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 윤대녕 산문집
윤대녕 지음 / 푸르메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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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사무실 책꽂이 한 켠에 꽂아두고 읽지 못했던 이유는 남이 그가 태동하였던 삶을 마음이 어지러운 요즘에 읽어도 될까, 하는 그런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책을 손에 쥐었을 때 표지의 매끄러움은 손에서 떼고 싶지 않을 정도인지라 계속 붙잡고 한참을 만지작거리다가 그렇게 그 책의 첫 장을 넘겼다. 무심코 넘긴 첫 장인데 뜻밖의 선물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렇게 시야에 들어왔다. ‘2010년 가을, 윤대녕’ 생각지도 못했던 소소하고 담백한 그의 필체다. 그리고 두어 장을 더 넘기니 새삼스럽게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에 대해서. 라며 알지도 못하는 그를 무뚝뚝하다,라고 혼자 치부해버리고 그것을 읽었다. 전체적인 느낌은 '가을'이었다. 쓸쓸하고 적막하고 고요하여 사색에 잠기기에 충분한 계절, 가을. 나는 이 책을 단풍이 곱게 물든 시월의 어느 가을에 품에 안고 읽었다는 그것에 감사하고, 또 다행이라 읊조린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작품으로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이 처음인 것도 무척이나 다행스레 생각하는데, 내가 찾아본 저자의 작품들은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신경숙 작가의 책과 견주어도 무리가 없을 만큼이나 멋스럽지 못한 표지들이 처음부터 나를 그의 문학세계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경계를 긋도록 했을지도 모르고, 샀다손 치더라도 오랜 시간동안 나의 책장 속에서 나오지 못했던 「딸기밭」과 같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라 생각되는 것이 그 까닭이다.

 

 

 

실은 난 책을 읽기 전 표지에 담겨 있던 저자에게 아무런 느낌없이 표지만 매끈하다며 좋아했더랬다. 어찌나 단순하신지. 책을 다 덮고 그 속에 담겨 있는 그를 조용히 불러보았다. 작가님... 순간, 웃음이라기에 억지 웃음을 띠고 있는 듯한 그의 얼굴에서 비감스러움이 감돌았는데, 그 점에서 발끈하는 분들도 더러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그리 생각한 것은, 아버지와 나눈 기억이랄 것도 없는 삶 속에서 아버지와 둘만이 함께 했던 것은 초등학교 때 목욕탕에 간 기억, 그 하나뿐이라서 성인이 된 지금에도 목욕탕에서 싸구려 비누나 스킨, 남들이 쓰던 수건에서 부성애의 결핍을 보충하려 했는지도 몰랐을 그가 가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욕탕에만 가면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다는 대목에서 시린 가슴을 부여잡아야만 했던 것도 그 까닭이다. 그는 더 나이들고 늙기 전에 아버지와 목욕탕에 가는 것이 오랜 소원이자 바람이라 하였는데, 오랜 부성애 결핍이 가져다준 유년시절의 크고 작은 생채기들이 그로 인해 서서히 아물기를, 그래주기를.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그에게 문학이란, 아니 모든 작가들에게 있어서 문학이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전부터 궁금했다고 하면 거짓말일테고, 부제목을 보고 아차, 싶었다. 처음에 그가 고백하기를 더이상 갈 데가 없고 받아주는 데가 없어 소설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라고 하기에 겸손함의 극치,라고 생각했었더랬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그것은 세상에 속하고 싶은 애처로운 발버둥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보기도 한다. 스물여덟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어렵사리 등단하고 그제서야 세상 속에 속해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하였을 때, 당선 통보를 받고 작가가 된 자신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러보았다고 하였을 때, 그의 기대와 설레임이 잔뜩 묻어져 나오는 열정이 한없이 부러웠다. 하지만 문학이라는 것은 곧 그에게 삶을 구속하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고, 그것에 대한 질퍽함은 곧 노동이 하고 싶어졌다 했다.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게다. 하지만 그 질긴 운명이라는 것은 그리 쉽게 그를 놓아주지 않을뿐더러 그가 문학을 하도록 그를 더욱 거세게 붙잡고, 결국 그가 문학에 항복하는데 일조한다. 문학으로 뜨거운 국과 밥을 먹고 있다는 사실에 어느 날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그래, 그것뿐이었다. 지금껏 아비에게도 단 한 번  굽히지 않았던 내가 기어이 문학에 항복하고 말았다. 이제 남자 나이 마흔이 됐으니 이 일을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돼버렸다. (······) 세상과 매끈하게 어울리는 재주는 없으나 땀을 흘리고 뛰어와야 안으로 들여보내 준다는 건 안다. 그러나 입장권을 얻기 위해 고개를 숙이지는 않는다. 그것이 내가 문학을 하는 진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p161)

 

 

 

판도라의 상자를 열 듯 두근거리며 읽어내린 윤대녕이라는 사람의 산문집은, 그가 태동했던 유년시절부터 시작하여 일상, 여행, 문학, 독서일기로 끝을 맺기까지 어느 것 하나 꾸밈없이 담백함은 마음을 동하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래서 곡진한 그의 글들이 머리가 아닌 마음에 켜켜이 쌓일 때, 그 때를 나는 「이 모든 극적의 순간들」의 한 장면으로 각인시키고 싶은 욕심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표현한 책이 짙은 감동을 전해줄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 느낀 작품이기에 더욱 품에 안을 수 있는 것일런지도.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아직 접하지 않은 혹자가 어떠하냐 묻는다면 그를 여실히 표현하고 있는 산문집이 내게 당도하였을 때 그것은 이미 산문집이라는 의미를 상실한 채 윤대녕, 그대로 다가왔음은 한치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도중에 나는 그가 좋아질 것만 같다,라고 이야기했었고, 그것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짧은 가을에 그를 만난 건 대단한 행운이라 생각하며, 아쉬운 마음 가득 안고 책을 덮지만 나는 이 책을 계기로 그의 작품에 갈증이 나려는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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