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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 선생님 365 - 가르치지 않고 가르치는 세상의 모든 것
정철 지음 / 리더스북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귓가를 간질거리게 하는 바람에, 코 끝에 살포시 내려앉는 꽃 향기에,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볕에 고맙다, 한 적이 있었고, 바닥에 나뒹구는 낙엽들에 미안하다, 한 적이 있었다.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함과 미안함을 느끼는 것은 내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뿐임을. 그렇기에, 내가 어렵지 않게, 아니 실은 손가락이 팔랑거릴 정도로 가볍게 읽었던 정 철의 「학교 밖 선생님 365」을 읽기 전, 마음의 여유가 있는가, 하는 물음이 결코 우습지는 않다. 일년 전, 작가 장현웅·장희엽의 「사소한 발견」을 만난 적이 있는데, 많은 감흥을 받지 못했었다. 앞서 말했던 여유의 결핍이 상당히 부족한 상태였다. 게다가 난,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것은 아마 말장난,을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로 인해 사람에게 공감을 얻어내겠다,는 그런 것. 따라서 여전히 난 이런 류의 책은 좋아하지 않아 즐겨 읽지는 않지만, 이따금 한번씩 들춰보면서 마음에 닿는 글에 나의 공감을 얹고, 내 생활과 연관시켜보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읽는 방법이다.
당신이라는 제품은 당신이 디자인한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자가 속한 틀을 부러워하며, 타자처럼, - 과 같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것에 대해 나는, 동경할 누군가가 필요하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변명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게는, 세상의 잣대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없다. 그래서, 가끔 그 동경의 대상들은 세상의 잣대에 상처투성이인 나를 그들의 앞에 다시금 굴복시킨다. 그저 꿈으로만 간직할 수 있도록. 하지만, 당신은 단편소설이 아니라 장편소설이다. 지금까지 이십사 년이라는 세월이 나를 훑고 지나갔고, 그 시절들에 태동했던 나에 대해 이야기를 쓴다면, 나는 어떤 책 구석에 쌩뚱맞게 끼어든 한 페이지가 아닐런지. 아직까지 특별할 것 없는, 또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도 성공하지 못한 ‘이십 대 직장인’이라는 명목 아래 쓸 이야기는 하나도 없는 셈이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 24%의 아주 미비한 진행률로 느리고 더디지만, 100%에 도달할 것이라는 희망을 찾아나선다. 어쩌면, 세계의 역사를 쓰겠다,던 것이 알고보니 클라우디아라는 한 노파의 자서전이었던 한 권의 책처럼. (문타이거) (그녀에게 있어 자신이라는 존재는 세계의 역사를 논할 만큼이었을 게다.)
늘 하루가 부족한 게 인생이다. 늘 시간에 쫓겨 아쉬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게 인생이다. 늘 다음엔 제대로 해야지 다짐하는 게 인생이다. 충분한 시간은 어디에도 없으니 조금 아쉬운 결과에도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하루라는 시간이 짧다고 느껴질 때가 많아졌다. (요즘 들어선 거의 매일.) 그것은 언제나 하루에 주어지는 24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지금보단 덜하지만) 전에도 이런 때가 있어서 하루 일정의 ‘to do’를 쓴다는 게 몇 년째 계속 써오고 있는데, 전에는 계획했던 것들에 밑줄을 긋거나 동그라미를 치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한 일을 쓰는 편에 속한다. (시간이 많던, 또 내 일만 해도 되었던 학생때와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의 to do를 똑같은 방식으로 했을 때 표시되지 않은 부분이 하지 않은 쪽인데, 그걸 보며 내 시간이 너무 없다라는 생각때문에 의기소침해지더라, 그 말이다.) 물론, 하루의 plan을 짜놓는 노트 역시 있다. (그것은 쓰다남은 이면지로 대체한다.) 그렇게 나에겐 두개의 to do가 있다. 그것에 따라 시간을 제대로 활용해야지, 하는 순간, 시간이 나를 삼킨다. (이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은 벌써 네시 사십칠분이다.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한 게 없는 꼴이 된 것이다.) 하지만 바빴던 오늘이라는 하루 속에서도 계획했던 것 몇 개는 이루지 않았는가, 스스로를 위로하며 오늘 자기 전, to do를 쓰며 기분 좋게 웃고 있을 내가 상상되는 것, - 그것은 오늘 하루도 역시 잘 보냈다는 나에게 보내는 여유가 아닐까.
삼백육십오 개 중 내가 공감한 것은 여덟 개. 하지만 나는 저자의 선생을 만난 것 뿐이지, 내 선생들을 만난 건 아니었다. 내 선생들은 그보다는 약간 다르게 찾아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실은, 무척이나 부러웠다. 저자의 따뜻한 눈길들 끝에 아롱진 여유들이. 한 권의 책에 담긴 ‘삶’을 어우르며 그곳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어떤 것보다도 더 찬연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내 선생들을 찾으러 나설 참이다. 그러기 전에, 마음 좀 추스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