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 바쁜 일상에 치여 놓치고 있었던, 그러나 참으로 소중한 것들 46
정희재 지음 / 걷는나무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을 당시 컨디션이 지독히도 좋지 않았다,라고 밖에 이야기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어쩌면 정희재 작가가 이야기해주는 힘들지만 아름다운 도시에서의 삶이 활자 그대로 마냥 아름답게만 그려지질 않았고, 삐딱한 자세에서 눈을 치켜뜨며 보는 세상이니, 내가 보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알만하지 않은가. 요즘의 내 생활은 미처 풀지 못한 스트레스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듯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데, 그때에 책을 잡고 오롯이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을 나 자신이 잘 알고 있다. 또한 그럴 때에는 감성이 듬뿍 담긴 책보다는 소설을 읽어야한다는 것이 나의 철칙이건만, 구지 이 책을 선택했던 이유는 더 이상 미루면 안되겠다,는 이유 모를 압박감이었다. 실은 그 전에 이 책을 읽기 위해 손에 쥐었을 때, 그 때 정독했어야 한다는 말만을 뇌까린다. 하지만 점점 늘어나는 책의 압박에 못이겨서 혹은, 흥미로운 책의 유혹에 이끌려 10월이 되면 제일 먼저 읽어주리라! 하며 다짐했던 이 책은 챕터2를 채 끝내지 못하고 덮어버렸었음이, 이 책에 머물러있던 시간이 고작 그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 애달파서 더 이상은 미룰 수가 없음에 손에 꼬옥 쥔다. 장희재, 그를 만나는 시간이 즐거웠으면 좋겠다,라며 책을 펼쳐든다.

 

 

 

 

작가가 말해주는 세상은, 또 표현들은 무척이나 섬세하여 읽는 내내 호흡을 쉬이 하지 않고 길게 늘어뜨리며 그리 읽었는데, 간혹 그의 글에 호흡이 멈출 때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작가도 나와 같은 세상을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머물러 있었는데, 그것이 내게 위안이 될줄은 미처 몰랐었다. 또한 글을 읽으며 이것은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하며 감탄을 자아내며, 그렇게.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꾸만 목구멍에 생선 가시가 걸려있는 듯한 기분을 받았는데, 분명 그의 은유법은 결코 남루하지 않으나 그것이 문장을 어지럽게 만들었고, 감성을 극대화로 끌어내려는 듯한 시도가 눈에 확연하게 띄어 조금은 인위적임이 스며들어 있는 것과 같은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음이 그 까닭이었다. 메마른 현대인의 감성을 자극하기엔 조금 부담스러움이 들 수도 있었겠다,라며 조심스레 얘기해보지만, 독자라는 탈을 쓴 내 모습을 합리화시키며 작가의 어법에 왈가왈부하기엔 건방지지 않는가, 생각해본다.

 

 

 

글의 중간에 「전화하기 , 도시에서 손전화없이 살아보기」라는 장이 있는데, 그것을 읽으며 전화기만 쳐다보게 되는 사람들의 행동도 싫고, 그것때문에 사람을 조급하고 외롭게 만드는 것 같다,는 최강희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 우리 실생활은 전화기라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나,싶다. 나도 마음이 복잡하여 그 무엇도 위로가 될 수 없는 상황이 스무 살 때 찾아왔었는데, 그 땐 걱정해주는 지인들도, 심지어 가족조차도 외면해버리는 그런 상황이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중증도 그런 중증이 어디 있나 싶다. 그래서 무턱대고 전화기를 정지했었는데, 한달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살렸었더랬다. 그동안 전화기는 별 필요없다는 내 말이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깟 전화기 하나로 인해 세상과 단절되는 것이라는 게, 혼자 남겨졌다는 그것이 쓸쓸함과 적막함을 넘어 외로움으로 다가와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었는데... 결국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고 싶어 전화기를 정지했던 내가 사람들이 풍기는 체취에 자연스레 섞인 그 속에서 어울리고 싶어서 다시 살린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전화기가 내 외로움을 달래주느냐, 그것도 아니란 말이다. 차라리 그것 하나에 외로움을 느끼는 단순한 것이 나라는 인간이라면 얼마나 좋겠느냔 말이지. 그런 나를 약삭빠른 그가 눈치챘는지 조심스레 귀띔을 해준다. 손전화가 있어도 외롭고, 없어도 외롭다면 문제는 손전화가 아니라고.

 

 

 

실체를 바로 바라본다는 것은 문제의 원인이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불쾌해하는 내 마음에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p143) 이 글귀를 읽으며 순간 움찔했던 까닭은 그 어떤 문장보다도 맹렬하게 심장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항상 불평·불만투성이의 사람이고, 늘 부정적인 사람인지라 누가 좋게 호의를 베풀었다해도 그 호의가 내게 좋게 다가오지 않았다면 그것은 이미 호의가 아니라고 받아들이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나의 옆에 있는 그 사람도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긍정적마인드라고 말할 만큼 나를 가열차게 비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 또한 좋게 받아들여야지,하면서도 어느 순간 삐딱하게 바라보고 있는 나를 나도 제어할 수 없으니, 미칠 노릇인데 그 때 마침 이 글귀가 내 눈동자를 고정시킨 것이다. 앞으로도 수도 없이 찾아올 불쾌함과 그것을 표출해내기 직전의 그 순간, 나의 마음을 소리없이 두드릴 친구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같은 하늘 아래 동시대에 부대끼고 허덕이며 사는 우리가 서로를 껴안고 살 수 있다면, 그래서 외로움이 조금이나마 덜어진다면 우리는 마땅히 서로를 껴안아야 할 것이라고, 비단 혼자가 아니라고, 그리 일러주고 있다. 또한 수려한 외관을, 밤에는 반짝이는 네온사인의 화려함을 한껏 뽐내는 도시라는 녀석도 외로움을 가득 안고 있구나, 라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외로운 도시에서 외로운 사람들이 만나 살아가는 세상, 참 맛깔나지 않은가. 도시,라고 하니 이 책을 읽으며 신경숙 작가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에서 윤이 새로 이사한 그 도시에 적응하기 위해 걸어다녔다는 것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난 이 곳에서 23년동안을 살아왔고 수도 없이 걷고 또 걷고 있지만, 아직도 난 이곳에 적응해 나가기가 발에 바위덩어리를 얹은 것처럼 힙겹기만 하고, 앞으로 얼마나 힘겨울 날들이 저멀리서 기다리고 있는지 예상 밖에 있어 두렵기만 하여 어떤 것에 기대야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현재 내가 느끼고 있는 복합적인 감정 중 하나의 회로임을 고백한다. 그런 나에게 작가는 서문을 벗삼아 건네고 있다. 나와 당신, 그리고 자신에게. 당신, 참 애썼다. 사느라, 살아 내느라,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 부디 당신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직 오지 않았기를 두 손 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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