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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쿠온, 엄마아빠는 히피야!
박은경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나는 자라면서 "행복해!"라는 말을 드물게 들었고, 드물게 써왔던 것 같다.
일상의 아주 작은 기쁨에 대해서는 행복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았다.
사실 남들이 행복하다고 하는 말만 들어도 덩달아 행복한 기분이 드는데,
자신이 자주 쓰면 얼마나 더 행복해질까. (p55)
드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아이가 손짓을 하고 있는 이 책의 표지만을 보고 여행에세이인줄만 알았던 나는 '아, 잘못 알았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민망해졌다. 제목을 조금 유심히 봤더라면, 오해의 소지가 조금 줄어들었지 싶다. 히피라는 말이 내가 생각하는 그 hippie인줄은 몰랐던 것이다. 히피(hippie)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던 때는 부끄럽지만 그 단어 자체를 알았던게 아니라 소위 히피펌이라는 것이 유행하고부터가 아닌가 싶다. 난 그 파마가 정말 폭탄맞은 머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히피라는 그 단어가 조금 부정적으로 다가온 건 사실이다. hippie란 '탈사회적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고 백과사전에 친절하게 나와있다. 하지만 난 그보다 그들은 원하면 언제 어디든 떠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인'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이 책은 히피인 저자의 가족이 떠나면서 겪은 일들을 주로 쓰고 있기보다는 그들 가족의 삶을 써내려 가고 있다.
나이 32살에 무작정 떠난 인도행. 그 곳에서 (무려!) 13살이나 어린 바바를 만나 사랑에 빠져 쿠온을 갖게 되고 결혼을 하게 된다. 그들은 결혼식 서약부터가 특이했는데, 결혼식 서약은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같이 천년만년 붙어살자'가 아니라 '언제든지 상대방에게 좋은 사람이 생기면 즉각 헤어지자'였다.(p33) 라고 한다. 이게 가당키나 한 소린가. 나로서는 참 대책없다. 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럼에도 그들은 쿠온이 13살이 된 지금도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여전히 이곳저곳을 자주색 스쿨버스를 타고서.
나는 그들의 삶을 읽어내려가며 '부럽다. 부럽다'만을 반복했던 것 같다. 나는 저자처럼 훌쩍 떠나버리기엔 놓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다. 아직 몇개월 넣지 않은 적금통장, 언제나 꺼내쓸 수 있는 입출금통장, 10원의 이자가 매달 붙는 CMA통장……. 하지만 그것보다 내가 놓지 못하는 것은 내 꿈이다. 언제나 자유를 꿈꾸기는 하지만 그것이 내 꿈과 바꿀 수 있을만큼은 아닐 것 같기에. 사실 저자 소개를 보면 그녀는 영화기획자,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 요가 강사, 농사꾼, 칼럼니스트, 명상가, 테라피스트, 힐링 마사지스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고 나온다. 그런 그녀에게 놓고 싶지 않은 것이 있었겠지만, 무작정 떠난 그녀가 용기있어보이면서도 솔직히 말하면 대책없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그녀가 마음 속에 들어와 조곤조곤한 말투로 잔소리를 퍼붓는다. 하고 싶은 일에 따로 출발점이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곳 사람들 모두가 나에게 보여주었다. 누구나 전문 발레리나가 되려고 발레리나를 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 유명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원해서 선택했다면 거기에 쏟는 정열과 결과도 각자의 몫인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그 순간을 사랑하고, 그런 삶에 열정을 쏟는 아름다운 자신을 사랑한다. (p186) 그래, 그거지. 그녀와 나는 비록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자신이 선택한 길이 다르기 때문에 그녀와 나를 비교해서 그녀는 행복하고 나는 불행하다고 구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나에게 여행이라는 취미가 손톱만큼인데 그녀는 행복해하니 너도 그녀의 삶을 살아라! 라고 한다면 나는 행복할까? 내가 그녀의 삶을 엿보며 부러워한건, 그녀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지. 절대 그녀의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삶이 아니었던 것이다. 미래를 살고 있는 현대인에 반해 순간을 살고 있는 그녀의 삶을 엿보며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책을 덮었는데 쿠온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엄마, 내 가슴에 나비 한 마리가 파닥거려" (p143) 이 한 문장이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