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버지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내게 ‘아빠’는, ‘엄마’와는 또 다른 전율을 일으키게 하기 충분한, 그런 사람. 아빠와 나는, 그렇다. 여느 다정한 부녀지간 부럽지 않은_ 그런데, 그게 우리 가족만 느끼는 것이 아닌, 타인의 눈을 통해서도 따뜻한 미소가 번지게 만드는가보다. 지금 나와 함께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 분은, 날 처음 만나고 정말 우연치 않게 우리 부모님을 뵈었을 때, 내가 아빠에게 하는 행동을 보고 그게 참 신기했다며, 자신에게는 그렇게도 안하면서,라는 질투 아닌 질투를 종종 하기도 한다. 여전히 그는, “정말 배RR네 아빠님은 배RR가 없으면 못 사실 것 같아. 배RR도 마찬가지고.” , “나도 배RR같은 딸이 있다면, 퇴근하자마자 곧장 집으로 갈텐데.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게 당연한 부녀지간임에도 남들 눈에 그렇게 보인다는 게 가끔은, 괜히 머쓱해지기도 하고,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런거. 여담이지만, 오죽하면 내 이상형이, 우리 아빠랑 같이 목욕탕을 갈 수 있는 남자,겠는가 말이다. 때마침 작품을, 나의 이직문제에서 보이는 아빠와 나의 뚜렷하게 상반된 견해 때문에 가뜩이나 토라지기 일쑤였던 나날이었을 때 손에 잡았었다. 내 아빠한테도 이렇게, 툴툴거리는데 남의 부자지간을 봐서 뭣한담. 했지만, 작품을 읽으며 깨닫는 바에, 내가 아빠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들자마자 바로 읽었더라는 것.

 

 

 

처음 학교를 들어갔을 때, 남들과 다르게 (서양 인형처럼 생긴) 도시에서 온 예쁜 여자아이에게 1점차로 2등을 하는 것으로 시작해 기분좋은 열등감을 느끼게 되면서, 다음 시험을 마음에 드는 여인과의 혼인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기다린다. 드디어 기말고사를 보는 날, 밤새 잠을 자지 않고 야릇한 사랑 같은 흥분된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 기다리지만, 그해부터 시험 방법이 바뀌어 마오 주석의 어록 다섯 구절을 외우면 2학년으로 바로 진급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그는, 단 1점차이로라도 도시에서 온 여자 아이를 넘어설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그것은 도시와 농촌 사이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빈부와 귀천의 차이를 일깨워주었으며 태생적인 도시와 농촌의 편차를 인식하게 해주었다. 그것은, 그가 영원히 농촌의 대지를 벗어나고 싶어했던 시발점이었고, 영원히 넘을 수 없었던 그 1점에 지나지 않는 인생의 편차였기에 그는 더 집착했을런지도 모른다.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해 둘째 누나와 그, 둘 중 한 명은 남아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아버지는 이야기하셨고, 둘재 누나는 그에게 고등학교 진학을 양보함으로써 자신을 희생한다. 하지만, 큰 누나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약간이나마 돈을 벌어 부족한 가계를 보충하기 위해, 고등학교 2학년 1학기를 끝으로 학업을 접고, 작은 아버지가 일하고 계신 신샹 시멘트 공장에서 사촌형 수청과 함게 일을 하면서도 그가 가진 욕망, 글쓰기는 놓지 못한다. 후에, 군대 간부의 도움으로 자신의 원고를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만 장거리 전화를 걸어온 형의 대답은_ “롄커야, 네가 입대한 뒤에 어머님이 매일 밥 하느라 불을 땔 때마다 네가 쓴 소설 원고를 불쏘시개로 써버렸어. 몇 쪽씩 찢어서 불에 태워버렸지.

 

 

‘아버지’는, 그, 저자에게 죄업으로 남아있다. ‘어쨌든 우리 아버지가 전쟁 기간에 병으로 쓰러지신 것은 내가 농촌을 벗어나 군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대목만 보아도 알 수 있는데, 실재로도 그가 군에 입대한 것은, 연말에는 농토에서 벗어나고 말겠다는 것. 오로지 그 하나였던 까닭이다. 뿐만 아니라, 16밀리 영사기를 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영화를 상영해주는 장사가 유행했는데, 영화를 한 편 상영하는데 드는 비용이 10위안이었다. 그의 수중에는 17위안이 있었지만, 그의 쩨쩨한 성격, 절약 정신, 그리고 당시의 가난한 형편이라는 것도 있었겠지만, 어려서부터 아버지에 대한 극진한 효성과 사랑을 몸에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아버지가 병상에 계실 때,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 한 우리 집은 좋은 세월을 보내기 어렵다.’는 사악한 생각이 똬리를 트는 것으로 아버지의 임종을 재촉한 것,이 원인이라 말한다.

 

 

 

작품이, 내 마음을 얼마나 움직일 수 있을까, 싶었던 것은, 그와 나의 나라가 다르다,는 까닭이 아니라 그저 중국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내게, 그의 시대상이 오롯하게 다가올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오다가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것은 아니냐,와 직결된다. 그래서, 소설인 줄 알았던 작품이 에세이임을 알아차렸을 때, 내심 걱정되는 것을 그대로 노출시켰던 것이다. 소설이 아닌 에세이를 접할 때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깊은 울림이 있는데, 그걸 느끼지 못할가 두려웠던 게지, 싶다. 그래서, 전에 접했던 「딩씨 마을의 꿈」을 너무 괜찮게 읽은 터라, 작가를 관찰해보자,에서 시작된 책 읽기였음을 고백한다. 작품은, 아버지에 대한 회상 중에서, 그리움보다는 죄스러운 마음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렇게 작품을 내어서라도, 아버지에 대한 죄업을 씻을 수 있었을까. 늘 그렇지만, 부모에 대한 마음은, 정성을 다해도 모자라다는 것. 아니, 정성을 다 하지 못하니까, 그러니까 모자라다는 거. 그래, 그렇지. 서평을 쓰는 오늘은 아빠에게 전화 한번 하지 않았는데, 아빠에게 지금 전화를 걸어야겠다. 지금은 집이 아닌 밖에 나와있어서 더 마음이 무겁지, 싶다. 오늘도 감사하다고,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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