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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正熙) - 우리들의 대통령 이야기
김용삼 지음 / 플로우북스 / 2026년 9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영화 <암살자(들)>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나는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관심이 없다. 다만, 영화로 역사를 배워가는 사람이 있을까 우려가 된다. 난 차라리 다큐멘터리를 봤으면 봤지, 대부분의 역사를 다루는 영화가 픽션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하나를 보고 팩트와 픽션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혹자는 이 영화에 대해 ‘표현의 자유’라고 말하지만, 과연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들의 말대로 표현의 자유라면 어느 대상이 되더라도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한국에는 유난스럽게도 신성불가침의 존재가 있어 특정 인물 또는 특정 사건을 허구로 하여 영화를 만들게 되었을 때 그것을 단지 표현의 자유라고 그들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소모적인 충돌을 보는 것이 달갑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작금의 사태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박정희를 둘러싼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상황에서 영화는 상영금지 가처분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오히려 아들인 박지만 씨는 “이번 일을 계기로 젊은 세대들이 아버지 박정희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오히려 기쁜 일”이라고 하였다. 부모의 부정적인 말은 누구에게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는데도 저렇게 덤덤하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마침 출간된 『박정희에 관한 오만과 편견을 깨뜨릴 우리들의 대통령 이야기 : 정희』를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이 책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청소년 시절에 학교에서 배운 박정희 대통령은 단연코 ‘독재자’였다. 5대에서 9대에 이르기까지 15년 동안 대한민국을 통치한 사람. 그것이 내가 학교에서 배운 전부였다. 성인이 된 후에야 다큐멘터리와 자료를 찾아보며 그가 무엇을 추진했고 어떤 결과를 남겼는지에 대해 하나씩 알게 되었다. 나 역시 생산인구로 업무를 하다보니 어떤 일이든 처음보다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 목적이 무엇이든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그의 연임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지는 못한다. 물론 그랬다면 중도에 어그러진 사업들도 속속 생겨났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것도 나라의 그릇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경부고속도로가 있다. 당시에 자동차 보급률이 6만 대 정도의 나라에 고속도로라니? 당시에 반발이 심했다. 지금이야 우리는 아주 편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당연히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떤 일이든 시작할 때는 성공과 실패를 알 수 없기에, 당시에는 굉장히 무모해 보였을 수도 있다. 당시에는 옳다고 여겼던 일이 나중에는 다르게 평가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가 만들어놓은 경부고속도로를 아주 잘 이용하고 있으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사는 결국 남겨진 후손이 평가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진하게 드는 요즘이다.
책 『정희』를 읽으면서 내가 느낀 건 박정희의 인간적인 면모였다. 굶주린 국민의 배를 불리고자 하는 사람, 타국에 나간 국민들을 가엾이 생각하는 사람, 소녀들을 위해 야간 학교를 개설한 사람, 그 외에도 취미, 주변 사람들에 대한 태도, 아내와의 일화가 주를 이었다. 이 책은 단지 '박정희는 이러했다'라는 일방적인 주장 대신, 주변 인물들의 구체적인 회고와 증언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특히 눈에 띄었다. 회고나 증언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심지어 그 출처까지 제시하고 있다. 때문에 책을 다 덮고 나서도 박정희의 국민을 향한, 그리고 아내를 향한 인간적인 면모가 많이 마음에 남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취할 것인지는 읽으면서 내가 정하면 그만이지.
책을 읽다가 처음 알게 된 사실은 육영수 여사가 옥천 사람이라는 점과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을 부를 때, “이거 보세요.” “어디 계세요.”라고 말했다는 점이다. 이게 정말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마음에 남았냐면, 나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결혼 후 옥천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부를 땐 “날 봐”라고 부르고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부를 땐 “봐요”라고 했었다. 신기하면서도 웃음이 났던 호칭이었는데, 어쩌면 그게 지역의 문화였던 건가... 하고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책에서는 그의 삶과 역할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저자의 몫이 아니라 기록을 마주한 독자의 몫이라고 주문한다. 다행인 것은, 나는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평가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책 한 권, 영화 한 편으로 무언가를 확신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해 100% 신뢰를 하지 않는다. 지금도 여전히 나라를 번영시켰다고 하여 연임을 한 것이 전부 옳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확신이 무조건적인 성공으로 이끄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편안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이전보다 더 크게 가지게 된 것은 사실이다.