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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평점 :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책 제목에 의문을 가졌다. '위험한 독서'라는 제목때문인지 선뜻 책을 들기가 망설여졌던 것도 사실이다. 사실 이 책이 단편인줄은 몰랐는데, 사실 이 책을 손에 들기 전 알았더라면 조금은 거부감을 안고 시작했을 책이다. 내가 싫어하는 책 중 하나가 단편집인 한국소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단편집임에도 불구하고 완성도가 꽤 높은 편임을 자랑하고 있다. 8편의 단편들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역시 <위험한 독서>였다.
<위험한 독서>에서 나오는 1인칭 시점은 독서치유사다. 독서치유사라는 직업. 참 매력있다. 어쨌거나 그에게 새로운 고객이 오게 되는데, 그 고객을 보고 느낀 감상평이란 당신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특별한 기대나 별다른 설렘도 없이. 외지고 남루한 서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여태 단 한 번도 대출된 적 없어 존재감마저 희박해진 책. 한번 훑어보기만 하면 두 번 다시 들춰볼 일 없을 것처럼 평범해 보이는 책. 당신은 나에게 그런 책이었다. 나에겐 이 부분에선 반발할 여지가 발생한다. 단지 읽은 책 몇권이라는 범위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라고 읽는다'라고 느낄 수 있는 허용 범위가 과연 독자에게 긍정적으로 읽힐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나에겐 그 자체가 조금은 낯설어서 거부감이 들었달까.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가 날 봤을 때 어떤 책으로 치부해 버릴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읽고 나면 깊은 여운을 남길 수 있는 그런 책의 모습으로 다가가고 싶다.
또 다른 단편집인 <천년여왕>에서 1인칭 시점 주인공은 작가이고, 그의 아내가 묻는다. "글을 써서 당신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 물음에 무엇이라 답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작가는 뜻밖에도 "나 자신." 이라고 대답한다. 이 대답에 감명한건 나뿐일까? 하지만 난 작가의 마음으로 책을 읽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작가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돌아보고자 글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를뿐더러 어떤 마음으로 책을 쓰는지 모른다. 그저 난 독자의 입장에서 작가의 의도를 찾아내기에 급급하기 때문에 그런 건 신경쓸 틈도 없다. 가끔 읽기가 참 힘든 책들이 있다. 그럴 때는 저자를 탓하게 된다. 이 저자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 라며. 하지만 김경욱은 그런 내 마음을 꿰뚫기라도 하듯 나에게 충고하고 있다. 저자의 의도나 실제 삶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요. 책을 당신 것으로 만드세요. 책은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나 거울 속 당신 자신을 들여다보세요. 책을 해석하려들지 말고 오롯이 그것을 통해 내 안의 숨겨진 자아를 찾아 탐험하는 것.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나는 친구들에게 '책은 왜 읽는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내가 책을 많이 읽어서가 아니라 독서라는 문화가 아직 친구들의 가슴켠에 자리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난 그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말을 찾지 못했다. 그냥 그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그냥...'이라는 말로 대신했던 것 같다. 책을 읽는 이유.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처음엔 멘토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내 완벽한 멘토역할을 해줄 책을 난 아직 찾지 못한 것 같다. 그저 공감이 간다는 이유만으로 멘토가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난 아마 멘토가 이미 몇 십 권쯤은 있는 셈이다. 한 권의 책이 날 바꿀 수 있는 멘토역할을 해줄 수도 있지만, 내가 변하지 않으면 수 천 권의 책도 나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책을 왜 읽냐'는 질문에 시간을 때우려고 읽기도 하고, 쾌락을 얻기 위해 읽기도 한다고 말하지만, 나 자신을 찾기 위해 읽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책을 읽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책의 권수가 조금만 두꺼워도 '헉 -' 소리를 내며 피해버리기 일쑤다. 나 역시도 아직까지 두께가 있는 책은 겁먹고 피해버리는데 왠지 그런 책들은 할말을 직설적으로 하지않고 비비꼬아서 그렇게 두꺼워질거라고 치부해버려서인지도 모르겠다.사실 이제까지 읽은 책 중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 책을 읽은 적은 없지만, 내가 읽었다는 책들 중에선 그런 책들이 꽤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책에는 독자가 메워야 할 수많은 빈칸이 존재한다고. 독자가 그것을 채우기 전에는 모든 책이 본질적으로 미완성 원고에 불과하다고. 그 책에는 작가가 아닌 내 삶을 부여해서 조금은 의미있는 오롯하게 나만의 책을 가꿔나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책에 독자를 향한 문은 항상 열려있음을 일깨워준다.
서평을 쓰다보니 아차! 싶다. 김경욱이 말한 위험한 독서는 바로 이런 것이다. 자신을 가차없이 돌아보게 만든다는 것. 책을 읽음으로써 나를 돌아보게 된다. 서평에선 미처 쓰지못한 문장들이 메아리들로 변화해서 머릿 속을 복잡하게 헤집는다. 그러다가 결국 아픈 상처까지 건드리게 될 때도 있다.
간혹가다 밑줄을 그으며 읽고 싶은 책이 한 두권 생기기 마련이다. 이 책이 그런 책이다. 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별 기대감없이 들었던 책이 감정을 너무 건드린다. 그래서 불쾌하다. 그러나 참 아이러니하게도 불쾌한데 기분이 참 신선하다. 어질한 현기증의 소용돌이로 빨려갈 것만 같은.. 참 오랜만에 좋은 책을 읽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