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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사진관
김정현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용준은 뇌졸증으로 10여년동안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의 병수발을 도맡아하며 살아가는 스물다섯살에 실상적인 가장이다. 그는 아버지가 하시던 '고향사진관'이라는 사진관을 그대로 물려받아 이어나가려 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계신 17년.. 아버지가 떠나고, 그는 간암이라는 판정을 받게 된다.
사실 읽으면서 아무리 효자라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같은 연애는 커녕, 결혼도 하고 싶었던 때도 아닌 때에 선을 봐서 해야했고, 그 창창한 나이에 왜 꿈이 없고 미래를 생각하지 못했겠는가. '내가 그 상황이라면...' 이라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 정말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해있다면 난 어떻게 행동했을까? 나도 그처럼 지극정성으로 17년동안 간호할 수 있을까? 아마 난 그러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읽으며 이게 책이니까 그렇지 누가 17년동안이나 병수발을 할 수 있겠어? 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김정현작가의 친구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걸 맨 뒷장인 작가 후기에 집어넣음으로써 책의 마지막 장을 채 덮지 못하고 한번 더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세상은 너무도 변해 버렸다. 부모는 자식을 자신의 창조물인 양 여겨 대리인쯤으로 여기기도 한다. 자식은 부모를 언제나 버리고 떠날 수 있는 낡은 둥지쯤으로 여기기도 한다. 일말의 죄책감마저도 없이. -p196
이 책의 중반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래서 소위 말하는 '품안의 자식'이라는 말이 나돌게 된 것 같다. 난 이 글을 몇번씩이고 되뇌어 읽고, 읽고, 곱씹으며 나도 이제까지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이 책을 덮었을 때에는 '조창인- 가시고기'가 떠오르면서 상황을 바꿔놓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쯤 용준은 하늘나라에서 아버지와 술을 한잔 기울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보며 책을 덮었다.
타인과 타인이 만나 인연을 만들고 사랑으로 가꾸어가는 데는 무엇보다 형언할 수 없는 어떤 느낌이나 감정이 우선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느낌과 감정을 유지하는 데는 물론이고, 어쩌면 그런 느낌과 감정조차 주고받는 말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구나 말은 진실되어야 하고 신중해야 한다.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 말이 상대에게 영원한 생채기가 되어 문득문득 한숨을 내쉬고 사랑을 의심하게도 한다. 순간의 격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쏟아놓은 말들이 때로는 속마음과 상관없이 인연을 악연으로 갈라놓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래도 사랑을 키우고 지켜가는 데는 말이 필요하다. 간절한 사랑의 마음을 담은. -p78
사실 삶의 끝자락에서 보자면 살아온 대부분은 부질없는 것들이기 일쑤인 게 인생이다. 아옹다옹 티격태격, 다투고 미워하고 증오한 그 모든 것들이 순간을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면 얼마나 작은 마음, 하찮은 것에서 비롯된 일이었던가. 아등바등 허겁지겁, 오직 오르고 차지하기 위해 발버둥 쳐서 남긴 그것들은 또 어라나 허망한 것이었던가. 오히려 얻고 가진 그것보다 그로 인해 잃어버리고 놓쳐버린 것이 더 소중한 것이 아닌가. -P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