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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비프케 로렌츠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몇 해
전, 레드박스에서 출간한 니나 슈미트의 「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를 접했던 적이 있는데, 그토록 깔깔거리며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가 - 싶을
정도로 참 재미있게 읽었더랬다. [지금 역시도 문득 그 책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먼저 비집고 나온다. 크크크.] 그걸 읽은 후에 “아!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있지?”라며 한동안 비슷한 류의 소설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여전히 찾지 못했다. 그리고 반갑게도 레드박스에서 출간한 비프케 로렌츠의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
친구인
팀이 사장으로 있는, ‘드링크스&모어’라는 술집에 알바생으로 일하고 있는 찰리. 그런데 그곳에 동창회 초대장이 날아오고,
모리츠도 온다. 모리츠-. 그녀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 처음 잠자리를 가졌던 남자. 장소는 모리츠네 집 차고, 그것을 몇몇의 친구들이 보았고, 그 후로 모리츠의 태도가
변해버렸다는, 끔찍한 새드 엔딩,으로 끝난 그들의 관계. 암튼 그렇게 끝난
관계의 당사자, 모리츠가 찾아와 동창회를 가자고 제안한다. 그녀는 자신의 현재가 초라해 가지 않으려고 마음 먹었었지만, 모리츠의 권유에 가보지,
뭐.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내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해?” “내가 너라면 다른 사람의
인생하고 바꾸고 싶지 않을 거야. 너는 네가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어. 아무도 너한테 뭘 하라고 강요하지 않잖아.
너는 온전히 너 자신으로 살아갈 수가 있잖아. 이거야말로 가장 멋진 거지!” (Tim) 그 동창회를 간 것이 그녀의
실수라면, 실수였다. 동창회에서 그녀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혹은 지워버리고 싶은 일을 겪게 되었고, 그 이후로 삶의 무기력함, 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감정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차에, 헤드헌팅 회사로부터의 과거를 지워주겠다,는 은밀한 제안을 받게 된다. 그리고 -
지웠다. 그 중에서도 가장 최악이었던, 모리츠와의 차고에서의 첫 경험,을.
이제 그 과거는 내 것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살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 그 과거는 이제 지워졌으니, 그녀의 과거가 아니다. 그런데 -
“내 생각에 행복은 늘 오늘에 달린 거 같아. 어제나 내일이 아니라 오직 오늘이 가장
중요해.” (Tim)
과거를 지워주겠다는 말에 혹할 것 같긴 하지만, 나한테 과거를 지울 만한 일이 있을까 - 싶을
정도로 최악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친구와 싸웠던 일들 중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 만들어 버린 일도 있지만, “그땐
그랬었어.”라며 당시의 사건들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기도 하고, “그런데 왜 그런 것 때문에 싸웠나 몰라. 크크크.” 거리며 사이를 더 돈독하게
만들기도 했고, 전 남자친구들과의 만남 역시 마찬가지로, [나는 타인과의 만남에 쉽게 정을 주는 성격이 되지 못해서]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때 만남에 대한 후회도 없고, 이별에 있어서는 이별한다는 자체가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나쁘게 이별한 적도 별로 없으니 딱히 지우고 싶다, 라는 생각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좋지 않은 이별을 겪고 나서 당시에는 “이런 미친 자식. 다시는 너같은 남자를 만나지
않을거야.”라는 교훈을 보너스로 주었기에 뭐, 그런대로 괜찮다. 그러면서 남자 만나는 눈 역시 높아졌으니, 굳이 지울 만한 거리도 못 되고,
함께 만나는 동안에는 그래도 좋았을테니, 그거면 된거라고.
“너는 네 인생을 알아서 꾸릴
수 있는 충분한 나이야. 네 인생이라고. 너 말고 네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Mom)
그냥, 나는 그렇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도 내 삶의 일부라고 - 그것까지 모두 끌어 안고 살아 가려는데, 그게
쉽지만은 않다는 것. [사실 과거를 지울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이 생각도 점차 사그라들겠지만.] 여담으로, 올해 유 월의 마지막 주에
불현듯 오래 전의 우리가 참 예뻐보여서 많이 보고 싶어했는데, 그때 그에게 말했다. “우리, 별거 아닌 일에도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웃기도 하고, 그때는 참 좋았었는데. 그래도 그때의 우리가 있으니 지금의 우리가 있겠지.”라고. 뭐 - 삶 역시 그런 것 아니겠는가. 아무리 지우고 싶은 과거라 하더라도 그때의 내가 있으니, 지금의 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는, 그리고 기억은, ‘나’의 인생을 완성하게 하는 하나의 퍼즐같은 것. [ps. 책을 읽으며 소피 킨셀라의 「리멤버
미」가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더라,라는 것은 내가 책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한 것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