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나 소설
김규나 지음 / 뿔(웅진)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김규나 지음
뿔(웅진문학에디션) 2010.07.12
평점










 

 
 
 
 

 
 
 
 

 

 
 
 
 

 

 
 
 
 
한 여자가 유난히 파란색보다는 바닷빛깔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색의 드레스를 입고는 앉아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인지 화를 추스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왠지 모를 사악함이 엿보이는 표정을 한 채 창백한 얼굴로 창 밖을 응시하고 있는 표지를 바라보며 처음 든 생각은 음산하다 였다. 책을 다 덮은 후에 곧바로 서평을 쓰려고 펜을 들었으나 책에 대한 평은 쉽사리 써지지가 않았고, 그 때마다 펜을 놓기 일쑤여서 금세 포기해버리고 있다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한 것은 그 전이나 지금이나 혹은 그 후에도 똑같고, 똑같을 것만 같아서 이제는 안되겠다 싶어 펜을 들었다. 평을 쓰기 전 김규나 작가의 이름을 작게 읊조려 보았다. 그리고는 그녀가 자유분방하게 써내려간 책 앞에서 손을 가만히 얹어놓고 눈을 감아본다. 아뿔싸, 책의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 역시 단편의 한계일 수밖에 없다. 열 한편의 단편을 읽으며 내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단편들도 여럿 있었고,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해하고 싶을 정도의 단편 역시 있었다. 단편에서 작가가 시사하려는 바를 오롯하게 이해하기란 왠지 모를 숙제처럼 남고, 그 속에서 시사한 바를 찾아내지 못하면 그것을 알아낼 때까지 읽어야만 속이 풀리는 경우도 늘상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김규나의 <칼> 속에 나오는 단편들은 하나의 단편이 모여서 또 다른 하나의 프레임을 만든다. 사랑의 양면성에 상처 받으면서도 결국은 사랑을 갈구하고, 그것을 치유하며, 선택이라는 기로에 빠지게 되는. 그 틀의 이름을 나는 '인생'이라는 애매모호한 단어 속에 합집합으로 남겨두고 그것을 포스트잇에 적어 책의 첫 장에 적어 붙인 다음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칼'이라는 단어는 매우 아이러니하다. 나를 아프게도 함과 동시에 나를 보호하기 위해 피치 못하게 상대방을 아프게 찌를 수도 있는 양면성을 띠고 있다.  지만 나는 이 책의 첫 단편으로 선택된 <칼>이라는 이야기를 읽으며 작가가 말하려는 그 단어는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당신을 부검하기 위해 여자가 든 그 메스를 제목으로 갖다붙인 것이라면 나는 매우 큰 실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이 단편은 나에게 혼동을 주었다. 내가 위에서 말한 '인생'에 전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글쎄, 어쩌면 그걸 죽음이라는 것조차 '인생'이라는 프레임 속에 넣고 싶지 않은 내 이상한 욕심이 작용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상처에 찌들어 더 이상 상처받을 공간조차 허용할 수 없던 당신은 결국 자살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어 이미 이 세상 사람으로 돌아올 수 없고, 당신을 부검하던 그 여자는  메스를 들고 또 다른 시신을 부검하러 간다. 사실 나는 그녀가 당신의 아픔을 끌어당겨안아 안아주고 어루어만져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건 독자만의 욕심이었던가. 그저 그녀는 직업으로서의 임무를 다했을 뿐 당신을 끌어안아 준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드는건 비단 나뿐일까. 독자인 내가 당신을 끌어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일게 만든건 작가의 강도 높은 의도일까, 아니면 의도치 않은 우연일까.
 
 
 
꼭 감은 눈 속으로 퍼진 어둠에 쩍쩍 금이 갔다. 사선으로, 직선으로, 빗금으로, 갈라지고 부러지고 흩어진 빛의 실금들이 스스로 발광하며 심해를 헤엄치는 괴생물체처럼 살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생각이 빛을 따라 유영했다. 깊었다. 빠져나올 수 없었다. 오직 빛의 유희만이 현란하게 어둠을 희롱했다. 빛의 실체를 잡으려고 손을 허우적거렸다. 눈을 뜨고 빛을 직시하는 순간 빛은 처참히 해체되고 분해될 것이다. 눈을 뜰 수 없었다. 어둠에 갇혔다. (p45)
 
나는 단편을 다 읽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들 중 하나는 단연 <달, 컴포지션>이었고, 완성도 또한 높았다고 평가하고 싶다. - 평가하는 건 독자의 몫이므로 - 이유는, 그 단편에서만큼은 인생의 현주소를 나타내주고 있는 가장 여실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당신에게선 항상 똑같은 냄새가 나. K의 손이 등을 토닥였다. 당신을 기억하게 하는 건 이 따뜻한 냄새야. K가 내 머리카락에 코를 묻으며 말했다. (p40) 던 그들의 달콤했던 사랑이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던 날 K는 결혼했다. 아이가 생겼다는 것도 당황스럽지만 더 끔찍한 현실은 내 아이를 가진 여자가 당신이라는 거야, 말하고 돌아선 K였다. 결혼하자는 K의 제안을 거절한 건 나였다. 프러포즈는 아이에 대한 의무와 책임, 그리고 임신한 섹스파트너에 대한 예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K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 또한 그를 사랑한다고 믿지 않았다. 임신이 되지 않았다면 그럭저럭 잘 지냈을 관계였다. 그러나 일주일에 몇 시간 함께 잘 지내는 것과 결혼은 달랐다. (p41) 아니, 처음부터 사랑이 아니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녀 자신이 사랑이 아니었다는데 내가 사랑이라고 구태여 고집 피울 이유는 없다. 우리는 사랑에 상처를 받으면서도 그것을 끊임없이 갈구한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또다시 상처를 주기에 더이상은 사랑이라 이름 붙이고 싶지 않은 처음부터 무형의 단어인지도 모르겠다. 결말을 예상할 수 있는 강렬한 한 줄, 그래서 뻔히 보이는 결말.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잡고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이것처럼 책 표지를 설명해주는 것은 없을거란 생각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단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위와 같은 작가의 문장력을 이유로 꼽을 수 있겠다. 세상의 힘겨움을 깨달은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편하게 살아온 나 역시도 가끔은 깊은 심연에 빠져 허우덕댈 때도 있었고, 그것에 대한 답답함에 숨이 턱까지 막혔던 적도 적지 않았다. 그 때의 감정들이 심연에 쌓여 올라올줄 몰랐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면에 떠올라 있었다.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며 그동안 많이 힘들었다며, 작가가 등을 다독여준다. 그녀의 품 속에서 그 때에 참았던 깊은 울음을 토해낸다.
 
 
 
온갖 생존 위협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 당신과 내가 있다. 그러나 생존자에게도 행성에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삶의 유한성은 우리를 초조하게 만들고, 소통은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며, 사랑에 대한 열망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살아내는 건 투쟁이다. 그러므로 우주의 유전자를 진화시키는 임무를 수행하느라 오늘도 힘겹게 뛰고 있는 당신은 나의 위대한 동지이다. 때로 당신이 아플 때, 당신이 울고 싶을 때 당신을 위로하는 것들ㅡ철학과 종교, 음악과 미술, 의학과 과학, 경제와 문화, 그리고 수많은 소설과 시ㅡ그 분주하고 촘촘한 시간 속에서 잠깐만이라도, 내가 쓴 글 한 줄이 당신의 심장을 따사롭게 어루만져줄 수 있다면 좋겠다. 오늘도 살아남은 지구인. 당신을 사랑한다. - 작가의 말
 
단편을 읽을 때에는 한 편의 이야기를 다 읽고 다음 이야기를 맞이하기 위해선 그 편의 이야기라던가 분위기를 리셋하고 나서야 그 다음 장을 펼쳐야한다. 하지만 하나부터 끝까지 이야기만 달랐을 뿐, 이 책은 표지에 대한 첫 인상만큼이나 음산했고, 어두웠고, 시니컬했다. 하지만 그 중 단연 희망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바이칼에 길을 묻다>라는 단편뿐이었지만, 그런 드라마같은 억지스러운 스토리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언급하기엔 조금 꺼림칙함이 남는다. 아마 작가의 말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전에 읽었던 단편들은 생각해내지 않고 마지막의 단편을 읽으며 남은 꺼림칙함을 안고 책을 덮었을런지도 모르겠다. 비록 단편이라는 틀 안에서 허우덕대느라 작가에 대한 매력에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맛배기만 봐버린 기분이 드는 것도 같다. 그녀의 또 다른 작품을 기대해본다.
 
 
 
p145 , 오타 11번째 줄 - 단의 곁에 다가가 그의 팔짱을 껐다. - 팔짱을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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