뇌교육이라는 것은 굉장히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북한’이라는 나라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내게 학교는 나보다 못 사는 나의 형제자매가 사는 곳, 이라고 알려주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도와주며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려면 통일이 되어야 했고, 그렇게 나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통일’을 바라는 어린이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통일 포스터를 잘 그리면 상을 주던 시대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위화감마저 든다. 낙태에 대한 찬반, 안락사에 대한 찬반,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처럼 통일에 대한 찬반도 또렷하게 나타날 수 있는데, 세뇌교육을 당하는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하는 것이 첫 번째요. 또, 우리는 통일을 그렇게 바랐는데, 과연 북한 어린이들도 우리와 같은 교육을 받았을까, 하는 것이 두 번째다. 지금은 통계상으로 통일에 대한 찬반이 어떤 현황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어릴 적, 통일 포스터로 무엇을 그릴까 고민하고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다채로운 크레파스로 예쁘게 색칠하던 어린이었던 나는, 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가득 찬 성인으로 성장했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2016년, 우리는 북한의 도발이 낯설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이때에 장강명 작가의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 출간되었고, 그 책은 ‘통일이 된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북한의 김씨 왕조가 붕괴되었다. 하지만 남한은 휴전선을 그대로 유지하고 이름만 분계선으로 바꾸었고, 비무장지대도 그대로 두었으며, 철조망도 지뢰도 제거하지 않았다. 북한은 김씨 왕조의 서류를 전부 불태워버렸고, 스스로 ‘통일과도정부’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남한 정부와 북한 인민은 우리를 도와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어설픈 일 처리는 눈 감아 줘야 한다.’라는 메시지가 깔려 있었다. 그리고 무정부 사회를 견제하기 위해 북한의 전역에는 UN평화유지군과 남한의 군인들이 파견되었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북한에도 최태룡과 백상구가 두목인 두 조직이 지역을 장악하기 위한 대립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최태룡이 승리를 거머쥐며 다음 프로젝트인 ‘눈호랑이 작전’을 실행하려고 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나타난 ‘눈썹 아래 흉터가 있는 남자’가 자꾸만 거슬린다. ‘눈호랑이 작전’은 어떤 작전이며, 그것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가끔은 한국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북한 문제에 제일 무관심한 사람들이 한국인들 같아요. 북한 문제에 일본이나 미국 언론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과 비교해보면 한국 사람들은 성의가 없어 보일 지경이에요. 왜 그러죠? 바로 옆에 있는 나라이고, 유일하게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잖아요. 한 세기 전까지 같은 나라 아니었나요? 통일에 대해 여론조사를 하면 아직 그래도 찬성 여론이 더 높지 않나요?”
“질려버린 거죠. 옆집 사람이 매일 롱 대위님 집 대문에 칼을 꽂고 욕설을 퍼부으며 살해 협박을 한다고 생각해보십쇼. 그러기를 수십 년인데, 그 옆집 사람이 진짜로 심각한 위협이 된 적은 별로 없다고. 그렇다고 이사를 갈 수도 없고 그 옆집 사람을 이사를 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사람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냥 지겨워지고,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일 자체가 싫어집니다. 짜증만 날 뿐이에요.
우리한테 북한이 그렇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2,3년에 한 번씩 북한은 핵실험을 벌이거나 미사일을 쏘거나 했어요. 아주 어렸을 때에는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으르렁거리면 부모님이 집에 생수도 사고 라면도 사놨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옛날 일이에요. 그렇게 사놓고, 유통기한 지난 라면을 버리고, 다시 사고. 그러기를 수십 년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 그냥 생수도 라면도 안 사게 된 거죠. 북한은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신종 인플루엔자만큼 위험하지 않은 존재예요. 실제로 얼마나 위험이 되건 말건,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건 말건.”
“(……) 이번에는 이런 비유를 들어볼까요? 롱 대위님한테 형제자매가 여러 명 있다고 쳐요. 그런데 그 형제자매가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 아무도 없고, 다들 나가서 매일매일 대형사고를 치는 거예요. 누구는 음주운전을 하고, 누구는 사람을 때리고, 누구는 터무니없는 빚을 지고, 누구는 물건을 훔치고…….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롱 대위님도 형제자매 소식은 더 듣고 싶지 않게 될 거예요. 마음에서 지워버리게 되는 거죠. 그 형제자매를 다 합해 놓은 게 북한이에요. 남한 사람들 대부분은 북한 소식은 듣고 싶지 않아 해요. 너무 지겹고, 감당이 안 되니까요. 하나님, 왜 저런 형제를 저에게 주셨나요, 그런 심정이에요.” (p225-227)
나는 이제는 끼적이는 글이든 서평이든 정치에 관해서는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이리 마음을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저리 마음을 먹으면 달라지는 것을. 하지만 ‘통일’에 대해서만큼은 나는 싫다. 고 완강하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던 통일에 대한 반대를 하나하나 열거하고 있자니, 그 모든 것은 내가 남한에 살고 있는 까닭이기 때문이었다. “네가 누나니까 동생한테 양보해.”는 진짜 내 동생이니까 가능했다.
그리고 나아가 (물론 이건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은 아니지만) 내가 내 손으로 뽑을 수 있는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나라에서도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세상이 전 세계에서 망신거리가 되었는데, 이제까지 세습 정권으로 이루어지던 그들과 우리가 융합이 될 수 있을 리가 없다. (책에서처럼 김씨 왕조가 붕괴된다면, 이미 세뇌되어 있는 그들이 폭동이나 반란을 일으킬 까닭이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김정은이 죽으면 다음 후계자는 누가 되나? 생각해보다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내가 우스워서 참혹했다.)
미개하다, 라는 단어를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싫어해서 사용한 적은 없지만, 사용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이 그들에게 적용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단순히 그들을 야만인이라고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국어사전에 등재된 그대로의 ‘사회가 발전되지 않고 문화 수준이 낮은 상태’ 말이다. 나는 북한이 남한에 흡수될 현상을 두고, 이는 단원고 특례입학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이야기하며 말을 끊으려 한다. (문장에 대한 이해는 자유) (논란이 된다면 삭제 예정이지만, 사실이 그런 걸 어떡하지.)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그냥 이대로 살고 싶다. 물론, 내가 죽기 전까지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아니, 통일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게 맞는 거겠지만. 남한과 북한을 섞어놓으면 오색빛깔의 찬란함이 보일 것 같은 사람도 분명 있을 텐데, 난 그냥 예쁜 색깔들을 여러 가지로 섞어놓아 결국은 이도 저도 아닌 색깔만 상상이 된다. 선을 넘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적절한 지점까지만 선을 넘는 게 어렵다. (p352) 통일이 된다고 하여도 우리는 그 선이 그을리지는 않았는지, 끊어질 조짐이 보이는 것은 아닌지 수시로 점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튼 오랜만에 색다른 장르를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하지만 결말은 다소 아쉽다. 원래 관심도 없었지만, 요즘 두 여자 때문에 나라가 난리가 나서 김정은 돼지가 뭘 하는지 묻혀서 나오지 않아서 불안하다. 나오면 역겹고, 안 나오면 불안하고. 이건 무슨 논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