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아이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쩌면 8월 여름휴가 때,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먼저 만나볼 수도 있었던 책이었다. 거대한 책 탑 묶음 중에서도 한 가운데에 있었던 책이라서 귀찮았던 모양인지, 주인아저씨가 한 권만 사는 거라면 안 팔거요.”라는 말만 안 했다면 말이다. 어떤 내용을 지닌 책인지도 모른 채, 지인들의 입소문을 타고 도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읽어보고 싶다, 라는 마음을 가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던 중 나눔으로 이 책을 손에 쥐게 되었고, (thank, 연꽃언니) 읽던 책을 마저 끝내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도 내팽개치고 읽기 시작. 어느 날, 중간 즈음 책을 읽었을 무렵, 저녁을 먹고 책을 읽으려고 주섬주섬 챙기는데, J군이 책을 스윽 보더니, “벨라야.”라고 말해서, “? 뭐가?” ... 표지에 있는 여자아이의 얼굴, 필시 주근깨를 보고 나라고 지칭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여자아이, 미셸? 오드아이? . 난 그때까지 이 아이가 오드아이, 궁극의 아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는데, 표지를 보고 복선을 알아차리게 된다.

 

 

 

 

 

"궁극의 아이?"

"그 아이들은 미래를 기억하는 아이들이오."

 

7살 이후의 과거를 모두 기억하는 과잉 기억증후군을 가진 여자, 그리고 미래를 기억하는 남자. 닷새 동안의 사랑, 그리고 이별. 그로부터 10년 후, 엘리스 로자 앞에 FBI요원인 사이먼 켄이 나타나서 말한다. “신가야에게서 편지를 받았습니다.” 지금 이 남자가 장난하는 걸까? 그는 10년 전에 죽었는데?

 

 

 

 

 

본래 나는, 스케일이 큰 소설이나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옹기종기한 것들을 한데 모아 손으로 조몰락거리며 오밀조밀하게 만들어진 것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생각지도 못하게 톡- 건드렸을 때에도 반응하지 않는 그것의 견고함이 좋달까. 반면에 스케일이 커지면 커질수록 탄탄한 구성을 필요로 하는데, 대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고, 그것을 건드렸을 때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까닭이 첫 번째요, 내 두뇌가 스케일이 큰 그것들을 수용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그 두 번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참 재미있게 읽었다. 요 근래는 마음이 어수선한 탓인지, 책을 읽어도 활자만 읽기에 급급했던 것 같은데, 책을 읽음과 동시에 극장의 상영관 중 스크린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앉아 옴짝달싹 거리며 저자가 준비한 화려하고도 스펙타클한 이야기를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끝내는 여전히, 또 두말할 것 없이 사랑이다. 사랑, 어째서 그것은 모든 시작의 끝인가. 형체없는 그것은 생동하는 모든 이들에게 무조건적이며 절대적인 감정이니까. 그러니까 여전히, 사랑,인 것인가. 그래서, 이야기 그 화려한 마지막장에선, 내가 가진 온화함을 모두 내비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 추신, 악마개구리의 추종자들은 어떻게 된 걸까. 또 다른 악마개구리가 재탄생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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