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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알 때까지 걸어가라 - 최갑수 여행에세이 1998~2012
최갑수 지음 / 상상출판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알면 알수록 좋은 작가, 알면 알수록 싫은 작가. 혹은, 전자도 아니고 후자도 아닌, 알면 알수록 알쏭달쏭한 작가. 내게 최갑수는 그렇다. 알쏭달쏭하게 만드는. 분명, 그의 감성적임은 눈이 따뜻한 체온을 지닌 손에 녹아버리듯,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살며시 달래듯 풀어주는 그런 것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마음이 오래도록 지녀지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을 읽었을 당시, 그가 써내려간 글 하나하나에 마음을 실었고, 또 꽤나 오래도록, 음미해가며 읽었던 기억을 되짚어본다. 그런데 지금 접하는 그의 글에서는 처음같은 그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내 독서 취향이 변해가는걸까, 아니면 그때와 지금, 내 마음 상태에 변화가 있는걸까. 어쨌든, 난 그게 불만이라면 불만이다. 그럼에도 또 찾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랑을 알 때까지 걸어가라」라고 말하면서 표지에는 아이러니하게 미지의 남자는 자전거로 쌩쌩 - 달리고 있는 사진을 넣어놨다. 풉. 이런 엉뚱한 남자같으니! 내가 이래서 그를 만나지 않을래야, 만나지 않을 수가 없다.
저자는 작품에서, 오롯하게 ‘여행’을 이야기한다. 마치 독불장군처럼 고집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행’에 대한 자신만의 마인드가 있었다. 그에게 ‘여행’은, 어떤 풍경과 어떤 사람 앞에, 가슴이 떨리고 닭살이 돋는 - 어쩌면 그것은 꾸며낼 수 없는 불가항력의 진실 그 이상의 것,이 아닐까. 나에게도 이렇게 고집스럽게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까닭에, 뭉클해지는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었지만, 반면에 그런 것이 있다면 내가 지금 이렇게 혼란스럽지도 않겠지! 하는 신경질적이지만, 질투가 한껏 섞인 목소리도 함께다. 새로운 풍경을 본다는 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의견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본문 내용 중) 저자가 써놓은 「당신을 위한 2월의 여행지」에 있었던 ‘오산, 물향기 수목원’.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이 머물고 있는 곳과 멀지 않은 동네라서 일요일 오후, 그에게 가자고 했더니 단번에 ok,하여 산책할 겸 다녀왔었다. 몇 십 그루의 나무들이 나와 그를 감싸듯 주위에 배치되어 있었고, 나무들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이 따스했다. 아, 자유로운 영혼! 당신도 걸었을 발자취를 따라 이곳에 왔어요. 조금 다른 건, 그곳에서 느낀 바람의 차이,정도.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일단 결정을 하고 저질러버려라. 신기하게도 그렇게 하고 나면 모든 것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다음 할 수 있는 건 성공을 기원하는 자신만의 주문을 외우는 일. (본문 내용 중) 사실 나는, 여행을 즐기지 못한다. 여행을 갈 때에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딱딱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것이 여행을 참 피곤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난데, 내가 그러하다. 여행을 갈 때에 필요한 목록을 30가지는 써두고, 그것을 넣었다 뺐다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고, 그렇게 여행을 가기도 전에 진을 다 빼버리는 것이다. 그런 내가, 이번에 제주도를 계획했다. 사실 그곳은 옆에서 아무리 가자고 부추겨도 그냥 다음에. 하며 미뤄버리거나, 언젠가. 라고 일관해버렸던 곳이었는데, 이번에 일을 쉬게 된 계기로 (또, 그전에 거진을 급계획했었는데, 물거품이 되었던 까닭에 더욱 더!) 단숨에 응, 가자. 라고 말해버렸다. 수학여행 이후로 근 칠 년 만에 타는 비행기. 불현듯,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는 느낌에 - 아, 이것때문에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구나, 싶었던. 여행은 내게 주어진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본문 내용 중) 앞에서 그의 글이 마음에 오래도록 지녀지지 않는다는 말을 했었는데, 그건 아마, 그가 느꼈던 감정을 내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까닭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녀보고 와서 다시 접하니, 그가 써내려간 글들이, 새롭게 가슴에 얹힌다. 한동안은, 여행했던 그때의 기분좋은 설레임이 나를 꼬옥 안아줄 것만 같다. Smile & 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