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보스 문도스 - 양쪽의 세계
권리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이 책이 서점과 도서관 직원들을 혼란스럽게 했으면 좋겠다. 여행기에 놓아야 할지, 철할에 놓아야 할지, 예술 일반에 놓아야 할지, 아니면 문학과 취미 사이 애매한 선반에 애매하게 놓아두어야 할지.’ 이것이 오롯한 여행기가 될 수 있을까, 라는 갈등을 한 것도 잠시 아니, 라는 대답과 함께 에세이로 밀어넣는다. 비단 여행한 흔적을 증명할 사진이 없다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여행기에 분류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만으로 여행기네, 아니네를 따지자면, 일전에 읽었던 작가 박준의 「책여행책」도 사진 한 점 없다는 이유로 여행기가 아니라는 것과 같은데, 우리는 그것을 한치의 의심도, 어떠한 일언반구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여행기라 일컫고 있다. 하지만 작가 권리의 「암보스 문도스」 - 이것을 여행기라 치부해 버린다면, 이 책은 결코 (지극히 주관적인 내 판단 아래) 좋은 책이 될 수 없을 게다. (적어도 나에겐) - 이렇듯 내가 이 책을 여행기에 넣지 않는 까닭은, ‘여행기’라는 한정된 장르에 얽매여 있기에는 작가만의 냉소적이지만, 결코 냉소적이지 않은 내면들이 박탈당하는 것만 같달까. 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이 여행이라는 직접 발로 걷고, 눈으로 보고, 느끼는 곳에서 응어리진다. 그래서 일거다. 이 책의 장르를 명료하게 구분짓지 못하는 것이.

 

 

 

나는 문학이라는 여정이 마치 평생의 배우자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이런저런 남편들 사이를 기웃거리고 다녔다. (…) 카프카는 우울할 때만 연락해 함께 침대에서 뒹굴며 술을 마시고픈 남편이었다. (…) 도스토옙스키가 술과 도박과 여자라는 3대 악에 찌든 방탕한 남편이라면, 카뮈는 남편이 없는 사이 바람을 피우고 싶은 상대였다. 전자가 나랑 한바탕 싸우고 집을 나가버릴 것 같은 남편이라면, 후자는 내게 외투를 입고 정오에 산책을 나가자며 차를 대기시키고 있을 것 같은 남편이었다.

 

그녀에게 몽상가적 기질이 있다는 것은 책의 앞부분을 읽으며 약간의 의구심을 품는 것이 전부였지만, 러시아를 경유해 유럽으로 가면서, 그녀에게 ‘글을 쓰게 한 요인’을 이야기하기 위해 넌지시 ‘남편론’을 꺼내어 놓은 것을 들음으로써 명료해졌다. 그녀의 남편들을 소개받으며, 나와 그녀 간에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아쉬웠음은 물론, 나도 그 남편들을 가져본 후 그것을 느껴보다, 생각하지만, 아직까지 그들 모두는 나에게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들,일 뿐이다. 그렇게 또 언젠가,..라며 미뤄두는 내가 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아니, 정확히는 수전 손택의 글을) 약간 모방하여 말한다면 나도 그 못지않은 남편들이 있다. 비오는 수요일이면 장미꽃을 건네줄 것만 같은 기욤 뮈소가 있는가 하면, 평생 잊고 살 것처럼 돌아서놓고 삶이 권태롭다거나 지독한 슬럼프에 빠져있을 때에 찾으면 씨익 미소짓지만 등 뒤에 칼을 가지고 있을 것만 같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있고, 지독한 열애가 끝난 뒤엔 달려가 품에 안기고픈 츠지 히토나리가 있으며, 자기 전에 머리맡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목울대에서 울리는 감미로운 음성으로 시를 읊어주는 윤동주가 있지 않은가. 그뿐인가, 밤새 육체의 고통으로 끙끙 앓는 나를 밤새 간호해줄 조두진도 있다, 그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펜대를 쥘 힘을 주지는 못했다. 그저 품 속에서 알량한 감정들을 속삭였을 뿐. 헌데, 그녀는 그들이었다고 이야길 한다. 그녀가 자발적으로 글을 쓰게 만든 것이. 하지만 비단 그뿐이었을까. 그들이 그녀의 글쓰기의 전부였을까 말이다. 시간이 지나자 글쓰기는 헤어진 연인처럼 여러 의미로 퇴색되어갔다. 처음에 그것은 종교였으나, 이내 오락이나 시간때우기로 생각되다가, 어느 순간에는 고통의 도구였다가, 허기진 마음을 채우는 두레박이 되기도 하였다. 이제 나는 미치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글은 영혼에서 멀어지려는 나를 붙들어 매어준다. 실은 나, 그녀의 글을 쉬이 이해할 수 없었을 적도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오롯한 그녀의 글쓰기인 까닭은 아닐까. 그러니까, 자신의, 자신에 의한, 자신을 위한 글쓰기라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그런 글쓰기가 있듯이. 혹은, 낙서와 같은 사소한 한 줄의 문장이 마음에 새겨져 지우개로는 지워질 수 없는 것과 같이.

 

 

 

나는 책임질 수 없는 자식을 뿌리는 수컷처럼 수많은 사진을 찍어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그 흔한 사진 한장 없다. 왜? - 무차별적으로 찍는 동안 사진이 기억을 대신한다. 뇌는 기능을 멈추고 오로지 장전된 총만 바쁘게 돌아간다. 왜 우린 찍는가? 왜 찍지 않으면 죄의식이 드는가? ‘기억하지 못할까 봐’라는 말에는 너무나 많은 핑계가 숨어 있지 않은가? 우리는 사실 충분히 기억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하기를 회피해버린다. 기억의 단초를 만들기 위해 사진으로 남겨둔다지만, 몇몇을 제외하면 대개는 기억을 위한 기억이 되어버린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찍는다. 내재된 폭력성과 소유욕이 빚어낸 불안한 습관. 기억을 위한 기억,이라고. 참 씁쓸하기 그지없는 말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옳은 문장들의 행진에 절로 고개가 주억거려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도 흔히 어느 곳에 놀러간다,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 카메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뿐만 아니라, 찰나의 그 순간을 찍기 위해 우리는 카메라 렌즈를 피사체에 얼마나 오래도록 두고 있었던가.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본 그 풍경이, 그 세상이 내 눈으로 본 것보다 더 값지고 아름다울 수 있는가 말이다. 저자 역시도 이 도시에서는 절대 사진을 찍지 말자, 손가락과 눈과 마음에 자유를 줘보자,라고 결심했지만 그녀 역시 그 욕망을 쉬이 이겨낼 방도가 없더란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카메라를 건드린 것이 아니라 신기하게도 카메라가 저절로 손에 딱 붙어버려 저절로 전원을 켜고 앵글과 구도를 맞추더니 셔터를 누르고 도로 가방 속에 들어가 꼼짝 않았다고. 그렇게 저자는 기억을 위한 기억 몇 장을 또 만들어 냈을 게다.

 

 

 

 

즐거웠다. 여행에 대한 그녀만의 철학을 내세워 정의해놓은 이 책을 읽는 것이. 또, 그 안에 녹아든 여행의 행보를 함께 하는 것이. 그러고보면, 나는 대체적으로 솔직한 글을 좋아하는가 보다. 일전에 작가 윤미나의 「굴라쉬 브런치」를 읽었을 때도 솔직한 여행에세이에 깔깔거리며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이 책에서도 저자의 표현때문에 웃을 일이 좀 있었는데, 기억나는 것만 적어두자면 카지노에서 알바를 하던 중, 이가 하나도 없는 터키 출신 노인이 기계에 떨어진 동전을 집는 것을 보며 동전을 가로채가더니 볼에 뽀뽀를 했다는 것에서 ‘볼이 썩는 것 같았다.’는 표현에 마시던 커피를 도로 뱉을 뻔 한 적이 있는가 하면, 리컨펌을 하지 않고 바로 SBY 티켓(스탠바이티켓)을 발급받았지만, 한시간 전에 탑승 완료가 되어 비행기를 놓치게 되어 막막하던 통에 “호텔 숙박권과 600유로를 드릴게요” 라는 직원을 보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나는 천사를 본 적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라고 써놓은 문장을 읽고 병원에서 진료 순서를 기다리며 큭큭거리며 웃기도 했었다. 그러나 몇 개월 만에 둑처럼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모기를 잡고 난 뒤 손바닥에 묻은 피를 보고서도 갑자기 엉엉 울고 싶어질 만큼 심신이 지쳐 있었다고. 그래서 마음이 아니라 몸을 괴롭혀보라는 친구의 조언에 내적으로는 종교 생활을, 외적으로는 운동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 운동이라는 것이 브라질에 끌려간 흐인 노예들이 지주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만든 무술인 ‘카포에이라’ - 그것으로 활력을 되찾은 저자는 자신만의 암보스 문도스 왕국에서 벼룩이 득실거리는 개보다 행복하다는 그녀가 진정 행복해보인다. 헌데, 프롤로그에서 보았을 때, 귀향이 본질적인 목표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녀는 그곳은 찾았을까. 그곳이 그녀만의 암보스 문도스에서 멈춰버린 것은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여행이 끝나지 않았음을 바란다. 어디서든지, 그녀의 귀향이 순조롭기를.

 

 

 

 

p118 , 2번째 줄 : 여기서 다분히 아옌데의 약녀 기질이 드러난다 → 약녀의 뜻이 ‘어린 딸’이라고 나와 있는데, 글쎄, 맞을까. 그냥 의문이 들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