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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나이 오십, 봄은 끝나지 않았다
박경희 지음, 김인옥 그림 / 고려문화사 / 2014년 11월
평점 :
자식을 보고 사는 사람 아니, 자식이 전부인 사람. 자식을 위해 뭐든지 했고, 할 수 있으며, 해야만 했던 사람. 본인 입으로는 들어가는 것이 없더라도 자식이 잘 먹으면 그것으로 배부르다고 하는 사람, 자식이 아프면 밤을 꼬박 새우고, 자식이 웃으면 그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믿는 사람. 나의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게 나를 키워준 엄마에게 나는 지독히도 무뚝뚝한 딸년이다. 말 한 마디라도 정답게 한 적 없고, 이유없는 웃음을 살살 내비친 적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러면서도 세상 가장 부러운 건, 함께 쇼핑을 다니고, 여행을 다니는 엄마와 딸의 모습이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어릴때부터 일을 하는 엄마를 둔 까닭에 사소한 무엇을 하나 함께 하는 것조차도 내게는 그저 부러움의 대상으로 간직해야만 했다. 그래서일까. 그 모든 것들이 마음에 켜켜이 쌓여 지금 엄마에게 하는 행동들 하나하나가 그렇게 인색할 수가 없다. 마음은 그게 아니면서 튀어나온다는 말들이 죄다 바람처럼 차다. 이를테면, 올해 쉰둘, 갱년기 증상을 읊으며 “갱년기인가봐.”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그 나이되면 다 그렇지, 뭐.” 라고 말하는 쌀쌀맞은 딸년인 동시에, 갱년기에 좋은 각종 호르몬제를 찾아보고 있기도 한 나는 어쩌면 지독히 모순적인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올해 나이 쉰둘, 갱년기에 접어든 엄마를 좀 더 이해하고 싶어서 집어든 책이기도 했다.
책에는 50대가 되면 보편적으로 이렇더라 저렇더라가 아닌, 저자가 본인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풀어놓는다는 것이 가장 큰 이점이다. 저자는 폐경을 인정하고, 퇴직한 남편과 함께 살며, 새로운 취미를 만들기도 하고, 새로운 가족인 손주가 생기기도 한다. 유언장, 묘비명을 미리 써보기도 하고, 부부애와 우정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중년에 피해야 할 꼴불견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저자는 본인의 이야기 외에도 흔히 있을 법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여러 영화와 책, 시도 접목시켜 공감을 이끌어내고 이해를 돕고 있기 때문에 ‘여자 나이 오십’이라는 책의 제목만 보고 지레 겁먹었던 젊은 이들에게 조금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에게는 ‘엄마를 이해하기 위한’이라는 타이틀이 있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아직 이십대 후반에 들어서는 내가 읽기에도 부담스럽거나 불편함, 또 그렇다고 거리감이 심하지도 않은걸 보면, 같은 ‘여자’라는 공통된 姓으로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일종의 애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호프 스프링즈> , <죽어도 좋아> ,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 , <마더> , <아무르> , <사랑한 후에 남겨진 것들> , <글로리아>
시 황지우 「늙어가는 아내에게」 , 최영철 「쑥국-아내에게」
책 앙드레 고르 「D에게 보낸 편지」 (이 책은 꼭 사서 읽어봐야겠다.)
책을 읽는 도중에도, 읽고 난 뒤에도, 책이 시사하는 바는, ‘여자’였다. 나이가 얼마든 그에 상관없이 여자는 여자, 그 뿐이었다. 나는 J군에게 “나는 당신에게 언제나 여자였으면 좋겠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아이를 낳아 기르거나 먼 훗날, 주름이 얼굴을 뒤덮는 순간에도 희망하는 바이기도 하다. 올해 나이 쉰둘, 정장바지보다 스키니진을 즐겨 입고, 구두보다 운동화를 즐겨 신는 엄마에게 “엄마, 이런 옷은 어때?” “싫어.” “왜? 집에 이런 비슷한 옷 있잖아.” “그건 나중에 입으려고 안 입었어. 그건 너무 나이 들어보이잖아.” “엄마 나이 사람들은 이런 옷 많이 입어. 엄마는 너무 엄마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옷을 입잖아.” 생각해보니 엄마는 엄마가 말하는 소위 ‘나이 들어 보이는 옷’을 입으면 정말 안 어울린다. 그냥 보이는 것에 치중하는 내 욕심이었지. 나의 엄마 역시도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이고, 누구보다 엄마 스타일을 잘 아는 사람도 엄마일텐데, ‘엄마 나이가 있으니까.’라고 생각했던 못난 딸년,임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만간 엄마에게 예쁜 스키니진을 하나 사드리고 그 위에 이 책, 「여자 나이 오십, 봄은 끝나지 않았다」를 함께 넣으면서 엄마의 생기 가득한 오십대의 청춘을 응원해야지.
오타 p172 , 16째줄 : 갸녀린 ▶▶▶ 가녀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