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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 ㅣ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3
김이설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평점 :
전작이었던 「환영」에서
마치 물 속에서 버둥버둥치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여자를 꺼내주지도 않고 그저 바라만 보며 시니컬하게 “살아봐.”라며,
바닥에서
질척거리며 악착스럽게 생을 살아내는 여자의 모습을 그려내었던 그녀.
김이설
작가,
오랜만.
반가워요.
선화,
양선화.
반지하방에
사는 여자,
모자를
쓰는 여자,
봄을
싫어하는 여자.
그리고,
상처를
품고 있는 여자.
그
여자의 직업은,
꽃집
아가씨.
아,
나는
‘꽃집
아가씨’라는
단어가 왜 그리도 좋은 것인지.
때문에
더 애착이 가는 것인가.
생각해보니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애착이 가는 까닭이,
세상이
잡아주지 못한 그녀의 손을 어쩌면,
나는
잡아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허황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매일 보고,
매일
만지는 꽃이어서 그랬을까.
나는
내가 기거하는 곳에 꽃을 둘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다.
나에게
꽃은 팔아야 할 물건일 뿐이었다.
생계이며,
노동이었고
생산재였다.
낭만적인
선물이나,
마음을
전하는 표식,
욕망을
충족시키는 소비재가 아니었다.
남들에게는
당연한 소비재가 나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것.
나에게
꽃은 그런 의미였다.
이런
나에게 꽃을 건네다니.
이런
내가 꽃을 받다니.
게다가
나는 그 꽃을 보고 혼자 비실거리고 있지 않은가.
영흠은
내가 이럴 줄 알고 있었을까.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영흠이
바란 건 바로 이런 내 모습일 거란 생각까지 들었다.
말도
안 되는 공상이었지만 생각이 뻗어나가는 대로,
생각이
제 마음대로 활개치도록 내버려두었다.
왜냐하면
이런 감정의 흐름을,
나는
처음 목도하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p90
병준은 운명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나는 학습된 기억이라고
생각했다.
상처를
가진 것들은 상처를 겪은 것들을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들에게
배인 특유의 냄새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배인 상처가 곪고,
물러터진
후에 딱지로 내려앉아,
거친
흉터로 남기까지의 세월이 만든 냄새였던 탓이었다.
그것을
알아내는 감각은 직관적으로 발생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경험으로 훈련되어 발달된 감각이었다.
p91
150cm도
채 자라지 못한 키를 가진 병준.
본인
스스로 허물이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신체적 구조인데,
허물이
아니라고 말하는 그와 관계를 더 이상 이어갈 수가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는
그 때문에 적어도 사회로부터,
또
가족으로부터,
외면을
받지는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친할머니에게서 ‘괴물’이라는
소리를 듣고,
엄마의
정원에서도 쫓겨난 적도 있던 여자에게는 그것이 허물이다.
그런
여자 앞에,
올
때마다 목덜미의 흉터가 아물었는지 먼저 찾아보게 되는 남자,
영흠이
손님으로 찾아온다.
매번
전 부인에게 꽃을 보내는 그 남자.
어느
날,
그
남자로부터 수국을 선물,받는다.
그
꽃은 반지하방에 놓인다.
그 여자 선화는,
신경숙
작가의 「바이올렛」의
산과 많이 닮아있었다.
이야기의
끝에서,
산과
함께 나의 예쁜 꽃동산에 묻어야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덜컥 겁이 났더랬다.
그래서
짤막한 이야기의 끝을 향해 자신있게 내달리지 못했다.
이보다
예쁘게 결말을 낼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유해진다.
참,
다행이다.
당신은
책의 마지막에서,
이제
막 피어나려는 붉은 꽃을 한 송이 볼 수 있겠다.
그
이름,
선화꽃.
-아,
안
되겠다.
이
책은 조만간 필사를 해야지.
꽃은 먹거나 입지 못하는,
지극히
비생산적인 소비재였다.
그저
보는 것이 쓸모의 전부였다.
그러나
꽃을 주고받는 의미는 개인의 욕망을 직접적으로 충족하기에 가장 최적의 재화였다.
꽃을
선물하고,
꽃을
받는 주체의 심리적 만족감은 금전으로 치환할 수 없었다.
p10
붉은 새살로 뒤덮인 것이지만 분명 표면은 얼룩덜룩할
것이었다.
딱지가
떨어져도 원래와 다른 자국이 남을 터였다.
상처란
그렇게 분명한 표식으로 그 흔적을 남기는 법이었다.
p18
매일 조금씩 해가 길어지고,
공기가
따뜻해지고 있었다.
내가
싫어하는 계절인 봄이었다.
긴
겨울이 지나면 봄햇빛처럼 일상이 화사해질 것 같지만,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괜한
헛된 희망을 품게 되는,
그저
허망하기 짝이 없는 계절이 바로 봄이었다.
얇은
옷으로 갈아입고 꽃을 찾지만,
달콤한
초콜릿과 사탕을 유난하게 주고받으며 사랑을 확인하지만,
그저
매년 반복되는 계절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p60
꽃 만지는 손은 차가울수록 좋다.
처음
꽃을 잡았던 날,
내
옆에서 지켜보던 아버지가 했던 말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적격일 터였다.
계절에
상관없이,
늘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은 꽃 일을 하기에는 좋았지만,
누군가의
손을 잡기에 좋은 손은 아니었다.
영흠의
손은 나보다 더 차가웠다.
병준의
손은 언제나 뜨거웠고 땀이 많아 축축했다.
나는
내 손을 내려다봤다.
뭉특하게
짧은 손톱,
여기저기
잔 상처가 가득한 손가락,
거기에
손등은 벌겋게 터 있었다.
p66
오타 p35
6째줄
:
왜
나한테생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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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한테 생떼야!
p44
6째줄
:
말도
안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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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