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그리움을 켜다 - 사랑한 날과 사랑한 것에 대한 예의
최반 지음 / 꿈의지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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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인가, 여행과 에세이가 분류되었다. 여행과 더불어 감성이 들어가기 시작했던 것. [타인은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긴, 그 전부터 있긴 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작가만 해도 이병률, 최갑수가 대표적인 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있어 여행 에세이는 두 분류이다. 여행기,와 여행 에세이. 깔깔한 마음에 촉촉한 비를 내려 줄 수 있는 책을 찾은 것이 아니었다. 시험을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여행? 나도! 나도 떠나고 싶어!’라는 마음이 한껏 부풀어 있던 그 때에, 어떤 책이든 상관없었다. 그러고보면 사실 여행 에세이,보다 여행기,가 읽고 싶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오롯하게 책을 써내기 위한 목적으로 쓴 여행기는, 어쩐지 내 입맛에 맞질 않는다. 알지도 못하는 거리들을 읽으며 ‘여긴 어디야, 어떤 거리인데?’라며 물음을 쏟아낼 것이 뻔했기 때문. 그러다가 만난 책. 소중했던 누군가를 잊기 위해 총총한 발걸음을 떼었단다.

 

 

 

 

 

‘사랑한 날과 사랑한 것에 대한 예의’라는 부제에 이끌렸다. 참 많이도 사랑했던 그 사람을 잊기 위해,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지만] 사랑했던 날들을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간직하려 떠났던 여행. 내가 현재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불과 삼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랑 나부랭이! 다신 믿지 않아!’ 라고 했던 그것을 지금 그와 함께 하며 다시 신뢰하고 있고, 또 그것에 대해 써놓은 글들을 유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안면에 미소를 가득 채우는 그것, 사랑.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 그 사랑 나부랭이에도 언젠간 썩어 문드러지는 유통기한이 있어 아무리 막아도 코를 찌를 듯한 역겨운 냄새가 나고, 결국은 소멸되어 재가 되는 순간을 쓴 글들 또한 품에 안고 놓을 수가 없을 때가 있다. 나도 몇 번의 이별을 겪어봤고, 또 앞으로 [굳이 연애가 아니더라도] 몇 번의 이별을 얼마나 더 겪을지 모르니. 또, 가끔은 - 지금 사랑에 달랑 땅콩 하나에 맥주 3,000cc처럼 약간의 심심함이 들 때엔 이별에 대한 글들을 보면서 마른 안주거리들을 가득 채워놓기도 한다. 하지만, 치명적이게도 지금 내 마음이, 작가에 비해 너무 버젓하다. 괜히, 마음 아리게.

 

 

 

 

 

당신 삶에서는 아직 그 사람이 주연배우인데, 그 사람 삶에서 갑자기 당신이 조연이 되었다면, 조연이면 그나마 다행인데 자꾸 악역이 될 것 같다면, 서둘러 여행을 떠나야 한다. 행인1이나 행인3이 될 때까지는 당신만의 여행을 해야 한다. [여행을 떠나야 할 때Ⅱ]

 

 

그는, 잊기 위해 여행을 택했다. 산티아고를 걸었고, 그 길을 걸으며 불편함을 느낀 등산화를, 언젠가는 자신의 발이 등산화를 온전히 품을지도 모른다며, 딱 맞지는 않아도 끝까지 걸어갈 수 있을거라는 글에서 왠지 모를 짠-함이 느껴졌다. 아, 이런 사람이구나. 사람이든, 사물이든 자기에게 온 물건에게 애정을 담뿍 쏟아내어 버리고, 잊을 대상을 두고도 무조건 ‘fast’보다 부제와 같이 ‘사랑한 날과 사랑한 것에 대한 예의’와 같이 그 사람과, 시간에 예를 갖출줄 아는 ‘slow’를 택하는 꽤나 신사-,적인 사람.

 

 

 

 

 

뜨거웠던 커피처럼 사랑도 열정도 식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하여, 내 안에서 기척 없이 식어가고 있는 것은 없는지 자주 살펴보기를… 혹시 식더라도 첫 마음만은 항상 다시 기억해 내기를… [식어가는 것은 없는지]

 

 

남자가 건넨 열차 안에서의 750mm 위스키 한 병, 담배 한 개비가, 마음만은 누구보다 더 부유한 인도 친구 씨아람이, 손가락을 찧어 울고 있는 아이의 아픔을 온전히 느끼는 아버지의 촘촘한 눈물이, 몇 년간 써온 글이 있는 노트를 묻은 남자가, 좋은 장면을 기다려 찍어야 할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을 놓쳐버릴 것만 같아 엄청난 분량의 사진을 찍어대는 덕환씨가, 얼굴에 묻은 물감을 닦아주던 아이의 손가락 감촉이, 헛된 꿈이라도 꾸라던 형이, 객차 안에서 깁스를 한 부인의 손톱을 깎아주던 노인, 그들 부부가 서로를 깎으며 만들어온 둥근 세월이, 파코라를 내어주던 여자의 목걸이에 매달려 있는 그녀의 남편이, 그들의 속닥거리는 대화가, 또 그로 인해 부풀어 오르는 자신이 - 마음에 온전하게 내려 앉아 위로가 되고, 잠깐동안이나마 웃음을 줄 수 있는 휴식이 되며, 언젠가는 새살이 될 게다.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리하여 최 반, 그는 가슴에 피지 않은, 피지 못한, 피었을, 피었다가 져버린 - 꽃 하나를 심어두고, 이따금 생각날 때마다 들여다보겠지. 당신의 가슴 속에 심어둔 꽃은, 안녕한가요?

 

 

 

 

 

어떤 책도 더 이상 위로가 되지 못할 때, 어떤 풍경도 가슴을 문지르지 못할 때, 어떤 만남도 깔깔한 웃음을 주지 못할 때, 어떤 아침도 한 번에 허리를 들어올리지 못할 때, 어떤 고백도 발바닥을 공중으로 띄우지 못할 때, 어떤 원망도 그리움을 목 졸라 눕히지 못할 때, 그때 떠나면 좋다. 눈 딱 감고 배낭을 꾸리면 좋다. 서너 문장의 내일은 무시해도 좋다. [여행을 떠나야 할 때Ⅰ]

 


뻔한 얘기지만 달리는 기차 안에서 창 밖을 보면 가까이에 있는 풍경은 찰나처럼 빨리 지나가버리고 멀리 있는 풍경은 그보다 더 오랫동안 창 밖에 남아서 따라옵니다. 뻔한 얘기지만 그리움의 대상도 그럴 겁니다. 이제는 멀리 있어서, 이리도 오래 사라지지 않고 길게 따라오는 것일 겁니다. 더 멀리 있어서, 더 오래 남아 있는 것일 겁니다. [뻔한 얘기 Ⅱ]

 

 

다른 사람의 마음이 내 마음에 닿아서 내 것이 되던 순간, 그 마법같은 순간이 또 언제든 찾아오겠죠? [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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