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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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글을 쓴다는 것에는 상당한 위험이 따르는 작가의 머리카락마저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 그 어떤 것이 어떠한 형체를 띠고 있는지 나조차 알지 못하지만 - 그것은 모티브로 정한 사건이라는 벗어나서는 안되는 틀 사이에서 문장들을 짜맞추어 새로운 옷들을 덧입히는 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집단 자살극이냐, 타살극이냐'라는 처음부터 풀리지 않은 의문의 사건인 '오대양 사건'을 '또 다른 사건'으로 위장하여 그것을 글로써 풀어헤치려고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갸우뚱거리는 머리를 한 곳에 고정시켜 놓을 수가 없었다. 분명한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경찰에게서 내려진 결론은 '오대양 사장 박순자 씨에게 맹종해온 사람들의 종교적 광신상태가 빚어낸 동반자살극이다' 라는 것 뿐인 딱 한줄로 설명할 수 있는 - 더 이상은 설명할 수조차 없는 - 사건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경찰도 밝히지 못한 사실을 그 자리에 직접 있지도 않았고, 경험한 것도 아닌 그저 소설가에 불과한 작가가 과연 그 내막을 파헤칠 수 있을까 기대반, 의심반으로 읽어내려갔다.

 

 

 

'이 냄새다.' 라고 시작되는 이 책은 1인칭 화자인 '나'가 자신의 고향에서 나는 썩은 오수와 짐승들이 부패해 나는 악취를 꼬집으며 고향을 상기하고 있다. '나'로 지칭되는 화자는 많은 사람들이 기숙사에 모여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그들이 공장의 사장을 '어머니'로 부르고 있었다는 것, 특이하게도 그들 사이에 '아버지'라고 불리는 남자들이 없다는 것 (p47) 과 같은 곳에서 어머니의 뱃 속에서 떠밀려나오던 그 날부터 그 때에 제 1세대 신신양회가 타락하기 전까지를 회상하듯 독자에게 설명해주고 있다. 그 당시 신신양회는 이익을 보기 위한 산업폐기물이 첨가된 일명 '쓰레기 시멘트'(1999년부터 산업폐기물이 시멘트의 부원료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 유연탄 비용만 아껴도 순이익이 부쩍 늘어날 거라는 게 어머니의 계산이었다. 연료비도 절감하면서 폐타이어처리 비용까지 따로 챙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p44))와 공장 확장(그 즈음 어머니는 만 삼천 통급의 사일로를 지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p45))을 꾀한다. 하지만 진실은 언젠간 수면 위로 떠오른다 했던가. 시멘트에 들어가는 각종 폐기물의 주요 성분들이 전립선암이나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이 된다는 보고였다. 공장 인근의 토양과 농작물에서도 중금속이 검출되었다. 공장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국도변에 날아가 쌓인 분진에 자석을 대자 철가루가 달라붙었다고 했다. (…) 며칠 뒤 신신양회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제목은 '당신의 집은 안전합니까'였다. 산업폐기물로 만든 '쓰레기 시멘트'로 지은 집 위험성과 피해 사례들이 실렸다.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는 아이의 사진이 기사에 힘을 실었다. (p44-45) '쓰레기 시멘트 파동'은 공장 확장을 하기에 차질이 있음을 경고했고, 결국은 그들의 보금자리이자 그들을 지켜주는 성이었던 신신양회는 한순간에 추락하고 만다. 그 후 다락방에서 24구(여자 21명, 남자 3명)의 시신이 '집단 자살'이라는 그럴듯한 명목 하에 발견되지만, 그것을 보충해줄 어떠한 단서도 없다. 그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나'와 또 다른 신신양회 아이들은 제 2세대 신신양회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신신양회를 찾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 제 뿌립니다. 그곳은." (p172) 처음 그들에게 신신양회가 어떤 이유에서 다시 건립되었건간에 결국은 '그림자'라고 불렸던 기태영이 선악으로 그 대상이 바뀌면 '그림자'는 우리 속의 어두운 욕망, 악을 상징한다. (p254) 라는 말을 대변하듯 1세대의 그들 엄마들이 그러했듯 욕망에 눈이 멀어 '쓰레기 시멘트'와 '공장 확장'을 다시 한번 시도하고, 그들 엄마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결국 신신양회는 더 이상의 명예를 되찾기는커녕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손 쓸 수도 없이 무너지고 만다.

 

 

 

이 책에서 신신양회는 오대양 사건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책은 이미 오대양 사건을 모티브로 지어진 책이라고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그것을 전제로 책을 읽어나갈 수밖에 없고 이미 벌어진 이야기에 대해 질퍽한 진흙 속에 빠져 구해내지 못한 결말을 책을 통해 추구하고자 한다. -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랬다 - 그렇기에 뒤로 넘어갈수록 결말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몇 개의 반전들이 있었지만, 그것들 따위에 감탄할 겨를이 없었다. 책을 다 읽고나서 누가 왜 신신양회를 무너뜨리려고 했는지 그 이유는 지금까지도 숙제로 남아있다. (p273) 로 끝내려고 하는 이 책에 허탈한 웃음이 나왔고, 반항심이 솟아났고, 배신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서 만약 작가가 임의대로 결말을 지었더라면, 나는 아마 작가에게 그만큼 비난을 쏟아냈을지도 모른다. 증인을 곁에 두고도 그저 추측만이 난무한 결론따위를 내세우는 경찰이 있는데, 어떻게 작가인 당신이 그런 결말을 내세울 수 있냐고 되물으며. 이게 무엇인가를 모티브로 했을 때 나타나는 독자에게 결코 허용될 수도 없고 허용되서도 안되는 한계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작가는 애초에 그에 대한 글을 쓸 때에 사건과 그를 알고 있고, 책을 읽을 독자 사이에서,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서 소용돌이치는 문장들 속에서 허우덕댈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하성란 작가의 A는 꽤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고 있다고 섣부른 판단을 내려본다.

 

 

 

그러나 이 책은 집중하기가 굉장히 힘들었고 난해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읽어나가야할지를 몰랐다. 유명했지만 알고 있는 상태에서의 검색이 아니라면 들을 기회도 많지 않았던 그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고, 자주 바뀌는 시선에서 어떠한 부연설명조차 허용하지 않는 작가의 불친절함 또한 내 시선을 잡아두지 못했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책을 읽어 내려갔고, 책상 위에 앉아 감흥도 없던 책에 대한 서평을 쓰려니 막막한 생각부터 드는 것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 난 후에야 그 유명했던 사건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머릿 속에서 자리잡지 못했던 책의 내용들이 퍼즐 조각들을 맞추듯 딱딱 맞아가는 기분이었다. 다시 한번 책을 훑어보며 내용들에 살을 붙였고, 중간중간 아 - 하는 이유 모를 탄성들이 터져나왔다. 서평을 쓰며 책의 귀퉁이에 나와있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내용을 알았다는 것 자체도 나를 충격으로 몰아넣었지만, 책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이유가 그저 눈으로 활자를 좇기에만 바빠서 사건 전말에 의문성 제시따윈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듯 읽어내렸다는 것이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처음 나는 A가 처음 안은영의 스펠링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 책 제목이라던가, 편지 발신인에 주홍 글자로조차 표기되어진 'A'에는 어떠한 특수한 목적성을 지닌 의미나 그 단어만으로 독자에게 던져주는 message가 있을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A의 뜻을 나만 찾지 못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다른 서평들을 뒤적거렸지만 오직 한 서평에서만 아마조네스(amazones : 여성 무사족)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다는 서평을 발견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의미가 결여된 듯 보이는 그 단어에서 천사(angel)니, 아마조네스(amazones)니, 간통(adultery)이라는 의미를 결부시킨다는 것 자체에는 약간의 무리수가 따르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 결코 그 서평에 토를 다는 것은 아니다 -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이해를 하지 못해 난동피우는 머릿 속을 채 정리시키지 못한 채 길지 않은 작가의 말을 읽어나가는 마지막에 당신에게 A는 무엇일까, 나중에 나중에 듣고싶다. 라며 심심한 질문을 던지며 책을 끝마치는 걸로 봐서 작가 또한 독자가 A라는 단어 속에 숨겨진 어떠한 의미만을 좇는 것은 원치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읽어본 하성란 작가의 A의 느낌은 B도 C도 F도 그렇다고 A+도 아닌 그저 A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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