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4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2년 유월, 생일선물로 받은 이 책을 시월에 읽게 되다니 - 「스텝 파더 스텝」을 읽은 뒤로,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에 대해 마음대로 흥미를 잃어버린 나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재미나다고 칭찬이 자자하다던 「화차」에도 선뜻 손이 내어지지 않더라, 하는 것. 그런데 이것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마음 먹은 것은, 팔랑거리는 내 귀에 살포시 스친 영화화되었다는 무성한 소문, 그 까닭이었다. 하지만 책이 손에 들어왔을 땐, 이미 영화도 훨씬 전에 막이 내린 상태여서 이왕 늦어진거, 좀 더 늦게 볼까? 하는 마음에 책장에 꽂아두었던 것. 그러다가 그동안 시험 공부를 한답시고 책을 좀 멀리 했더니, 읽히는 단어보다 놓치는 단어가 더 많더란 것. 다나베 세이코의 「딸기를 으깨며」와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 모두 중단하고, 「화차」에 손을 뻗어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역시 집중이 안 될 때는 추리 소설이 제격이지! 하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책을 읽던 중간, 그에게 SOS를 쳤다. “난 「화차」를 읽고 있어요. 이 책을 다 읽고 영화가 무-척이나 보고 싶을 것 같아요. 영화를 다운받아주세요오.”라고.

 

 

 

 

 

혼마 슈스케의 죽은 아내 지즈코가 예뻐하던 육촌 가즈야. 지즈코의 장례식때도 보이지 않았고, 전화로 조의를 표하지도 않은 채로, 삼 년 동안 연락 한 번 하지 않은 (정말이지 이기적이고 괘씸한 녀석) 가즈야가 폭설을 뚫고 난데없이 그를 찾아온다. 사정인 즉, 결혼 준비를 위해 신용카드 발급 심사를 거치던 중, 개인파산 이력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이후 갑자기 사라졌다는 그의 약혼자, 세키네 쇼코 . “(…) 부탁드립니다. 그녀를 찾아주십시오.” - 어차피 근무 중 강도가 소지하고 있던 총에 맞아 잠시 휴직 중인 혼마였기에, 순수한 호기심으로 그러마, 대답했고, 그녀의 자취를 역으로 밟아가던 중, 미조구치 변호사를 만나 뜻밖의 소리를 듣는다. “이 여자는 내가 아는 세키네 쇼코 씨가 아닙니다. 만난 적도 없어요.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이 여자는 세키네 쇼코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입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 얘기를 했어요.” :: 1990년 1월 25일에서 4월 20일 사이에 180도 방향 전환. 단기간에,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개인적으로 나는, 신용카드를 신뢰하지 못한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내가 신용카드를 처음 발급받은 것은 ‘후불 교통카드’라는 신세계였다. 바쁜 시간에 버스 카드를 충전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이따금 “잔액이 부족합니다.”라는 소리가 나와 얼굴이 붉어지는 것도 싫어 만들었던 첫 신용 카드. 내가 쓰는 카드의 한도는 5단위가 안 된다 하여, 10만원-으로 정해두고, 매번 그렇게 써왔는데, 신용카드의 혜택으로, 어차피 쓰는 돈, 신용카드로 긁고 혜택을 받자,하여 한도를 서서히 상향시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 내가 원래 이렇게 많은 돈을 썼던가? 싶을 정도로 많이 나왔던 카드값. 쓰는 만큼 줄어들지 않으니 날이 갈수록 더 많이 쓰는 것이 당연했다. 물론, 지금도 신용카드를 쓰며 혜택을 받고 있지만, 신용카드의 굴레[즉, 화차]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매주 월, 수, 금은 선결제를 시행하는 날로 땅땅땅, 혼자 정해놓고 몇 달 째 잘 지키고 있는 중이다. 적어도, 월급받아 카드값 막는 그런 생활을 하지 않기 위해. [하지만 이따금 찾아오는 ‘할부’라는 손짓은, 아직까지도 참아내기가 힘들 때가 있다.] :: 살아 있는 유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富의 강물에 떠내려가는 버려진 이들의 무리.

 

 

 

 

 

남들 같은 삶을 살고 싶다. 쫓겨다니는 불안에서 해방되고 싶다. 평범하고 행복한 결혼을 하고 싶다. 원하는 것은 단지 그것뿐이다. - 그녀의 정체가 밝혀진 이후, 그녀는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 속을 장악했다. 십자매 삐삐의 무덤을 듣고 친구 대신 왔다,는 말과 졸업사진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미야베 미유키는 그녀를 단지 행복해지고 싶은 여자,로 국한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또 다른 음모는, 등골을 싸-하게 했음이 분명했다. 행복해지고 싶다, 했지만 타인의 인생을 살 수밖에 없어썬 그녀는 정말 행복했을까? (정말로?) :: 혼마는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신조 교코는 고독했기 때문에, 외톨이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신분을 사칭하고 가로챌 수 있지 않았을까. 쫓기고 도망치는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고 구원의 손길을 뻗어주려는 남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곁에 있었다면 그녀는 ‘신조 교코’라는 자기 이름을 버리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협력자의 힘을 빌려 온전히 신조 교코인 채로 도망치는 길을 고민했을 것이다. 이름이란 타인에게 불리고 인정받음으로써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다. 신조 교코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그녀와 떨어질 수 없는 인간이 주위에 존재했다면, 그녀는 결코 펑크 난 타이어를 버리듯 간단하게 ‘신조 교코’라는 이름을 내동댕이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이름에는 사랑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